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30
"쏴! 쏘란 말이야. 저 미친 xx가 라이터를 바닥에 던지기 전에 쏴버려 "
경기남부 경찰청장의 고함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사방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경찰 특공대 저격팀장은 경기남부 경찰청장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인질의 안전이 염려되어 바로 사격 명령을 내리지 못하였다. 불행한 일은 알 수 없는 우연이 겹쳐서 일어나게 되어있다. 왜 하필이면 저격팀에 배치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가 두 명씩이나 있었을까? 왜 그 두 명이 현장 견학을 이유로 이 현장에 투입되었을까? 왜 굳이 견학생에게 실제 총을 지급하고 실전의 느낌을 체험해 보라고 지시했을까? 그냥 겨냥만 하고 있어도 되는 데 극도로 긴장한 두 사람에게 H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으라고 하였을까? 정답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경기남부 경찰청장의 거친 고함소리는 그들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른손 검지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다.
"탕! 타탕!"
음산하게 불어오던 바닷바람이 순간 멈칫하고 굳어져 버렸다. 정신 사납게 창고를 서성거리던 경찰의 서치라이트 불빛도 고정되어 한 자리에 딱 멈춰 버렸다. 급하게 박팀장이 H 쪽을 바라보았다. 불붙은 지포 라이터가 H의 손에서 벗어나 창고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아니 마치 H의 오른손이 길게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중을 날아가며 흔들리는 불빛에 지포 라이터의 촌스러운 미국 성조기가 비췄다 사라졌다를 반복하였다. 마치 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것 같아 보였다. 세상이 온통 초 저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박팀장은 서서히 고개를 우측으로 돌려 H를 보았다. 잘려나간 오른팔에서 핏 방울이 알알이 방울져 터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뒤쪽으로 날아가 듯 무너져 내리는 H의 모습이 슬로우로 재생되었다. 박팀장의 목이 움찔거렸다. 입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도 느린 속도에 박팀장 자신도 스스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라이터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몸은 쉽게 움직여 주지 않았다. 박팀장의 입에서 '안돼'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뒤로 쓰러진 H가 어리둥절하며 몸을 바로 일으키기도 전에, H의 손과 함께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던 성조기를 휘날리던 지포라이터가 창고 바닥에 닿기도 전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파아란 불꽃이 노랗고 빨간 불꽃을 감싸고 폭발하듯 공중에서 생겨났다. 그래 맞다! 생겨난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형사는 갑자기 지난 크리스마스 때 특선영화라며 질리게 틀어주던 해리포터 영화의 한장면이 떠 올랐다.
정일도료 전체를 두 손으로 꽉 움켜잡고 있던 어둠과 적막이 '안돼'라는 단어가 박팀장의 입을 헤집고 세상으로 튀어나오자마자 순식간에 허상이었던 것처럼 와르르하고 무너져 내렸다. 가장 먼저 터져나온 소리는 소방관들의 목소리였다.
"인질부터" "안 돼 못 들어가", "진화!", "물은 안 돼", "신너 하고 페인트잖아.", "특수 소화액부터 쏴!"
순식간에 최면에서 풀린 듯 현장은 여러 사람의 고함 소리와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마구 섞이어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찰은 창고 쪽에서 밀려오는 어마어마한 열기와 불꽃에 한 발자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창고로 뛰어들려는 박팀장의 어깨를 송형사와 후배 형사가 간신히 붙잡아 말리고 있었다. 특수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인질 구조를 위해 창고 문 앞까지 접근했지만 시위하듯 터져 나오는 거친 불길에 더 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하였다.
"아악!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 "까아악!", "어떡해!"
서서히 마취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사람들이 다가오는 불길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창고 안을 가득 메운 불길과 연기 그리고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섞이어 한 장의 지옥도가 그려져가고 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H는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넘실거리는 노란색의 불길이 붉고 푸른색으로 계속 변해가며 창고 쪽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불꽃 아래 왠지 익숙한 지포라이터와 그 라이터를 굳게 잡고 있는 손가락이 보였다.
'어? 내 손이 왜 저기 있지? 가져와야지. 곧 개기월식이 시작될 텐데. 어서 준비해야지'
H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집어오기 위해 일어섰다. 그러나 몸은 H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더구나 오른팔과 왼쪽 가슴에서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다. 움찍거리며 일어서려던 H는 다시 주저앉았다. 고통에 끙끙거리는 H의 귀에 이선희 구급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꼴좋네. 미친 XX. 네 뜻대로 안 될 거다. 곧 소방관들이 진압 들어오면 이 정도 불은 금방 꺼지게 될 거야. 구원?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구원은 무슨 구원. 너 자신이나 구원해."
"흐흐흐 구원? 그래 구원해야지. 너희 천사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이제 포기해."
H는 이선희 구급사를 한번 쳐다보더니 자신의 오른손 쪽으로 기어갔다. 바닥에 뒹글고 있는 오른손은 이미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H는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덥석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곳으로 집어던졌다. 불붙은 H의 오른손이 떨어지자 미리 뿌려놓은 신너에 불이 점화가 되었다. 그리고 H의 몸도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미친놈아 무슨 짓이야?"
"말했지? 구원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해!"
말을 마치자마자 H는 괴기스러운 미소를 남기고 창고 문쪽으로 갔다. 양쪽 문을 붙잡은 H는 특수소화액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몸으로 막아섰다. 이선희 구급사는 그 모습에 경악을 하고 말았다. 몸의 앞쪽을 가득 덮은 특수 소화액 때문에 등쪽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앞쪽으로 번지지 못하고 있었다. 몸의 반만 타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야이 미친놈아!"
특수 방화복을 입은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문을 막고 있는 H에게 몸으로 태클을 걸듯이 달려들었다. 김성중 소방사였다. 비록 방화 살인범이지만 친구이기에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것이다. 성중이는 너무도 궁금했다. 왜 도대체 왜? H가 그런 일을 벌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성중이는 꼭 들어야 했다. 무엇 때문에, 무엇이 H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렇게도 상냥하고 소심했던 친구가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범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가 자기 입으로 자신은 살인범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살려야 했다. 저 불 속에서 죽게 놔둘 수 없었다. 김성중 소방사를 필두로 특수 방화복을 입은 다른 소방사들도 소형 소화기와 소방호수를 끌고 창고 안으로 속속들이 들어왔다.
"저쪽부터 소화액 뿌려", "저기 저쪽 철장문, 빨리!", "절단기 이쪽으로!", "여기 구조자 밖으로 끌고 나가"
아비규환 속에서도 소방관들은 자신의 안전보다는 인질들의 구조에 우선적으로 매달렸다. 그런 소방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먼저 불이 붙었던 창고 좌측 철장들은 이미 거대한 화마에 휩싸여 구조가 불가하였다. 철장 속에서 지옥의 절규와 같은 비명이 공단의 어두운 밤하늘 위로 퍼져나갔다. 소방관들은 이를 꽉 깨물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철장에 있는 인질들의 구조가 더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중이에 의해 바닥에 쓰러진 H의 등에도 소화액이 쏟아져 내렸다. 불이 꺼지자마자 H는 창고 외부로 끌려 나왔고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창고 속에서 들려오는 초열지옥의 절규를 들으며 H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창고 위로 불타오르는 거대한 화마가 점차 엄마의 얼굴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H를 보며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H가 정신을 잃자마자 엄마의 얼굴은 서서히 검은 연기에 휩쌓여 거짓의 군주인 벨리알의 얼굴로 변하여 H와 똑같은 웃음을 지으며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의사는 뭐래?"
"하참!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뭐라고 하는데?"
"아직 살아는 있는데 살아도 산 게 아니라네요. 의학적 전문용어로 PVS, 쉬운 말로 식물인간 상태라고 합니다. 근데 의사들도 곤욕스러워하는 게 저 사람 몸 내부에 불이 붙어서 계속 타고 있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이 무슨 연탄이야? 계속 타오르게?"
"팀장님 미국의 센트레일리아라고 들어 보셨어요? 사일런트 힐이란 공포영화의 배경이 된 불타는 동네?"
"그 석탄이 잔뜩 묻혀있어서 불이 안 꺼지고 아직도 63년 넘게 타고 있다는 그 도시 말이야? 그런데 범인 상태를 물어보는데 그 동네는 왜?"
"지금 H 씨의 몸속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해?"
"의사들도 의학적으로 절대 설명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학회에 보고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신이란 것이 진짜 있기라도 한 걸까? 아무튼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거지? 회복될 가능성은 없데?"
"네. 저렇게 조금씩 불에 타는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야 한답니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고통이라 진통제도 고통을 줄여주지 못한답니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홀로 죽을 때까지 버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답니다. 그렇다고 강제로 죽일 수도 없고요."
박팀장은 미움과 연민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H를 바라보았다.
"참! 팀장님! 피해자 중 박찬기 차장 말입니다. 그놈도 완전 개XX 던데요? 생존자인 이선희 구급사의 과거 연인이었답니다. 물론 데이트 폭력은 기본이었고 유산도 2번이나 시켰다고 하네요. H가 아무 이유 없이 죽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뭐 죽은 놈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개XX 다운 죽음이었네."
"그리고 H를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어릴 때 발생했던 화재 사고 기록이 아직 남아 있더군요."
"의붓아버지 밑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숙식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그러다 H의 실수로 비닐하우스에 불이 나는 바람에 부모가 모두 불타 죽었답니다."
"H가?"
"네. 소방차가 출동했을 때 비닐하우스는 이미 홀라당 타버렸고 라이터를 손에 쥔 채 넋을 놓고 있는 H만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하네요. 근데 소름 끼치는 사실은 두 사람이 쇠사슬에 묶인 상태로 타 죽었다고 합니다."
"의붓 아빠의 아동폭력을 인한 트라우마가 H를 저렇게 만든 것인가?"
"아닙니다. 가정폭력은 의붓아빠가 아니라 친엄마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답니다. 거칠기로 주변동네에 소문난 여자였답니다. 알코올중독에 폭력에... 오히려 의붓아빠가 H를 업어 키웠답니다. 취하면 남편도 쇠사슬로 묶어놓고 때리곤 했답니다. 화재 이후 무슨 이유에선지 기억을 완전히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답니다."
"휴! 친엄마라는 여자가 아이를 완전히 버려놓았구먼. 차라리 기억을 잃은 채로 사는 것이 좋았을 것을.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났다면 저 놈도 인간답게 살 수 있었을까?"
"글쎄요? 그거야 모를 일이죠. 그나저나 식물인간 상태에서도 고통은 고스란히 느낀다니 지옥이 따로 없네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죗값을 톡톡히 치르네요."
온몸에 전선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5개 이상의 링거 수액이 투명한 관을 통해 H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앞면 피부는 온통 젖은 붉은색 거즈로 도배가 되어있다. 뒤쪽의 거즈는 열기로 인해 검게 변해 있고 찐득한 진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밀려드는 고통에도 H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니 이상하게도 기절조차 하지 못했다. 눈도 불에 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만큼은 또렷하게 알아 들었다.
'무슨 소리지? 아빠가 아니고 엄마가 폭력범이었다고? 나를 때리고 학대한 것이 엄마라고? 그럼 내가 꾼 꿈은 뭐야?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이 잘못된 기억이었다는 거야?'
'그냥 너의 잘못을 피해 달아나고 싶었던 너의 죄의식이 기억의 왜곡을 만들어 낸 것이지.'
'누구?'
'나?'
'안 보여? 9살에 잃어버렸던 너 자신, 네가 죽인 아빠. 그리고 네가 죽여버린 모든 사람들'
'도대체 왜?'
'왜 너에게 이러냐고? 아니 아니, 착가하지마! 우리가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야. 너의 피 속에 흐르는 살인과 폭력의 DNA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지. 우리를 봐! 너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보라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H의 망막에 병실의 풍경이 하나 둘 비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침상 주위에 서 있는 형상들도... 찢기고 잘라지고 검게 불타 버린 흉측한 형상의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는 너와 함께 할 거야. 아주 천천히. 네가 불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영원히....'
30부의 대 장정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긴 장편 소설을 처음 써 보았습니다. 첫 장편소설이라 엉성하고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환경의 중요성과 잘못된 믿음 혹은 신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이 소방관이 아닌 정치인 혹은 독재자였다면 희대의 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요. 미천하지만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