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눈꽃이 춤추듯 내려와 내 코 끝에 앉았다. 차갑다 못해 시린 감촉이었다. 내 시선 속에는 조금은 낡은 학교가 하나,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을 나무의 밑동만이 멀겋게 차 있었다.
‘이상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영문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본 것만 해도 거진 30년을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하던 나무였다. 그런 나무가 내가 잠시 마을을 뜬 한 달 만에 잘려서 밑동만 남았다. 그 나무와 함께 연도 사라졌다. 언제나 나무 아래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던 연이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연이가 없다. 있어야 할 곳에 그녀가 없다. 공기는 차가운데 반해 내 정신은 지옥 불구덩이에 던져진 듯 뜨겁게 끓어 넘쳤다. 그런데 이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낯설어야 할 그 상황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녀가 없다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당연했다.
나는 나무가 잘려 나가서야 받아들인 것이다.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지던 기행이 끝난 것이다. 나는 마침내 그녀의 그림자에서 해방인 것이다. 물론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가능하면 평생 묶여 살길 바랐다. 평생 꿈에서 깨지 않아서 이 꿈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신이 생각하기에도 내 꿈이 너무 길었나 보다. 나는 마침내 깨워졌다.
잘려나간 나무 밑동 위에 앉으니 등허리가 다 시려졌다. 그 시림은 허리를 타고 목을 지나 머리까지 올라와서 내 머리까지 식혔으나 내 속은 그와 반대로 열이 올라 몸속의 수분이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이제 이곳에도 겨울에만 눈이 오겠구나.’
5월에도 눈이 내리던 이곳은 이제 그녀를 잃고 다른 곳과 다를 것 없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여기에서는 5월에도 눈이 내리는 기적을 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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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발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