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여지고 붙이는 것
나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언제일까. 그런 순간은 반드시 있다. 나의 이름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불러보더라도 어색하지 않은데. 당연히 그것은 나의 이름일 것이 분명할 터인데. 내 이름을 바라볼 때 한 번. 타인이 내 이름을 부를 때 또 한 번. 나는 가끔 내 이름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강인한이라는 세 글자 이름.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그렇게 불렸고 스스로 그 이름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먼 미래에 내 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진다 해도 내 이름은 어릴 적 그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름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지금은 그런 인식이 좀 덜하지만 옛날에는 이름은 인생의 첫 시작이고, 이름을 잘 지어야 평생을 잘 살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작명소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개 그런 이름들을 보면 사주에 불(火)의 기운이 많아 물로 그 기세를 눌러야 한다며 관련 한자를 이름에 넣거나 부모 또는 그 윗세대 사람들이 바라는 개인적인 소망을 이름에 집어넣는 경우가 많았다. 나 또한 한자로 이루어진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세상에 나온 순간을 본 아버지는 정해둔 이름을 쓰시지 않았다. 건강하고 강인하게 자라달라는 소망 하나. 그 이름에는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처럼 큰 욕심도, 많은 뜻을 품고 있는 한자도 들어있지 않았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결정은 몇 년을 앞섰고 그러한 까닭에 나는 순수 한글로 지어진 나의 이름을 좋아한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뜬 인간도 만들고, 여러 동물 또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행위는 오직 신만이 가능했다. 흥미로운 점은 신이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끔 했다는 것이다. 무언가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상대적인 권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름을 붙임으로써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있는 신의 권한을 부여받았고 힘을 부여받았다. 이름을 짓는다는 사소한 행위는 그 의미도, 역사도 깊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붙여질 것이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이름을 붙여나갈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괜찮은 일일까?
이름이란 존재의 요약이다. 동물 중에서도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는 종. 그중에서도 성격은 어떻고 어떤 외형을 가지고 있는지 자세한 설명도 필요 없이 그 종에 속한 하나의 존재를 손쉽게 나타내는 단어. 그러나 내가 만족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나의 이름을 남이 정해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조금은 두렵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언어를 단순히 도구로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 속에 머물며 언어에 의해 존재를 드러내는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마치 언어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주인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언어가 인간을 규정하고 지배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붙여야지만, 그러니까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고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이름을 불려져야만 우리는 그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 너무나 불안정하고 가볍다. 말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증발해 버리기에 우리는 잊히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세상이 조금 비뚤게 보인다. 아스팔트에 박혀있는 여러 가지 돌은 그 색도 굵기도 다른데 왜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나뭇잎 또한 그 크기도 모양새도 다른데 똑같은 나뭇잎으로 불리는 것인지 등에 관한 시답잖은 의문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에게 관심받지 못한 존재들. 하지만 그것은 잊히더라도 나의 눈앞에서 당당히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마음속의 억울함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생각이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발견되지 않은 존재들에게 이름을 붙인 들, 다른 사람들이 그 언어를 알지 못하고 부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은 그런 이기적인 생각과 마음. 내가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그것들은 존재했었다는 사실.
어쩌면 이름을, 더 나아가서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자꾸만 줄여나가는 것은 아닐까.
소중한 내 이름이 자꾸만 낯설게 느껴질 때, 손으로 문지르며 희미해지는 글자를 바라본다. 이름이 없어도 나는 살아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이름 속에서 나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이름이 필요 없는 순간이 올지라도, 그때까지 나는 낯섦과 친숙함 사이를 오가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