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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 경찰서 박형사

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16편

by 곰탱구리


"쓰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박팀장님 또 뭐가 이상해? 맨날 이상하단 소리를 입에 달고 사냐고?"

"내가 뭘 또 매일 이상하단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고 그러십니까 반장님? 아니 딴 게 아니고 지난번 구월동에서 분사한 노숙자 말입니다. 실화로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사항이 있어서"

"뭐가 또 애매해?"

"반장님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화재로 죽은 시체의 피가 4~5m 떨어진 벽까지 튀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건 현장 검증 때 과학수사대에서 불을 피하려다가 넘어지면서 후두부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판명 났잖아."

"에이 노숙자라고 부검도 안 하고 검안도 대충 때운 거 뻔히 아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너 할 일이 없구나~! 아주 심심해 죽겠지? 인천시청역 묻지 마 폭력 사건 용의자 어떻게 됐어? 구월동 L오피스텔 절도건은?"

"에이 알았어요 알았어. 인천시청역 쪽에 나갔다가 바로 퇴근합니다."

"뭐 퇴근? 야이 자식아~! 뭔 퇴근이야 퇴근이? 저게 동기만 아니면 그냥 콱 조져야 하는데"

"송형사야 나가자~! 구월동으로 드라이브나 하자고"


박찬유 형사는 인천 남동 경찰서 강력계 1팀의 팀장이다. 성격이 까칠하고 집요하며 다혈질이라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폭력적이고 과격하여 수차례 징계를 받았고 그로 인해 진급을 못하고 만년 팀장으로 동기를 반장으로 모시고 하루하루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집요한 성격 덕분에 관내에서 발생한 강력 사건 몇 건을 해결해 남동 경찰서에서는 나름 에이스로 불리고 있으며 특히 젊은 여성이나 어린아이와 관련된 살인, 납치 등의 강력 사건에는 특유의 집요함을 극한으로 발휘하여 끝까지 범인을 추적하여 검거하고야 만다. 남들은 단순히 강력범죄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박팀장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내가 무릎 꿇고 빌께. 아니 아니 여자와 아이는 풀어주고 날 대신 인질로 데려가. 제발 이렇게 빌 테니 그 사람들은 살려줘"

"시발 경찰 따위를 인질로 잡아서 어쩌라고. 우리가 미쳤어? 잔소리 말고 주변의 경찰 다 철수시키고 우리가 타고 갈 차량하고 돈 1억만 준비해 놔"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인천 논현동의 어느 작은 빌라 2층이었다. 22년 전 박찬유 형사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전세로 얻어 꾸민 스위트 홈이었다. 인질로 잡혀있는 사람은 박 형사의 부인과 3살 된 딸이었다. 범인은 논현동에 있는 보석상을 침입하여 물건을 훔치던 중 가게에서 숙식을 하던 주인에게 발각되자 칼로 살해하고 도주하던 2인조 강도였다.


놈들은 빌라촌으로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중 하필이면 남편을 기다리느라 불이 켜진 박형사의 집으로 침입하였던 것이다. 높이가 낮은 2층 빌라인데다가 박형사가 하필이면 담배를 피우느라 열어두었던 창문으로 침입했던 것이었다. 하필 박형사가 담배를 피우다가 급하게 배가 아파 화장실로 들어갔던 탓에 놈들의 침입을 막지 못했던 것이었다. 놈들은 들어오자마자 여자와 아이의 목에 다짜고짜 칼부터 들이댔다.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여자의 목소리에 박형사는 급히 화장실을 나왔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에 얼어붙고 말았다.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부인과 딸아이의 목에 시퍼런 사시미 칼이 금방이라도 파고들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무릎부터 꿇어 버렸다. 그러고는 하찮은 살인범들에게 빌기 시작했다. 아내와 딸 만큼은 살리고 싶었다. 두 손을 미친 듯이 비비며 마치 누가 더 많이 비빌 수 있는지 시합을 하듯이 빌고 또 빌었다.


지독히도 재수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더러운 운명 때문이었을까? 그런 박형사의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된 덕분에 인질들의 목을 압박하던 사시미 칼이 슬며시 내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박형사의 절박한 목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고요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바로 순간 박형사의 추레한 추리닝 주머니 속에서 거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야! 전부 박형사 집으로 출동해. 주소가 어디지? 기동 타격대도 연락해"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정적이 찾아온 좁은 방 안에서 퍼져나가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다. 화장실에서 논현동 보석상 살인사건 때문에 동기와 통화하다가 아내의 비명소리에 주머니에 허겁지겁 쑤셔 넣고 나왔던 휴대폰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던 것이다. 인질 사건이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대한민국의 인천 변두리 지역 경찰에게 대응매뉴얼이나 대처방법이 따로 훈련되어 있을 리가 없는 미욱한 시기였다. 남동 경찰서는 휴대폰에서 들리는 소리에 발칵 뒤집어졌고 긴급 출동 준비 과정이 조금의 여과 없이 운동 경기를 중계하 듯 박형사의 휴대폰을 통해 방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얼굴의 표정이 바뀐 범인들은 무릎 꿇고 있는 박형사를 발로 차버리고 다시 칼을 들어 인질들의 목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아이를 안은 인질범이 방의 불투명한 창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이미 남동 경찰서의 연락을 받은 주변의 파출소 경찰들이 집 주변을 포위하고 숨어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어설픈 대처였다. 범인들은 주변의 상황을 확인하고는 매우 불안하게 안절부절못하였다.

"핸드폰이 켜져 있는 줄 몰랐습니다. 통화하다가 갑작스럽게 나와서..."

"시끄러워 이 새끼야! 니 마누라 하고 애 하고 싹 다 죽어야 정신 차리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진짜 실수였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두 사람은 헤치지 말아 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죽이시려면은 저를, 저를 차라리 죽이세요."


그때 아이를 데리고 있는 범인이 말했다.

"형! 저 새끼 형사인 것 같은데 우리 제대로 똥 밟은 것 같아. 시발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이것들 인질 삼아 도망갈 방법이나 생각해 봐야지. 시발 그 애기 잘 데리고 있어. 여차하면 인질로 데리고 가야 되니까. 야 이 새끼야 칼은 내려놓고. 애가 무슨 힘이 있다고 목에 칼 겨누고 있냐?"

"아니 뭐 혹시라도 해서 그랬지"

"어차피 막장 인생이야. 시발! 영화 처럼 한번 해보자고. 죽더라도 인질극이나 한번 멋지게 벌려보는 거지 뭐"

"선생님들 제가 형사입니다. 지금 자수하시면 제가 최대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제발 칼 좀 내려놓으시고 자수하세요."

"킥킥킥킥 자수? 너 우리가 뭐 하다 여기 들어왔는지 모르지?"


순간 박형사는 동기와 통화하던 보석상 살인사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가족 3명을 사시미 칼로 잔인하게 10번 이상 찔러 죽였다는 동기의 흥분된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듯했다. 그때 밖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타격대까지 동원된 경찰들은 주변을 포위하고는 인질범과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아 아! 정민철, 하정민 잘 들려? 나 인천 경찰 서장이다. 거두절미하고 지금이라도 인질 풀어주고 자수하면 선처해 줄 테니 얼른 칼 내려놓고 자수해"

"웃기지 마 시발놈들아! 자수한다고 퍽도 잘 봐주겠다. 잘해야 무기징역 나오겠지. 전과도 있는 데다가 방금 살인도 저질렀는데 뭔 선처? 시발! 그런 쉰소리 집어치우고 돈 1억하고 우리가 타고 갈 차량 준비해. 경찰들은 다 물러가고... 안 그러면 여기 가족들도 싹 다 죽여버릴 거야. 한번 저지른 살인 두 번은 못할 것 같아?"

"이봐 내가 인천경찰청장이야. 최대한 선처될 수 있도록 내가 힘써 줄 테니 자수해!"

"웃기지 말고 돈하고 차나 준비해. 야! 넌 애기 내려놓고 베란다에 있는 석유통이나 가져와. 씨발! 수틀리면 확 불질러 다 같이 죽자고. 야! 정민아. 너 뭐 하고있어? 석유통 가져오라니까?"


하정민은 잠시 머뭇거리다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러고는 석유통을 들고 방으로 다시 들어와 바닥과 침대에 마구 뿌려 버렸다.

"야 임마! 뭐 하는 거야? 그걸 왜 벌써 뿌려? 그냥 위협용으로 가지고 있자니까"

"형 이래야 저 새끼들 못 들어와. 저쪽에 경찰 특공대라고 쓰인 차까지 왔잖아. 저격수도 배치되어 있을거고, 우리 잘못하면 총 맞아 죽는다고. 이렇게 석유를 뿌려놔야 함부로 총도 못 쏘고 잡겠다고 들어오지도 못하지"

"그런 거냐? 하 이 새끼. 아주 나보다 더한 새끼네. 미친 새끼 여자하고 애까지 미친 듯이 칼로 찌르더니 뭐 수사반장이라도 봤냐? 아는 척은"

"시작은 형이 해 놓고 왜 나한테 뒤집어 씌워? 난 형이 주인을 찌르길래 따라한 것뿐인데"

"야 이 새끼야 뒤집어 씌우긴 누가 뒤집어 씌워? 시발 그건 일단 나가고 난 뒤에 따지고, 저 새끼나 묶어놔. 형사라는데 갑자기 달려들면 어쩌려고"


"선생님들. 이러지 마시고 제발 여자와 아이는 풀어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한테 그러지 말고 저 밖의 경찰들한테 돈하고 차 보내라고 해. 그리고 선생은 개뿔. 우리 전과자야"

그때 밖에서 인천 경찰청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경과한다. 인질을 풀어주고 자수하면 최대한 선처해 줄 테니 자수해. 마지막 경고야"

"청장님~! 저 남동경찰서 박찬유 형사입니다. 제 아내와 아이가 인질로 잡혀있습니다. 제발 자극하지 마시고 돈과 차량을 준비해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안 그러면 모두가 죽습니다."

"뭐야? 이 자식야 형사란 놈 입에서 그런 말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와? 범인을 잡지는 못할 망정 범인들한테 잡혀서 인질이나 되고. 헛소리하지 말고 범인들 설득시켜 자수하게 만들어"

"청장님! 지금 그렇게 범인들을 자극하시면 인질들이 위험합니다. 저놈들 방금 금은방에서 일가족 3명 몰살하고 도망치던 아주 흉악한 놈들이라고요. 저희가 할겠습니다. 그냥 뒤에서 전체적으로 지휘만 해주십시오"


남동 경찰서 강력계 반장이 여러 차례 사정사정을 하고 나서야 경찰청장은 손에 들고 있던 메가폰을 반장에게 넘겨주고 자리를 떠나 인근 식당에 마련된 임시 본부로 들어갔다. 임시본부에서는 기동타격대장과 여러 명의 경찰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저격을 하던가 진입하던가 뭔가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식당 안을 휘젓고 다니는 기동타격 대장과 일단 돈과 차를 준비하자는 인천 남동경찰서장이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전과 4범에 방금 아이를 포함한 일가족 3명을 잔인하게 살인한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한테 돈과 차를 준비해 주고 협상을 하자고요? 시민들이 경찰을 뭘로 보겠습니까? 개나 소나 인질 붙잡고 돈하고 차 내놓으라면 계속 호구처럼 돈 주고 차주고 그럴 겁니까? 협상은 안 됩니다. 청장님 발포명령 내려주세요. 저런 새끼들은 쏴 죽여야 됩니다. 협상은 말도 안 됩니다."

"청장님! 경찰이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도 분명 맞지만 선량한 국민을 보호하는 것도 경찰의 의무입니다. 지금 강경 진압을 하게 되면 인질이 위험합니다. 더구나 우리 식구인 형사 가족입니다. 시간 좀 주십시오. 어떻게든 설득해야 합니다. 당장은 범인들을 놓치더라도 인질을 무사히 구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남동경찰서장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러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신문기자라는 신문기자는 죄다 몰려왔어. 방송국에서도 온 것 같던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범인과 협상하고 범인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 야! 기동타격대장. 지금 이 시점부터 실탄 발포를 명령하니까 저격수한테 보이는 데로 쏘라고 해. 그리고 가짜 돈하고 차를 준비해서 빌라 앞에 대기시켜. 나오는 데로 저격해"

"넵 청장님" "청장님!"


귓속을 울리는 총소리, 사방에 튀는 핏방울들, 아내를 붙잡고 있던 놈이 어깨를 부여잡으며 쓰러지는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보여졌다. 그러고 갑자기 타오르는 불길에 박형사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침대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에 다다르지 못했다. 무언가 자신에게 강력하게 부딪히는 느낌과 동시에 유리창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얼굴에 떨어지고 있었다. 허공을 날고 있는 자신의 눈에 활활 불타오르는 자신의 집이 잠시 비치곤 완벽한 어둠이 박형사를 덮쳐왔다.




"선배님 뭔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세요?"

"응? 생각은 무슨?"

가슴 아픈 과거 속에 잠겨있었던 의식이 후배형사의 말 한마디에 현실로 돌아왔다. 어느새 인천시청역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시발~! 갑자기 뭔.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노숙자 때문에 옛날 생각에 빠져 버렸네. 이제 잊을 때도 되었는데 잊히지가 않네'

"선배님 저거 그놈 아닌가요? 묻지 마 폭행범?"

후배는 차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응? 뭐? 누구?"

박형사도 뒤늦게 차량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악~!!!!!!"

그때 후배 형사 뛰어간 쪽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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