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기존의 꿈을 잃고 방황하던 입시생 시절에 취업난의 시작을 알리는 시대 흐름에 맞춰 취업이 비교적 수월하다는 말 한마디에 원서를 넣었다. 학교를 다니며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중환자실에서 근무를 하면서 어쩌면 나에게 잘 맞겠다는 생각도 꽤 들었다. 한두 명의 환자를 전체적으로 간호해야 하는 시스템이 나에겐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든 그냥 바로 시작하기보다 현실적인 부분부터 마음의 준비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가능한 문제에 대해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세우며 일을 시작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신규간호사가 아니라 어떤 신입도 그런 능력은 거의 없다는 것과 그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애먹었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환자 상태에 대한 아쉬움을 마음에 담아둔 채 몸부터 움직여야 할 때가 태반이었고, 그래서 일하는 중간에 누군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거나 의사의 지시에도 자연스럽게 다음 일로 넘어가기 어려웠다. 만족스럽지 못한 시작은 항상 퇴근시간을 지나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필요한 공부에 매진하며 나름 노력의 시간으로 보냈다. 공부를 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것과 업무는 정말 너무 다른 분위기여서 괴리감에 쉽게 휩싸였다. 4년간의 학교생활로 이 자리에 있게 되었겠지만 당시에는 내가 배운 것들은 왜 이렇게 실제 업무와 큰 차이가 있는지, 일적인 부분을 더 중점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시스템을 탓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와 현재의 조건을 생각하는 게 사실 나에겐 낭비였으리라.
그럼에도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문제는 여태 몰랐던 나의 완벽주의적 성향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내가 완벽하다고 또 완벽한 날이라고 느끼며 하루를 보냈던 적이 없었다. 이 말 자체가 완벽주의적 성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다 알아야 마음이 편했다. 겨우 처음 한걸음을 떼는 신입 주제에 욕심이 과했다. 언제 환자의 상태가 바뀌어 응급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중환자실에서 그런 달콤한 안정감을 원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웃기기도 하다.
일하는 동안 촉박한 시간 때문에 모르는 게 생겨도 바로 묻지 않고 퇴근 후 찾아보고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지하는 마음이 어느덧 버릇이 되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질문하는 게 불쌍하게도 낯간지러웠다. 바로 물어보고 알게 되었다면 효율적으로 일을 배워갔을 텐데 다음이 허용되는 것들은 뒤로 미루는 게 어쩌면 나를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놓쳐버렸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금은 참 많이 아쉽다.
완벽을 추구하며 부족함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건 정말 이로운 일이다. 정말 간단한 논리인데도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항상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면서 최대한 완벽히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여유로우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막상 그 순간이 되었을 때 바로 알게 되었다. 결국 그 시간이 와도 시작보다는 방법을 고민하는데 대부분을 낭비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적당한 계획과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만 중요한 건 시작이다. 지식을 학습하며 나의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더 나은 필기법과 거창한 계획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때 알아차리기에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마음은 꽤 지쳤을지도 모른다. 완벽하기 위해 고민했던 밤들은 오히려 나의 걸음을 반걸음은 늦춘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