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
거울 속에서 보이는 심도는 어디까지 깊어질까. 나는 가끔 내 모습 속에서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아주 또렷하고 선명하게. 어디서 봤더라. 반대로 내 머릿속은 흐릿하여 그것의 이름을 명확하게 알아낼 수 없다. 그럼 스쳐간 사람들에게 번호를 하나씩 붙여보자. 1번 , 어쩌면 35번째 스쳐간 사람일지도. 35번째 사람이 맞았나? 거울 속 모습은 실망했다는 듯 깊게 일그러지고 나는 다시 나의 모습으로 옅어진다.
42번째 사람은 옷을 잘 입었다. 나는 그 사람이 부러웠고 그렇기에 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사람이 입는 스타일대로 옷을 입었고 그 옷들의 가격은 꽤 비쌌기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과 대등해질 수 있었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42번째 사람은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으며 보란 듯이 나를 앞서나갔다. 그래서 나는 이젠 그 옷을 더는 입지 않는다.
그러면 56번째 사람은 또 어떤가. 참 성격이 좋은 사람이었다. 물론 내 성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꽤 기복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56번째 사람의 감정 조절 능력이 부러웠다. 그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쉽게 나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고, 그 모습을 닮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나는 56번째 사람처럼 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는 나. 그는 그로 나뉘어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거울 속에는 한 사람이 서 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들여 바라보면 어딘가 틈이 보이기 마련인데, 그 사람은 여러 조각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42번의 사람의 모습과 56번 사람의 조각이 맞물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자꾸만 타인의 조각들을 모아 나의 빈 공간을 메꾸려고 한다. 그 빈 공간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보이게 되면 무시당하거나 부정당하는 게 싫어 사람들에게 존경받거나 부러워하는 모종의 것들로 붙여나간다.
가끔은 별 노력 없이도 붙여지는 조각들도 있다. 그것은 비를 맞고 옷이 젖듯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 무언가가 되고 싶어져 버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닮게 된다. 56번의 사람처럼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흔적은 나에게 분명 남아있다. 나는 가끔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고 그러한 사실을 깨닫곤 한다. 나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내 빠르게 사라져 버리지만. 또한, 세상은 싫은 사람과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생각하기도 싫은 순간들을 마주하며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않을 거야 하고 몇 번을 되새기지만 결국엔 싫어하는 그 모습조차 닮게 된다. 그 순간도 깨닫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오겠지만 이윽고 기다리는 것은 끝없는 절망과 공허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거울을 보지 않는다. 얄궂은 운명이다.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보자. 잘 맞거나 맞지 않은 부분이나 모순된 부분도 보이고 언제 모았는지도 모를 조각들 또한 보인다. 내 모습은 마치 입체파 그림처럼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뒤죽박죽 섞이면서 그 모습이 꽤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기복이 있으면서도 때로는 놀랍도록 차분합니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다이어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끝을 먼저 생각합니다. 나는 여행을 가고 싶으면서도 여행에서 행여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쉬고 싶으면서도 밖에 나가서 하루 종일 지칠 때까지 걷고 또 걷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나를 보는 여러분들도 가끔 혼란스럽겠지요. 상처받은 사람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옷 잘 입는 42번째 스쳐간 사람일까요 그렇다면 차분한 56번째 사람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나입니다. 때로는 가면을 쓰지만 언제나 그 가면을 벗으려고 노력합니다. 나를 단정 짓지 말아 주세요. 우리를 틀 안에 가두어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나는 가끔 당신이 안쓰럽다가도 대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