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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이 국제학교에 못 다니게 될 수도 있다고요?

초등교사는 아이를 국제학교에 어떻게 적응시킬까?

by 트랄라샘 Feb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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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등교 전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어 우리 가족은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로 총 출동했다.

아이는 교복을 입고 처음 만나게 될 선생님과 학교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싱가포르에 그토록 안 온다는 아이였는데 이제 다니게 될 학교에 가게 된다니 설레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다.   


우리 아이처럼 새로 온 아이들만 오는 오리엔테이션은 학교에 대한 소개, 학교 둘러보기, 담임선생님과의 만남 순으로 진행되었다. K부터 10학년까지 있다 보니 신입생이 꽤 많아서 놀랐다. 내심 새로운 아이들이 많은 상황에 안심이 되었다. 신입생이 많아 학교 안내가 좀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조금 헤매더라도 도와주는 분위기가 될 테니 말이다.


아이가 공부하게 될 특별실, 체육관, 수영장, 시청각 실 등 여러 가지 학교 시설을 둘러보고 아이 교실에 가서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을 가졌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처럼 8월에 싱가포르에 처음 오신 영국 남자선생님이셨다. 여자친구와 함께 싱가포르의 국제학교에 일하기 위해 오게 되었고 본인의 전공, 고향 등을 알려주셨다. 외모도 그렇지만 말투와 태도에서 영국신사라는 것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담임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 나는 꺼내기 어려운 말씀을 드렸다. 바로 아이의 계란 알레르기 이야기였다.

드리기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꼭 전달할 사항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준비한 영문 의사소견서를 보여드리며 아이의 상황을 공유했고 싱가포르 오기 직전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렸다.


내가 담임선생님께 요청드린 사항은 2가지였다.(지금은 2번은 하지 않는 상황)

1. 교실에서의 철저한 계란 통제

2. 식당에서 계란을 먹는 아이들과 따로 앉기(초반에만 유지, 관찰)


사실 아이도 예민한 편이라 먹는 것은 통제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생긴 흡입알레르기 상황이 관건이었다. 아이가 싱가포르 푸드코트에서 평소에 맡아보지 않은 이국적인 음식냄새를 맡으면 집에 와서 배가 아프다고 했었다. 계란이 포함됐던 건지 냄새 자체가 싫어서 그렇게 반응하는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는 학교 보건선생님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어찌 보면 아이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분은 보건선생님이다. 가장 내가 많이 접촉해야 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보건선생님께서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지만 외모에 잔뜩 힘을 주신 인도계 선생님이셨다.


보건실에 가보니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들 명단을 따로 붙여두셨고 에피펜(알레르기 응급주사)을 소지한 친구들은 사진을 A4크기로 출력해서 따로 걸어두셨다.


나는 에피펜(알레르기응급주사)과 영문 의사소견서를 보여드리면서 아이가 응급상황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프로토콜을 설명드렸다. 사실 인도식 발음이 너무 세서 잘 안 들리기도 했으나 최대한 알아들으려 해 보고 의문이 가는 것은 다시 요약해서 확인했다. 한마디 한마디 매우 집중해서 들으려고 노력해서 그런지 나중에는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영문 의사소견서에 아이의 증상이 너무 상세히 쓰여있어서 학교 관계자가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처음부터 다양한 상황을 보수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로 인해 어떤 상황이 닥쳐올지도 모른 채 나는 마냥 솔직하기만 한 신입생 부모였다.


다음 날 아이는 첫 등교를 하게 되었고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호텔에서 기다렸다.

오후쯤 갑자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보건선생님이었다. 나의 심박수는 더욱 올라갔다. 보건선생님은 학교에 3시쯤 올 수 있냐고 물으셨다. 아이 알레르기에 대하여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오전부터 보건선생님이 전화를 주셔서 한국에서 받아간 소견서의 프로토콜 중 에피펜 투여방식이 싱가포르와 다르다며 학교는 싱가포르의 방식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도 더 해명해고 싶었으나 일단 학교의 결정을 따르겠다고만 했다. 한국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 NUS병원 의사 선생님을 뵙고 거기에 대한 조언을 구한 후 다시 이야기 나눌 요량이었다.

그런 와중 다시 나에게 학교에 오라는 전화가 온 것이다. 부리나케 준비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가는 내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보건선생님과만 소통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편함이 따랐다. 차라리 다른 분들과도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하고 보건선생님께서는 나를 초등교장선생님, 행정실장님이 계신 회의실로 안내했다.


국제학교 초등부 교장선생님, 행정실장님, 보건선생님과 아이 알레르기에 관한 긴급회의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왜 나를 불렀을까 의아해했다. 일단 교장선생님의 말씀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어머님 보건선생님께 말씀을 들어보니 아이가 흡입만 해도 쇼크가 온다는데 맞나요? 저는 어제 이 상황을 듣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학교에 잘 다닐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실에도 아이들이 간식을 싸 올 때가 있는데 수업활동 중 계란이 조금만 섞이기만 해도 쇼크가 오는 것이 맞는지, 또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서 어머님을 오시라고 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걱정하는 상황이면 아이가 우리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지도 다시 논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도 더 나쁜 상황이었다.


"교장선생님, 일단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우리 아이가 이 학교에 못 다닐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당장 그렇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어머님과 이런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내가 이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의 상태를 설명했다.


"싱가포르 오기 직전 발생한 쇼크로 아이가 예민해져 있는 것은 맞으나 학교에서는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와서 아이가 그동안 안 맡던 이국적인 음식냄새에 배가 아프다고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주변분들이 계란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리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학교에는 솔직하게 모두 공유해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오늘 아이가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궁금합니다. "


회의에 참석한 세 분은 비행기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말을 듣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보건선생님께서 답변하셨다.


"오늘은 아이가 보건실에 오지 않았었고 점심시간에도 어떤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는 연락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흡입에 의한 알레르기가 아이에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이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나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계란을 먹는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문제가 없었다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아이의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어머님께서 아이의 식당의 생활이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오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원래는 학부모님의 출입이 제한되지만 제가 그렇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오셔서 아이의 점심시간을 관찰하도록 하세요."


그리고는 한참을 아이에 관한 에피소드와 싱가포르에 와서의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고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보다 훨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 후 아이가 수업이 끝날 때가 되어 회의를 마무리하고 아이를 데리러 나갈 때였다. 아이의 입학과정에 도움을 주었던 행정실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오늘 고생 많이 하셨다고 인사를 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하는 것을 꾹 참고 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교장선생님께 그날 밤 이메일을 보냈다. 아이가 학교식당에서 괜찮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점심시간에 식당 출입을 허가해 주어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 담임선생님과 학급아이들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 점심시간이 끝나고 1-2시간은 학교 식당이 아닌 로비에서 대기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 동안 지켜보고 괜찮으며 앞으로 집에서 대기해도 될 것 같다고도 하였다.


학교교장선생님께 보냈던 이메일



이렇게 며칠을 지켜보고 아이가 안정되는 것을 본 후 우리는 아이가 적응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도 별 탈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모두 학교에서 애써주고 관심을 기울여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를 기억하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알레르기 식단을 항상 알려주는 식당 관계자 분들께도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다. 싱가포르에서 6개월은 아이가 건강하게 다니고 있는 상황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은 본격적인 아이의 국제학교 학습 적응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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