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여름

by 강인한

올해의 여름이 끝나간다. 언제쯤 시원해지나 투정했는데 결국 시간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이름 붙여질 것들은 어딘가에서 화려하게 생겨났고 또 그늘진 곳에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부패했다. 여름은 언제나 매미가 크게 울었고, ‘덥다’라고 말하기보다 ‘습하다’라는 말이 입에 자주 올랐다. 무엇보다 버거웠던 건 예측할 수 없는 그 날씨였는데, 날씨가 흐려 우산을 챙겨가면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맑아 우산을 놓고 오면 여우비가 내렸다. 그렇기에 이번 여름은 우산 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은 날이 많았다.


참으로 변덕스럽다.

여름은 그런 계절인가 보다.


나의 기분은 그 계절과 같을지도 모른다. 쉽게 달아오르고 주체할 수 없이 뜨겁게. 하룻밤 새 자라난 이름 모를 식물처럼 제 몸을 키워나가기도 하지만 가끔 이해 못 할 벼락과 소낙비가 찾아올 때도 있다. 어떤 날은 더워 짜증이 잔뜩 날 때도 있지만 똑같은 더위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어떤 순간을 발견할 때면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도 괜찮다. 때로는 무언가를 이해하려 하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으니까.


이번 여름엔 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중에서도 한강 작가의 ‘흰 ‘을 인상 깊게 읽었다. 더운 여름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철학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책을 덮는 날이 많았지만. 그러다 또 심심해지면 이전에 내가 쓴 글을 하나씩 읽어보기도 한다. 참 못난 문장들이 많고 어쩐지 얼굴이 붉어지는 말들을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글들을 지우지 않았다.


글을 쓰다 보면 좋은 문장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아와 다시 보면 그 문장이 아쉬운 경우가 많다. 글쓰기라는 게 나의 실력이 조금 늘었나 기뻐하다가도 얼마 안 있어 아직 부족하다고 겸손해지는 것이지만 나는 노력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그런 것들은 쉽게 찾아오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한 순간을 경험했을 때 밀려오는 감정은 아무리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한다. 지나간 감정은 조금의 시간이라도 지나면 변하는 그런 계절과 닮아있기에. 그 순간순간의 생각과 경험은 고유하고, 쉽게 증발하지 않게 잡아두고 싶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덕은 곧 변화를 의미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못 미덥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어디로 향하던 좋은 일로 귀결되는 것 같다. 물론 그 변화의 간격에 있어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고 그 간격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 등 여러 선으로 나뉘겠지만 한번뿐의 인생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고, 그것이 타의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신이 내린 축복이 아닐까.


결국 다색의 계절에서 단색의 계절로 돌아간다. 바람이 그렇게 만들었다. 앞으로 몇 번의 비가 더 내릴 것이고, 바람은 계속해서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곤 새로운 계절이 다가옴을 속삭인다. 많았던 색들은 점차 다른 색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그 색과 빛들이 섞이고 또 섞이면 아주 흰 세상이 만들어질 테다. 나는 또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서늘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몇 가지 옷을 덧대어 입으며, 하얀 입김을 한가득 머금고 반대로. 또 반대로.


우리는 끝을 위해 변한다.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끝이 싫어 변한다.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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