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가끔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선 뜨겁고 끈적이는 것들이 뿜어져 나오는데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이내 굳어버린다. 죽은 동물의 사체가 땅속에 묻히고 그것이 또 썩어 흙이 되고 퇴적되어 화석으로 굳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시간을 들여 온전히 느끼는 것. 그런 일종의 흔적들은 지나가는 길마다 나도 모르게 흩뿌리고 섞이며 자꾸만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찬찬히 쌓여가다 뒤돌아보고 지나간 시간에 흠칫 놀라는 것. 발이 닿지 않는 정도로 깊어져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다.
얼마 전 키우던 사슴벌레가 죽었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녀석은 몸이 뒤집힌 채 아등바등 움직이고 있었다.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높은 곳에서 떨어진 탓에 그런 것 같았다. 그것이 녀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사슴벌레는 처음 키워보았기에 나는 여러 가지로 관련 지식을 찾아보아야만 했다. 집도 구하고, 이름도 붙여주고, 가끔은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며 녀석을 돌봤다. 다행히 금세 기운을 차린 듯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적당히 키우다가 낫게 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 그런 생각으로 키우기 시작했지만 막상 키우니까 이상한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돌려보냈다가 괜히 새에게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녀석도 먹이와 집이 갖춰진 안락한 생활을 원하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암컷 사슴벌레 한 마리가 함께하게 되었다. 같은 톱사슴벌레이기도 했고 혼자 있는 것보다 같이 생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를 하는 듯 보였으나 둘은 생각보다 잘 지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암컷 사슴벌레가 투명 케이스벽을 짚으며 나가려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산란하고 나서부터였는데 처음에는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수컷 사슴벌레에게 공격을 받는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 이대로 함께 지내게 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슴벌레를 모두 자연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암컷 사슴벌레 상태가 좋지 못해 수컷 사슴벌레만 돌려보내기로 했다.
나무에 녀석을 올려두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바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 녀석은 한동안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이내 죄책감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조금 더 빨리 녀석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오늘은 웃날이니 맑아지면 풀어주자. 오늘은 날이 더우니까 조금 시원해지면 풀어주자 하며 시간을 지체하지 말았더라면. 암수가 사이가 좋아 보이니까 앞으로도 좋을 거라는 착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나는 녀석을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이라는 것이. 그 정이라는 것이 잘못 굳어지면 서로가 돌이킬 수 없어지게 된다. 사람이 마주한다는 것은 좋든 싫든 서로 엮이게 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사이가 좋다 그렇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언어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대방의 생각을 예측하거나 착각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상처를 받게 된다. 깊어지게 된다면 그것도 나름 좋은 측면이 있겠지만 서로가 숨 쉴 공간 하나쯤은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둘 사이의 공간을 전부 정(情)으로 채우는 것은 초코파이를 한가득 입에 욱여넣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에 뿌려진 정은 자꾸만 사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며 없어진 정을 나쁘게만 바라보지만 나는 그것이 온전히 그립지만은 않다. 정이 없는 사회란 결국 상처받기 두려운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