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미움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아주길
"예전엔 너한테 서운하단 말, 참 많이 했어.
그런데 요즘은… 아무 말도 하기 싫더라.
마음이 식은 걸까?
아니, 그냥 너무 지쳐버린 거야."
결혼이나 연애를 하고 있는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체념한다. 갈등을 잘 조율하고 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통 그런 편이다. 그들은 초반에는 상대의 문제점에 화도 내고, 불만을 제기하며 관계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럼에도 반복된 문제가 달라지지 않거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답답함을 느낀다. 이내 노력에 대한 결과가 돌아오지 않음을 깨달으며 포기한다. 이때 포기란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관계 자체를 끊어내거나, 관계를 이어가되 더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자신에게 소홀해진 남자친구를 보며 '이렇게 사귀다간 스트레스 받아서 죽어버리고 말 거야.'라는 여주인공의 독백적 어조가 나온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조그마한 일이라도 서운함을 느끼고 감정을 티내게 된다. 반대로 서운한 마음도, 화도, 기대도,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위험하다는 징조라고 볼 수 있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을 때, 그게 진짜 사랑이 멀어진 순간이다. 드라마 속 그녀는 남자친구를 통해 스트레스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별카드를 손에 쥐고 그에게 가지만, 감정이 남아있기에 먼저 내밀지 못 했다. 이렇듯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마음의 울림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사랑이다.
나는 초반부터 그에게 서운함을 잘 표현했다. 숨기지 않고 모든 감정을 분출했다. 어쩔 때는 답답한 마음에 과할 정도로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잘 포장하여 감정을 말했을 때도, 터지듯 분출을 했을 때도 전부 사랑에서 나온 표현들이었다. 마치 사랑이 가득 담긴 머그컵에서, 사랑이 쏟아져 나온 것처럼. 그러나 과거의 그는 내가 어떤 식으로 말을 하건 불편함을 나타냈다. 자신이 이제껏 해온 것들을 부정당한다고 느꼈다. 그리고선 자신을 방어하거나, 나를 공격하는 식의 말로 번져나갔다. 왜곡된 상호작용의 대표적인 예시였다. 나는 사랑하기에, 관계를 지속해나가기 위해 서운함을 토로했지만, 그에게는 매번 공격으로 인식되었다. 더욱이 그런 다툼의 끝은 매번 그의 이별통보였다. 외로운 감정이 사무치게 밀려오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사랑하는 감정의 진짜 이름은 '서운함'에서 시작된다. 내 울타리 밖의 타인에게는 기대도 없으니 서운함도 없다. 서운함은 미움이 아니라, 여전히 그 사람을 믿고 있다는 증거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포기하지 않겠다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다.
여기서 보통의 회피형은 감정을 말하기를 꺼려하고 내부로 숨는 것을 택한다. 그들은 상대에게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에 그런 기질이 발현된다. 반대로 불안형은 감정을 너무도 쉽게 표현하고 말한다. 때로는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도 관계에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애착 유형은 서로 다르지만, 회피형과 불안형 둘의 공통점이 있다. 둘은 표현 방식이 다르더라도, 결국 상대방의 사랑과 인정을 원한다.
나는 한때는 회피형으로 연애를 해왔고, 또 한때는 불안형으로 연애를 했다. 사람간의 관계에 있어 100:0 과실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먼저 바뀌어야 하는 건 있다. 회피형은 기본적으로 자기긍정-타인부정을 모토로 움직인다. 믿을 건 자신 뿐이고, 남에게 의지를 하기 싫어한다. 조금이라도 상처받을 것 같으면, 재빨리 동굴로 숨는다. 이런 회피형이 우선적으로 변화해야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관계를 만들고 책임을 지기로 결심 했다면, 끝없이 말하고 표현하며 불편한 대화도 감수를 해야 한다. 깊은 대화 혹은 다소 불편한 대화를 많이 한 커플일수록 관계 만족도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무수히 많다.
결국, 관계를 지탱하는 건 말 한마디와 마음 하나다. 어쩌면 '서운해'라는 말은, 사랑이 아직 거기 있다는 가장 조용한 신호일지 모른다. 서운함은 사랑의 가장 순한 얼굴이다. 더는 말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 사랑은 조용히 멀어진다. 언젠가 우리 모두 사랑 앞에서 서운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포기보다 표현을 택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