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도 사랑을 할 수 있나요

느리게 자라는 용기

by 단여름

'회피형은 절대 만나선 안된다.'


누군가 내게 한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회피형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믿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과연, 사람을 고쳐쓸 바에 안 만나는 것이 나을까? 회피형은 절대 만나선 안될까? 정말 회피형은 사랑을 하지 못할까?


연애 초반의 그는 전형적인 회피형이었다. 그는 나의 감정 표현을 버거워했다. 매번 우리 관계를 포기하려 했다. 자신이 힘들다고 느끼면,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매번 그의 감정과 생각을 숨겼다. 상처가 두렵기에 먼저 등을 돌리고, 갈등이 답답해서 침묵했다. 내가 서운함을 말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방어하기에 바빴다.


이상하게도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몇 번의 이별 위기에도 우리는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그와 나는 지치는 속도보다 발전의 속도가 더 빨랐다. 아니, 불행이 더 커져도 그것이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려 애썼다. 우리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계속 모색해 나갔다. 그는 아주 조금씩 감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안해." 한마디를 꺼내는 것도 참 오래 걸렸다. 그래서 내가 먼저 사과하고, 감사를 표현했다. 그도 서서히 나에게 물들어갔다. 어느 순간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나도 내가 왜 도망치는지 모르겠어.

이런 나를 고치고 싶어."


그날 이후, 나는 사랑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다 보기 시작했다. 강연, 도서, 쇼츠 등 가리지 않고 공부했다. 그렇게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그에게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변화는 느리고 천천히 시작되었다. 시작은 창대한 다짐이었다. 더 이상 회피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 변화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한 번에 잘 되진 않는다. 그는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나, 공격적으로 말하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하루는 흐릿해진 방어기제가 뻥 터지며 회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확실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드러내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친밀한 순간에 더 차갑게 굴고, 관계를 안전하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애착은 고정된 성격이 아니다. 관계 속에서 다시 쓰이는 이야기에 가깝다. 미국의 애착연구자 메리 메인(Mary Main)은 이를 'Earned Secure Attachment(후천적 안정애착)'라고 불렀다. 반복적인 긍정 경험과 신뢰가 쌓이면, 회피형도 점점 더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회피형을 겪은 적이 있다면, 마냥 피하는 게 공식이라고 여기지 않길 바란다. 그들의 무심함과 도망이 때로는 책임감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사랑을 지키는 법을 아직 찾지 못한 이들에 가깝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발현된 기질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을 확률도 높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의 아픔과 상처까지도 안고 가는 것이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거절의 두려움을 품고 회피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가 할 일은 상대를 보듬어주는 것이다. 더 알아봐 주고, 더 사랑하고, 더 포용해 주는 것이다.


회피형도 사랑을 할 수 있다.


당신이 그를 진정 사랑한다면, 느리게 자라는 용기를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전적인 믿음과 헤아림은 사람을 무한히 성장하도록 만든다.


사랑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상대는 세상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또한 사람은 저마다 아픈 사연과 결핍이 있다.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조금 더 그를 믿어준다면

그들도 결국은 사랑을 할 수 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