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기념관과 공원에서 배우다
여행은 귀찮음과 설레임이 공존한다. 나이 들면서 새벽 5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토요일이지만 서울 여행을 위해 몸을 일으켜서 냉장고에서 어제 먹던 찬밥과 남은 반찬으로 비벼 아침을 해결했다. 광주에서 처음 타 보는 지하철이기 때문에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핸드폰 속에는 모든게 들어 있다. 나의 각종 정보와 길치인 나를 목적지까지 알려주는 맵이 있다. 외국에서는 구글맵이 정확하고, 국내에서는 네이버 맵이 나에게 맞는다.
맵이 알려주는 데로 가까운 역까지 가서 핸드폰을 테그에 접촉했지만 작동이 안됐고, 몇차례 해도 삐소리만 크게 울려서 당황스러웠다. 포기하고 둘레를 한 번 쓰윽 살핀뒤 실물 카드를 사용했다. 이럴때마다 당황스러지만 카드가 있어서 다행이었던것 같다.
광주로 내려오지 한달 되었는데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니 서툴음이 표가 났다. 지하철 안에서 도착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다행이 기차 출발 30분 전에 넉넉히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송정광주역이기 때문에 기차역에 앉아만 있기에는 아쉬웠다. 서울역가는 레인을 확인하고, 기차역 밖으로 나와서 지하철과 버스역 주위를 둘러봤다. 돌와왔을때 길을 헤메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혼자서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 걷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택시요금이 가성비가 없기 때문이다. 걷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면 갔던 곳도 다음에 갔을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차는 정시에 도착했고, 나의 자리에 앉았지만 두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근질근질 해졌다. 목적지까지 4시간 반이나 걸리는데 절반밖에 안왔는데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후회를 했다. 무궁화 기차는 웬지 운치도 있고, 창밖으로 낭만을 즐기리라 생각했는데, 창문은 햇살때문에 일괄적으로 블라이드로 80%이상 가려져 밖이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충전할 곳도 보이지 않았다. 더이상 자리에 앉아 있기가 싫었다. 가방은 자리에 놓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옆 호에 자유석이 있고, 충전을 할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자리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충전하면서 기댈 곳이 있었다. 그렇게 몇차례 왔다 갔다하며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는 혼자 먼곳을 갈때 무궁화는 패스해야겠다.
용산역에 12시반에 도착했고,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역으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었다. 하늘은 언제라도 비가 올것처럼 먹구름이 군데 군데 포진을 했다. 여행에서 비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첫 여행지로 서울에서 번화가인 강남, 강남에서도 번화가인 신사동에 위치한 도산공원을 갔다. 이번에 강남으로 목적지를 정한 이유는 숙소가 강남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정은 강남에서 즐기려고 한다.
서울을 업무와 여행으로 자주 왔지만 신사동은 처음이다. 옛날 모 여가수의 신사동 그사람리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났다. 가요는 살아가는 시대를 안고 있어서 더 애틋한것 같다.
요즘 노래는 들어도 무슨 노래인지 도통 알아들을수 없다. 젊은 직원에게 내용을 알며 듣냐고 물으니 내용은 모르고 리듬으로 듣는다고 한다. 리듬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모르며 즐긴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다. 이것이 세대차이인가보다.
신사동은 헤르메스, 구찌 등 고급 브랜드와 갤러리가 즐비해 있었다. 1년에 년중행사로 미술관을 가는데 이곳은 골목마다 갤러리가 있다. 슈프림 옷 가게는 손님이 끝이 보이지 않게 줄을 섰다. 옷을 사는데도 저렇게 줄을 서는구나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20에서 30대 정도로 보였다. 부자 동네라 그런가 세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20분 전에 서울역 앞에 계단에는 비가 와서 인지 50미터 정도 걸인들의 옷들이 계단 위에 걸쳐 있었다. 어느쪽도 나는 이해가 안된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살고 싶다. 이런 현상은 생각없이 스쳐가고 싶다.
번화가 옆에 도산공원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도산공원이 반가웠다.
도산 안창호는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의 인격과 도덕적 기초를 세워야 독립이 가능하다고 강조한 정신적 지도자였다. 도산 선생을 기리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소나기가 그치지 않아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교과서에서만 보다가 그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체험할 수있는 것이 역사와 현재가 같이 공존하는 곳이다. 산책도 즐기며 도산선생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