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로 물들어도, 우리는 결국 하나의 사랑이 된다
나는 너에게 상처를 주었고
너도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사랑하고 있다.
우리도 여느 커플과 같이 서로 다르고 모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원치 않는 상처를 주고받았다. 상대를 이해할 수 없어 터진 갈등도 늘어갔다. 우리는 둘 다 감각이 섬세하고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감정의 전이 또한 빠르게 일어난다. 한 명의 기분이 안 좋으면, 다른 한 사람도 덩달아 우울해진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하루는 물을 무서워하는 우리가, 수영장을 등록하는 큰 결심을 한 날이다. 나는 마음먹은 게 있다면 바로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그래서 수영장을 가기로 약속한 날, 바로 가서 등록을 하려 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는 그의 말을 뒤로한 채 수영장을 향했다. 도착 후에 수영코치와 일정 조율을 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강습시간이 세 파트로 나뉘어 있었는데, 모든 시간이 우리와 맞지 않았다. 그는 다시 생각을 해보자며 나가길 원했다. 나는 지금이 아니면 우리가 수영을 도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조정을 하고 결제한 뒤 나왔다.
시간이 맞지 않다는 말로 망설였던 그에게 화가 났다. 코치 앞에서 내가 "이 시간은 어때?"라고 말하면, 각 시간마다 이유를 들어 전부 거절했다. 나는 등록을 하러 가기 전부터 집에서 말을 했다. 지금이 아니면 우리는 도전을 할 것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는 일정을 맞추거나 타협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좋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등록을 마치고 나왔다. 그가 일정에 망설였을 때, 그 순간 나는 단순한 답답함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함께 하려는 의지가 약한 건 아닐까’라는 불안도 느꼈다.
내가 너무 단순한 이유로 삐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섣불리 그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감정을 식히기 위해 러닝도 하고, 몇 시간 동안 깊이 생각도 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았다. 결국 고심 끝에 그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최대한 정리를 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감정을 토로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위로와 공감을 바랐지만, 자신을 방어하는 변명만 늘어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잡은 손을 놓은 채, 혼자서 집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순간,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이 가슴에서부터 천천히 퍼져 온몸을 타고 내려왔다.
집에서도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 정리도 해보고, 그와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다. 돌아오는 말은 반박이었다. 그는 요즘의 내가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의 나보다 예민하고 불만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 마음을 더 멀어지게 했다. 그렇게 말다툼이 이어졌다. 단순한 이유로 싸움은 시작되었지만, 이별까지 말한 우리의 격한 대화 중 하나였다. 당시 그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심한 회피형이었다. 나는 불안형 애착으로 인해 감정이 과도하게 증폭됐다. 애착 유형이 다르기에 충돌은 반복됐다. 서로가 서로를 쏘아붙이며, 상처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애착은 자주 우리를 갈라놓았다. 이 싸움은 단지 수영장 등록을 둘러싼 의견 충돌이 아니었다. ‘애착의 충돌’이었다. 그는 회피형, 나는 불안형. 익숙하게 반복되던 패턴이었다. 나는 감정이 올라오면 참지 못했다. 속상한 마음이 올라오면 꼭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갈등이 감정적으로 번질 기미만 보여도 뒤로 물러난다. 그의 회피는 나에게 ‘무시’로, 나의 표현은 그에게 ‘공격’으로 해석된다.
심리학자 Sue Johnson은 “사랑을 지속시키는 열쇠는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순간에 안전하게 연결되는 법을 아는 것”이라 했다. 당시 우리에게는 안전한 연결 대신 방어와 회피가 먼저였다. 갈등이 일어날 때 회피형은 감정 자체를 회피한다. 불안형은 감정을 풀어내며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 그래서 회피형이 도망칠수록 불안형은 더 격하게 붙잡는다. 그럴수록 관계는 더 깊은 상처로 물들게 된다. 이건 흔히 ‘추격-회피의 악순환’이라 불리는 전형적인 애착 충돌 구조다. 우리가 겪은 싸움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다 결국 폭발했고, 그는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멀어졌다.
내 마음은 “너는 내가 이만큼 말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구나.”라는 절망으로 번역되었고, 그의 마음은 “또 이런 얘기야? 내가 아무리 해도 너는 불만이구나.”라는 탈진으로 닫혀버렸다. 그러나 애착 이론이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랑은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상처를 함께 다루는 방식에서 성숙해진다. 심리학자 Dan Siegel은 “감정적 연결은 갈등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등을 복원 가능한 것으로 다룰 때 깊어진다”라고 말한다. 상처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조율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반듯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려 했다. 그는 다툼 이후 나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서툴고 느리지만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다시 회복해 갔다. 그와 나의 애착은 결국 '우리'가 되기 위해 싸우는 법도, 화해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상처를 다루는 방식으로 사랑을 다시 써나갔다.
우린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내 상처와 마음을 읽으려 애썼고, 나도 그의 성향과 애착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때론 어긋났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했다. 끝내 닿지 못한 말들 위에, 침묵이 내려앉은 날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조차 사랑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다투고 나서도 그는 나의 숨결이 닿는 거리를 지켰고, 내 눈빛이 식기 전에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선택한 방식은 ‘멀어지지 않기’였다. 화해는 늘 순조롭지 않았고, 때로는 하루를 통째로 감정과 싸우며 보낸 날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어떤 타협도 아닌, 서로를 향한 가장 온전한 선택이었다. 이해받고 싶은 만큼 이해하려 했고, 사랑받고 싶은 만큼 사랑하려 했다. 그것은 단지 좋은 연인이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한 진심이었다.
사랑은 이해받기만을 바라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일이다. 끝없는 동의가 아닌, 끝까지 함께하려는 의지로 우리는 서로를 지켜낸다. 사랑은 상처를 없애는 게 아니다. 상처가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상처를 안고도 함께 걷는 것. 그게 우리의 사랑이다. 우린 그 아픔까지도 품으며, 사랑의 형태를 완성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