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심의 기본적인 느낌 들여다보기
시기심과 질투는 성질이 매우 유사하여 서로 간의 차이를 구분해 내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보통 일상에서 이 두 표현을 섞어 쓰곤 한다. 그런데 시기 또는 질투로 표현되는 이 감정에 대한 가치 판단은 종종 극과 극으로 나뉜다. 즉, 한편에서는 이 감정이 파괴적 행동을 촉발하는 동인이라며 죄악시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이 성과의 추구를 촉진하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며 그 가치를 부분적으로 긍정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그 감정에 대처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일까?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감정에 대한 반응은 이어지는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경우에는 시기와 질투라는 두 감정의 차이가 당사자의 태도 못지않게 큰 역할을 담당한다. 외관상 비슷해 보이는 두 정서 사이의 질적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큰 것이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양자의 속성을 비교해 보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 감정들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행동 방식도 결국 그 속성이 외부로 전개되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시기심의 성질부터 파악해 보기로 하자.
시기심은 그 느낌 자체만 놓고 보면 고유한 질적 특성을 지니는 독립된 감정처럼 보인다. 마치 덜 익은 열매를 먹을 때 단맛이나 쓴맛과 구분되는 독특한 맛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이 정서를 경험할 때도 그와 유사한 시기심 특유의 불쾌감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시기심의 그 시큼한 고통과 팽팽한 긴장감은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질감을 나타내 보인다.
하지만 시기심을 일으키는 주변 여건을 고려하다 보면 그 감정이 단순한 하나의 감정이 아님을 곧 인식하게 된다. 시기심은 상대의 탁월성을 긍정하는 의지와 상대를 향한 어떤 거부감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유발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이 상반되는 감정 요인들 간의 관계에서 파생되어 나온 산물일 것이다. 그 느낌 속에서 이 두 요인의 흔적이 동시에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기심을 구성하는 요인들은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야말로 시기심의 본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기심을 둘러싼 환경 요인들은 이 점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아무것도 없으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시 시기심의 느낌 자체를 더듬으면서 그 느낌들 간의 관련성을 추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시기심을 느꼈던 기억을 돌이켜 보면서 그 느낌을 성질별로 나누어보기로 하자. 그러면 가장 먼저 외부를 향해 뻗어 나아가는 의지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 느낌은 분명 시기심을 구성하는 욕망에 의해 일어난 것이겠지만, 일반적 욕망보다 어딘지 모르게 더 치열하고 격렬하다는 느낌도 든다. 마치 욕망이 산산이 부서진 채로 그 대상을 향해 치고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한편, 이 움직임의 배후나 저변에서 무언가에 가로막히는 듯한 느낌과 그와 같은 차단에 저항하는 듯한 느낌도 식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느낌은 보통 쓰라린 마찰감으로 경험되는데, 이 마찰 또는 충돌의 느낌이 바로 상대방을 향한 거부감의 토대일 것이다.
또한 이 느낌들과 더불어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 혹은 양방향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겨지는 듯한 느낌도 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긴장감은 비록 위의 두 느낌과 뚜렷이 구분되지는 않지만, 시기심에 어떤 고집과 갈등의 측면이 내포되어 있음을 암시해 준다. 아마도 이 느낌이야말로 시기심의 원리를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느낌들은 대체 무얼 의미할까? 위의 관찰 내용들을 포괄적으로 바라보면서 이 모든 느낌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는 작용 방식이 무엇일지 숙고해 보기 바란다. 아마도 상이 하나 떠오를 것이다. 여러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쏟아져 내리는 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과도 비슷하다. 즉, 일관되게 쏟아져 내리던 물이 손가락이라는 장애물을 만나 한편으로는 부서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속되듯이, 시기심이 일어날 때도 특정한 차단 요인에 의해 동일한 의지가 둘로 찢기면서 성질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요구 대상을 향해 뻗어 나아가던 의지가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뒤에서 발목을 잡혔는데도 계속 나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자신의 몸체를 길게 늘어뜨리는 것과도 같다. 아마 시기심에 내포된 마찰의 느낌 또는 거부감의 강도가 욕망의 강도에 거의 비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시기심은 차단 요인에 의해 양극화된 의지가 서로를 잡아당기면서 팽팽히 맞설 때 일어나는 감정 상태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적 갈등의 표현으로서, 대립된 요소들 간의 긴장을 자신의 본질로 삼는다. 아마도 이 긴장이 없다면 욕망과 거부감은 단순히 서로를 상쇄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 두 요인 사이의 긴장 상태가 시기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 기본적인 대립 구도가 시기심의 뼈대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사자가 이 대립 너머로 상대방의 탁월성을 향유할 경우, 이 순수한 형태의 시기심에 동경의 특성이 배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시기심을 관찰해 보면, 그중 상당수가 이처럼 동경 쪽으로 치우친 모습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순수한 의미의 동경, 즉 부러움이란 또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시기심의 기본 갈등 구도가 배경으로 완전히 스며들었을 때 일어나는 감정 상태이다. 즉, 관심의 초점을 눈앞의 갈등 상황에 맞추면 의지의 분열에서 비롯되는 치열한 시기심을 느끼게 되지만, 그곳에서 눈을 돌려 저 너머에 자리 잡은 탁월성을 바라보면, 시기심에서 비롯되는 격한 갈등의 느낌이 배경으로 물러나 모호해지면서 동경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강조점을 이동시키는 것만으로 의미 전체가 변하는 농담 또는 빈정거림과도 같다. 따라서 동경과 시기 사이에 단순한 강도 차이만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둘은 이처럼 구성 방식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