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산 사이의 훤
어제 역사에 대한 얘기를 쓴 김에 오늘은 제가 제일 인상 깊게 공부했던 어떤 인물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두 명의 명군, 조선의 마지막 전성기 속 안타깝다고 평가받는 세자입니다. 영조가 뒤주에 세자를 가둬 죽인 후 '사도'라는 시호를 내려 우리에게 사도세자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죠.
'사도'는 생각할 사 (思)에 슬퍼할 도 (悼)를 써서 영조가 사도세자에 대한 마지막 애정으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해 이런 시호를 내린 것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 쓰는 사도와 그 당시에 썼던 사도의 뜻은 사뭇 달랐습니다.
제가 알기론 영조가 내린 사도세자의 뜻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일찍 명을 달리 한 세자'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공부할 때, "생각하고, 슬퍼한다는 뜻으로 이 시호를 내렸다는데, 과연 진심이었을까? 그 영조가?" 라며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정치적인 이유나 정조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붙인 시호다. 그렇게 추측했었죠.
자세히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그냥 잘못해서 일찍 죽은 세자였던 겁니다.
실록에서 정조가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싫어했다는 표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좋은 뜻으로 지은 시호가 아니었다는 이유였겠지요.
처음에 사도세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중학생 때입니다. 그때 당시엔 과거의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확정된 상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종은 성군이고, 연산군은 폭군이고, 누구는 충신이고, 누구는 간신이고... 근데 TV 프로에서 어떤 사람은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게 평생을 압박받으며 살아온 아들이다."라고 평가하고, 다른 채널의 어떤 사람은 "수많은 기행을 저지른 연산군의 씨앗이다."라고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며 충격이 컸습니다.
'이렇게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평가가 갈릴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직접 공부해서 평가해 보자!'
이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TV 프로에서 사도세자에 대한 얘기를 많이 다뤘던 이유는 그 당시에 개봉한 사도의 흥행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도세자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이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2024년인 지금도 저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할 당시엔 저런 영화는 사도나 영조, 둘 중 한쪽으로 치우쳐져 이야기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서 보지 않았습니다. 배우의 연기와 극의 분위기가 아닐 온전히 제 눈으로 사도세자를 바라보고 싶었기에.
그래서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책을 골라 그 문장 속에서도 작가의 생각이 담긴 내용은 걸러가며 봤습니다.
공부가 끝난 지금도 보지 않는 이유는 저런 분위기의 영화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말 부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어떻게 보면 영화 사도의 개봉이 제가 사도세자를 공부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서 이제는 다들 아실 것 같습니다.
여기에 그 이야기를 적는 게 공간 낭비에 잉크 낭비... 잉크라고 하는 게 맞나? 데이터 낭비?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극도로 컸기에 매일같이 아들을 아니꼽게 봐 정신적으로 학대했으며 아들은 그렇게 학대받으며 큰 결과 정신 질환을 앓게 되어 일탈의 정도를 넘어서 살인과 고문으로 자신의 상황을 달래곤 했다. 그러다 결국 손자가 보는 앞에서 아들을 죽이며 사건이 종료된다.
줄이고 줄이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노론, 소론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까지 끼면 이야기가 더 길어지겠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는 겁니다.
저는 영조가 아닌 아버지 이금은 최악이었다는 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걸 참척이라고 하여, 마땅히 표현할 말도 없는 판에 본인이 직접 아들을 학대하고, 마지막엔 부러진 호미 버리듯 뒤주에 아들을 가둬 죽이고는 시호도 그 따위로 대충 던져준 아버지를 누가 좋게 평가할까요.
그렇다고 사도세자도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사연이 있다곤 해도 본인의 일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습니다. 어릴 땐 마냥 사도세자가 불쌍한 인물인 줄 알았습니다. 사형을 당할 수밖에 없던 죄를 지었던 거죠.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일이 벌어진 건 영조의 책임이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지탱해주지 못했습니다.
영조에 대해서는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