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을 앞둔 친구는 여행 계획을 그렇게나 잡았다.
평소에 여행 가지도 않았으면서 왜 이렇게 많이 잡았대?
2년 동안 가야 할 여행 한 번도 못 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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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한동안 무언가 억제를 하면 변하게 된다. 나 또한 2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서 바뀐 부분이 많았다. 이를테면 혼자만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과,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같은 것이다. 물론 억제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기보다 제한에 가깝긴 하지만, 내가 나가고 싶을 때. 하다못해 무언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내 마음대로 어딘가 머물지 못하고 사람 없는 구석이나 공터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것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굳어버리게 되거나, 다른 방면으로 해소를 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몇 번이나 거쳐가면서 모든 것은 잊힐 수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잊힌다는 것도 거짓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2년의 시간은 내게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친구도 그랬을 것이다.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그것의 가치를 깨닫는 것을 뜻하니까. 내가 다시금 돌아보게 된 가치들은 자유, 인내, 희생정신, 애국심이었다. 세상은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늘 깨닫는다. 나도 그랬고, 나의 아버지도 그랬으며 언급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사람도 그렇다. 그렇지만 희생을 통해서 잃어버리고 제한된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각자의 마음속에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지도. 친구의 행동은 절대 이유 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감정도 그렇다. 우리는 가끔 참아야 하는 순간을 겪고, 그 이후는 각자의 책임이다. 보는 사람들이 많을 때나, 상대방에게 마땅히 불만을 표출할 수 없을 때. 누군가 계속해서 시비를 건다거나 추파를 던질 때 등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상황이란 것이 우리를 자꾸만 멈추게 만든다. 그러면 풀리지 못한 응어리는 자꾸만 제자리를 맴돈다. 그렇게 하나하나 무언가가 쌓이다 보면 이내 여유가 사라진다. 조금만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을 수 없어진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주변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슬픈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상황을 잘 아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해받기 원하지만, 또 타인에게 위로를 잘해주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채는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거짓말과 독립적인 공간이다. 누군가는 고양이가 필요할 수도, 홀로 떠나는 여행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롯이 홀로 서고, 타인에게 기대야 할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 우리가 인정하지 못했던 사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