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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간호사, 쉽지 않은 하루

by 조금 바른 청년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경직된 마음을 들키기 전에 환자 상태는 계속 변하고 해야 할 일들은 계속해서 불어났다. 머릿속에서 업무를 정리하지 못한 채 몸은 이미 움직여야 할 때가 태반이었다. 지금 무언가를 하면서도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신규는 당연히 업무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일은 계속해서 밀리는데 긴장으로 똘똘 뭉친 나는 실수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매 순간을 보내야만 했다.


중환자실 특성상 두세 명의 환자를 보게 되는데 오늘 내가 보는 환자는 출근 직후 상급자가 지명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쉽게 말해 어제까지 열심히 간호했던 환자가 오늘은 내 환자가 아닐 수 있다. 또 출근 후 해야 하는 일 중 예정된 시술이나 검사를 제외하고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 상태에 따라 일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이런 불확실성은 업무적으로 적응하기에 큰 어려움이었다.


대학생 때 교수님이 습관처럼 했던 말이 있다. "인계는 간호사의 꽃이다" 라며 언젠가 알게 된다고 웃었던 모습이 자주 떠올랐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좋아해야 정상인데 인계의 부담감은 마감기한을 맞추지 못해 압박 연락을 받는 작가처럼 점점 나를 조여왔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준비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신규 간호사는 그럴 시간이 거의 없음에 가깝다. 오늘의 단기 기억을 되짚어보며 센스 있게 임기응변으로 잘 해내다가도 질문 한 두 번에 정체가 탄로 나 버린다.


신규 간호사라는 것을 감안하며 인계를 듣지만 거기에도 정도라는 게 있다. 다음번 근무자도 정확히 환자를 파악해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예민할 수밖에 없다. 나는 퇴근하면 그만이지만 그에게는 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나의 모습은 인계 시작부터 아주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 무려 5분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있었던 일이다. 인계를 듣던 선생님도 처음엔 묵묵히 나를 기다려줬지만 결국 이러면 일이 밀린다고 혼내셨다. 나중에 찾아보고 알려준다고 하면 되는 것을 알았지만 하루종일 열심히 일해도 인계 시작부터 막혀버린 내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쉬지 않고 노력했지만 인계 한 번에 나의 하루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어린 마음에 억울하기도 했었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퇴근을 해도 남아 있는 찝찝함에 온전히 쉬기가 힘들었다. 교대근무 간호사의 장점은 퇴근 후 일의 연장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인데 나의 부족함으로 다음번 근무자에게 혹은 환자에게 피해를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인지 퇴근 후 병원 밖을 나왔을 때 시원함보다 허무함이 더 커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새로운 일들은 계속 생겨나고 그게 당연함을 알면서도 마음은 조금씩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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