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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정 부적응의 시작

by 조금 바른 청년

간호학과를 졸업 후 대단한 목표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대학병원에 지원했다. 결혼하면 대학병원에서 일해야 경제적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지도교수님의 말에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가까운 병원을 정했다. 당시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행하는 추세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는 정말 운이 좋게 합격했다.


입사 전에 미리 이사를 했다. 내 방 한편 없던 좁은 집을 떠나 홀로 살고 싶었으나 한편으로는 떨어지는 게 두려웠는지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홀로 떠났다. 직장인이 돼서야 처음 마주한 나만의 공간은 감격스러웠다. 어쩌면 당시에는 직장인보다 자취라는 단어에 더 설레었을지도 모른다. 훗날 그 좁은 공간에 혼자인 게 얼마나 무서울지도 모르고 말이다.


웨이팅 기간은 금세 지나고 어느덧 병원으로 출근을 연락받았다. 내가 배정받은 부서는 중환자실이었고 남자는 대부분 병동보다는 특수파트에서 많이 일하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첫 출근의 발걸음은 가벼운 듯 무거웠다. 1000시간의 실습에도 병원이라는 공간의 특유의 냄새와 무거운 공기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낯선 사람들과 언젠가 책에서 본듯한 의료장비들, 정돈된 듯 혼란스러운 분위기. 그 모든 게 어색하기에 신기하고, 두려웠기에 설렜으리라.


다행히도 나의 사수는 꼼꼼하고 환자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좋은 분이셨다. 두 달이 안 되는 교육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내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화를 내면 안 되는 것도 맞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나를 기다리며 일이 밀리는 순간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 답답함을 홀로 삭이며 얼마나 고생했을지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배려가 감사해서 더 잘하려 노력했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탓에 무표정한 모습이 내 의지와는 달리 꽤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잘한다는 칭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가 걱정된다는 꼬리표도 달리지 않아서 나름 중간은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교육기간이 지나 홀로 환자를 보며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신규 간호사가 되어갔다.


문제는 입사한 지 6개월이 되어가는 무렵 시작되었다. 나는 보통과 다름없었는데 점점 처음에는 잘했는데 그때보다 못한다는 얘기를 계속해서 듣기 시작했다. 사회초년생에게 주어진 나름의 유예기간이 끝난 것인지 어느 새부터 하루의 절반의 단어는 죄송하다는 말로 채워져 갔다. 그래도 당시에는 다들 그렇지 않을까 하며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신규 간호사라서 당연히 모르는 것도 있을 수 있고, 한 번만에 잘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괜찮아질 거라고 달래주기에는 담당 간호사인 나의 자질 때문에 환자의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점점 조급해져 갔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해오며 어디서든 일당백은 하는 편이라 자신 있었는데 그런 나의 자만이 오히려 제대로 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나의 모습과 노력의 시간만큼 나아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 찬란했던 나의 청춘의 다짐은 점차 나약해져 갔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삼 교대의 생활패턴 또한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출근이 무서워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이 잦아진 후에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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