감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감정은 흥미로운 대상이다. 감정, 또는 정서라 불리는 그것은 온갖 방식으로 전개되는 일상 경험의 정수와도 같은 것으로서, 우리 자신이 특정 방식으로 반응하고 행동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열쇠 역할을 해준다. 그런 만큼 감정이란 이 주제는 여러 방면에서 다각도로 검토되어 왔고, 그 결과 다양한 함의를 지닌 많은 사실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예컨대, 각각의 감정을 촉발시키는 내외부적 자극의 성질과 그 자극에 반응하는 당사자 자신의 인격적 특성 등에 대해서는 이미 풍부한 설명이 제시된 바 있고, 감정과 신체 내부 요인들 간의 정밀한 상호 작용 방식에 대해서도 유용한 많은 사실들이 밝혀진 바 있다. 감정을 에워싼 주변 현상들에 관한 인식에는 사실상 부족함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감정 그 자체의 내적인 과정과 원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인접한 현상들에 대한 인식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건 감정이 발산해 내는 전반적인 기분뿐이며, 그 기분, 또는 느낌의 흐름에 내포된 의미나 본성 등에 대해서는 파편적이고 모호한 인식 정도만 확보되어 있는 상태다. 온갖 방면의 설명들을 두루 접해보았음에도 감정이란 이 대상이 여전히 애매하게만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주로 이 같은 사정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 자체의 내적 본성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제한되어 있는 건 왜 그런 것일까. 우리 스스로 그 느낌을 당연시하면서 느낌과 앎을 다소간 같은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일까? 분명 그런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당연시하는 태도가 이해를 가로막는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진실이다. 그렇지만 사실 그보다도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감정 자체의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감정의 본성이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건 그것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 감정이란 것은 오직 그 감정을 경험하는 당사자 자신에 의해서만 인식되는 매우 개인적인 대상이지만, 당사자 자신과 사실상 일체를 이루고 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관찰을 위한 거리를 확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감정은 처음 촉발되는 그 순간부터 습관적 반응 속으로 몸과 마음을 끌어들이면서 경험 당사자를 관찰자의 지위에서 계속해서 끌어내리기 때문에 객관적인 관찰 대상으로 삼기가 더더욱 힘들다. 너무나도 가깝고 익숙한 대상이지만 가깝고 익숙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도리어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들만 고려하면 감정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 일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쨌든 감정을 밖으로 떼어내서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의 영역이 이처럼 다소 고정되어 있다고 해서 거리 확보가 불가능해지는 건 아니다. 관찰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그 의식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신기하게도, 상당히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그 의식은 앞으로 꽉 조이면서 외부 대상을 향해 밀착할 수도 있고, 배후로 물러서면서 넓게 이완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어느 정도 앞뒤로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감정에 매몰된 평소의 그 의식 상태는 이미 다소 조여진 상태, 즉 긴장된 상태이므로 그 묵직한 긴장을 놓아버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더 뒤로 물러날 수가 있다.
실제로 감정에 밀착해 있던 기존 정체성에서 다소 떨어져 나와 그 모든 현상의 배후에 있는 순수한 알아차림의 지점으로 물러나보면, 감정 자체와 거기 영향을 받는 자신의 모습이 어느 정도 외부 대상처럼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을 향해 한 걸음 물러선 결과, 감정과의 거리를 확보함과 동시에 감정의 영향권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정에 대한 경험적 탐구, 즉 감정 자체와 자기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 성찰이 가능해지는 건 바로 이와 같은 기본적 태도 변화를 통해서이다.
그렇지만 물론 이렇게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고 유지한다고 해서 감정과 관련된 의미가 당장 드러나는 건 아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어디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여전히 막막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특정 감정이 촉발되는 순간마다 정신을 차리고 물러서서 이런 식의 관찰을 거듭하다 보면, 감정 자체의 움직임과 질감, 전반적인 형태 등이 서서히 눈에 들어올 것이고, 그 감정의 영향을 받는 자신의 의도와 판단 같은 요인들도 하나씩 포착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과 경험을 축적하면서 관찰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각각의 개별 감정과 연관된 의미나 질서 같은 것들이 가끔씩 마음속을 스치고 지나가기도 할 것이다. 이 단편적인 형태의 의미들은 개별적인 전체 경험의 응축체와도 같은 것으로서, 그 간단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광범위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원리’이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관찰과 탐구로부터 비롯되었다. 한편으로는 필요에 떠밀려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에 이끌려서 오랜 기간 동안 내면을 관찰하다 보니 감정 문제와 연관된 의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서서히 전개된 의미들 가운데 보편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내용들을 모아 주제별로 정리하다 보니 글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내용을 풀어내는 일은 결코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핵심적인 몇 가지 의미를 전달하려고 글을 시작했지만, 내용을 전개하면 할수록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대강 뭉뚱그려 표현해 낸 의미들은 각 상황에서의 실제 경험에 부딪혀 부서져 나가기 일쑤였고, 애써 구축해 낸 하나의 의미 단위는 다른 의미들과 곳곳에서 모순을 일으키곤 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글을 쓴다기보다는 차라리 의미와 현실, 논리라는 세 요인에 끌려 다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동안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또 다른 형태의 의미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 의미들 덕에 전체 내용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통합시킬 수 있게 되었다. 감정에 대한 경험적 탐구 작업을 지금 이 지점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사실상 거의 주어지다시피 한 이 의미들 덕택이다.
물론 이런 식의 접근 방식에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보편적 원리를 이끌어내려 애쓴다 해도 거기에는 어느 정도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한 다소 유동적인 그 의미의 흐름을 충실히 묘사하려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감정 현상의 본질을 드러내려면, 그리고 감정의 드러냄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내적인 환경을 개선하려면, 주의 깊은 관찰자들의 경험을 한데 모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각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모아 나름의 의미를 드러내듯, 내적 관찰의 결실들을 다시 하나로 모아 전체를 아우르는 무언가를 드러낸다면, 아마도 상당히 신뢰할 만한 하나의 법칙에까지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