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들의 탄핵시위
친구와의 약속이나 필라테스가 없는 주말, 나는 습관처럼 백화점으로 간다. 이번 주 토요일에도 나는 갑자기 한파로 찾아와 미쳐 대비하지 못 한 FW의 영감을 구하기 위해 여의도 더현대백화점으로 나섰다.
대통령 탄핵 시위가 한창일 터라 교통체증이 걱정되긴했지만, 금요일 출퇴근 때에도 큰 무리가 없었기에 차가 좀 밀리더라도 백화점에 도착은 가능할 것 같았다. 홍콩 면세점에서 신어본 발렌시아가 운동화의 아른거림이 좀 더 컸을 뿐 나에게도 대통령 탄핵은 '왠지 모르게' 중요했고, 택시 안에서 각종 생중계 방송들을 돌려 보았다. 교통 통제 구역을 우회하느라 평소 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기어코 발렌시아가 매장 앞에 선 내 모습이 쇼윈도에 비친다. '이 시국에 발렌시아가 여의도 매장에 오는 나도 제정신은 아니다.'
실착을 마친 뒤 나는 여느 때처럼 Ssense 앱을 열어 최저가와 남은 사이즈를 확인했다. 환율을 계산하기 위해 켠 네이버 환율 차트 위 치솟은 그래프. 그 밑으로 한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고, 비자 발급 중단, 관세 인상 등 국제 사회의 불이익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사들이 어지러이 쏟아진다. 이미 두 달 동안 날 고민하게 만든 운동화 가격이 158만 원, 그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위기감에 나는 백화점을 빠져나와 국회로 향했다.
이번 시위에서 눈에 띄는 것은 2030 여성들이 많았다는 점이라고 한다.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알려진 이 사람들을 영하의 추위에도 국회 앞에 모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스스로 2030 여성인 나에게 있었다. 환율과 관세로 발렌시아가의 가격이 치솟을까 봐, 좋아하는 연예인의 제대 일자가 미뤄질까 봐, 즐겨보는 스트리머가 검열로 인해 찰진 드립을 칠 수 없게 될까 봐, 덕질하는 아이돌의 첫 해외 투어 길이 막힐까 봐. 어쩌면 우리는 '좋아하는 것에 마음껏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일상'을 뺏길까 봐, 시위에 나선 걸 수도 있겠다.
끝끝내 탄핵안은 부결되었지만, 절망감보다는 희망과 용기의 비중이 더 높은 마음이었다. 미래로 나가고자 하는 추진력만큼이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관성도 못지않게 강하다. 누군가를 강렬히 증오하는 마음은 때때로 마음의 주인마저 갉아먹어 희미해지지만, 무언가를 애정하는 마음은 억지로 켜지지 않는 만큼이나 억지로 꺼지지 않는다.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와 떼창 하는 시위대를 보고 혹자는 민주주의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맞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한 없이 가벼운 것이다. 어떤 사상가의 거룩한 문장을 담은 구호가 아닌, 습관적 일상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민주주의는 가볍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이토록 '초경량'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뿐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시위에 나올 것이다. 나 역시 다음 월급날 Balenciaga 3XL Sneaker 를 158만원에 살 수 있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다음 주 탄핵 시위에 또 참여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