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김 과장

2.

by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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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그 얘기 들었어요? 김 과장이 또 한 사람 잡고 그렇게 혼을 냈다면서요?”


“아휴. 그 괴짜 양반은 50살 넘게 먹고도 그러고 싶을까. 대체 언제 잘리나 몰라. 지훈 씨. 김 과장이 지훈 씨에게는 뭐라고 안 해요?”


점심시간이 끝나면, 직원들은 늘 그렇듯 김 과장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 행위는 그들의 지루한 일상 속 하나의 유희거리다. 대충 분위기를 맞춰주며 대답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김 과장은 회사에서 가장 유명한 괴짜 중 괴짜다. 그의 행동들은 상당히 특이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나 쓸 법한 휴대폰을 들고 다녔다. 카카오톡이나 여러 sns로 소통을 일절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팀원들과 항상 대면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나와 입사 동기로 들어온 대순 씨가 화상회의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냐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김 과장은 불 같이 화를 내며 대순 씨를 1시간 동안이나 혼냈다. 그 후로 대순 씨는 김 과장에게 툭하면 불려 가서 혼나곤 했다. 직원들이 말하는 ‘또 한 사람’은 아마 대순 씨일 것이다. 물론 나는 다른 부서에 속해 있었기에 그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받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그를 마주칠 때마다 어쩐지 구세대파의 마지막 자존심이지 않을까 하고 떠올렸다.


그의 괴짜 같은 면모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문서를 작성하기 전 수기를 고집했다. 컴퓨터가 앞에 놓여있었지만 굳이 연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수기로 문서를 작성하곤, 그제야 컴퓨터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이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어째서 같은 일을 두 번 하는지 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봤다간 나 또한 대순 씨와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 뻔했기에 머릿속에서 상상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회사에서 나름 성과를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빠른 성과를 내진 않았지만, 안정적이고 정확했으며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 이 점이 회사에서 김덕중 씨를 ‘김 과장’까지 올려준 이유일 것이다.


점심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했다. 어쩐지 우리가 기계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 또한 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내 업무는 상당히 단순했다. 상부에서 자료 조사를 지시하면 간단한 표로 정리하거나, 결재가 끝난 문서를 파쇄하는 일.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는데, 이 반복적인 행위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월급을 받고 나면 어쩐지 다시 힘이 났다.


“지훈 씨, 벌써 이 일을 한지도 오래되었지? 이번에 상부에서 프로젝트가 하나 내려왔는데 한번 일 해볼 생각 있어? “

이 과장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잠시동안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제가 들어가도 괜찮습니까? 갑자기 이렇게 큰 일을 해도 되는지…”


”괜찮아. 자네가 성실하게 일에 임한다는 사실쯤은 2년 동안 증명되었으니까. 안 그래도 내가 자네를 추천했네. 다만 부서를 옮겨야 할 거야. 여기 팀원 명단 메일로 보내줄 테니까 자리에 가서 한번 확인해 봐.”


행운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온다고 했던가, 2년간의 단순 노동이 의미를 갖는 순간이었다. 이 과장님께 거듭 감사 인사를 드렸다. 프로젝트의 내용은 미래의 가구 디자인을 구상해 보는 것이었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내려온 디자인 프로젝트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과장님은 한번 잘해보라며, 이번에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된다면 승진은 떼놓은 당상이라며 나를 독려해 주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명단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있었다. 이름을 하나씩 살펴보다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 말았다.

‘과장 김덕중’ 아뿔싸. 사고 또한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고야 말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자 고양이 기지개 켜듯 긴장이 쫙 풀렸다. 어쩐지 배가 고파졌기에 배달음식 애플리케이션으로 먹을만한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족발’ ’ 돼지 곱창‘ 등 여러 자극적인 메뉴들이 많았지만, 일반적인 집밥이 먹고 싶었기에 언제나 먹는 기사식당에서 백반 정식을 하나 시켰다. 자취를 시작한 지 초반에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곤 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점점 귀찮아졌고, 재료를 사는 비용과 음식을 직접 만드는 시간을 따져보았을 때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판단이 되었다.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 시작했다.


기사식당의 음식들은 참 맛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밑반찬 하나까지 싹싹 비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남기는 날들이 많아졌다. 음식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 무언가 음식이 상했다거나, 초심을 잃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음식은 여전히 맛있었고 메뉴 또한 다양하게 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배가 채워지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에서 그런 것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 한 남성이 커다란 벽 앞에 서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도레미 챌린지 영상이 나온다.

툭. 좋아요.

”안녕 1분 요리 목탁이 형이야. 오늘 만들 음식은…“

”…“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영상들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자극들이 빠르게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잠깐이라도 재미가 없는 영상이 나오면 손가락질 한 번으로 넘길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관계.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아도 손쉽게 관계를 형성하고, 끊을 수 있다. 김 과장 또한 손가락질 한 번으로 프로젝트에서 제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 1분씩 쪼개지고 있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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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본 것은 김 과장의 얼굴이었다. 평소에도 일찍 출근하는 듯 보였다. 그의 입은 항상 경직된 듯 닫혀 있었고, 눈매가 날카로웠으며 호랑이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한숨을 푹 쉬었지만, 그와 반대되는 표정으로 다가가 밝게 인사했다. 김 과장은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더니, ‘큼. 큼.’ 소리와 함께 이내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 서서 무언가 잘못된 게 있는지 살펴보았다. 삐친 머리도 없었고, 옷 또한 단정했으며 신발끈이 풀린 일도 없었다.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의 앞에 서니 괜스레 무언가 잘못한 느낌이 들어 불쾌해졌다.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남몰래 쓸어 올려봤지만 김 과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별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했다. 반면 아날로그 김 과장은 힐끔 우리 쪽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곤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대체 뭘 쓰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도통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기에 이내 무시했다. 일과가 시작되고, 회의용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고요했다. 정확히는, 김 과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사람들을 천천히 응시했다. 사람들 또한 오늘 아침에 내가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을 한 번씩 다 응시를 하고 나서야, 그는 입을 떼었다.


“반갑습니다. 제 소개는 생략하고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지금부터 20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 시간 동안 미래의 가구 디자인을 어떻게 구상할지 생각해 본 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


김 과장은 정확히 딱 할 말만 하고, 손목시계의 시간을 조정했다. 그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던진 발언은 사람들을 패닉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20분의 시간으로 제대로 된 아이디어가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본래 김 과장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제대로 따르지 않았을 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각자 아이디어를 찾기 시작했다. 빈 종이에 무언가 끄적대는 사람, 머리를 부여잡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들이 있었다. 다들 아이디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때, 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종이는 빠르게 채워져 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시선은 김 과장으로 향했다. 그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묵언의 허가를 본 사람들은 다 스마트폰을 꺼냈고, 그렇게 순식간에 회의장은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로 전염되어 버렸다.


2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김 과장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시계를 조정하곤 정면을 응시했다. 사람들은 눈치껏 김 과장의 옆에서부터 순서대로 발표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발표 시간은 대부분 10분대를 유지했다. 짧게 주어진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표는 화려했다. 혁신적이진 않았지만 주어진 시간을 고려해봤을 때 우수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었다. 반면 나의 발표 내용은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나 또한 휴대폰을 사용해서 여러 정보들을 검색해 보았지만 무엇 하나 내 마음에 드는 것들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의 발표 시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5분이나 빨리 끝나버렸다. 부끄러웠다. 김 과장을 쳐다보았다. 김 과장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발표자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긴 발표가 끝나고 그제야 김 과장은 입을 열었다.


“실망스럽습니다. 전원 프로젝트에서 제외하고 싶을 정도로요. “


이상했다. 오히려 김 과장은 사람들이 발표를 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필기조차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사실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했다. 그들의 표정은 1 더하기 1은 3이라는 황당한 대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김 과장님, 혹시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겠습니다.”


그는 한순간 질문을 한 회사원을 째려보더니 무섭게 반박하기 시작했다. 1 더하기 1은 3이라는 대답이 정답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미래의 가구 디자인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게 20분 만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제가 모르고 있었을까요? 애초에 여러분의 정답 따위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어요. “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향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낸 디자인은, 정말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까? “


김 과장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여기는 회사다. 회사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시스템 속에서 맞춰가는 존재이다. 애초에 그도 시스템 속에서 승진까지 한 사람 아니던가? 하지만 그의 다음 행동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종이가 보이십니까?”


이른 아침부터 무엇을 그렇게 쓰고 있나 했는데 그는 단순한 빈 종이를 내밀었다. 수 없이 그림을 그렸다 지운 흔적과, 구겨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빈 종이였다. 잠깐의 침묵 후,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이 종이 한 장이 여러분들이 발표한 내용보다 더 진보된 내용임을 확신합니다. “


그는 그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나서기 직전, 김 과장의 마지막 말이 모두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아, 그리고. 저는 발표 방식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다들 똑같이 앞사람을 따라서 하시더군요. “


강렬했던 회의가 지나갔다. 점심시간, 밥을 먹으면서도 내 귓가에는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대면 회의 이후, 김 과장은 우리에게 두 가지 행동을 강요했다. 첫째로, 인터넷 검색은 최소한으로 할 것. 또한 앞으로의 회의는 이유불문 대면회의로 진행을 할 것.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누군가는 일방적인 부조리라고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나 또한 김 과장의 행동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그의 모습에서 검정 터틀넥 아저씨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분노하며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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