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골 노친네의 돌로미티 걷기 여행의 시작 -도비아코

돌로미티 여행의 베이스캠프 - 도비아코(Dobbiaco)

by 남쪽나라

우리 부부는 어젯밤 베로나 원형극장(Arena di Verona)에서 운 좋게 오페라 <아이다>를 밤늦게까지 보고 오전에 짐을 챙겨 오스트리아 국영철도 OEBB Euro City 열차에 탑승한다. 이 열차는 베로나에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sbruck)까지 가는 급행열차이지만 우리는 국경 근처 포르테짜(Fortezza)에서 한 번 환승하여 도비아코에 오후 3시경 도착한다. 예약한 도비아코 유스 호스텔(Dobbiaco Youth Hostel)은 기차역에 내리면 바로 코앞이다. 돌로미티 지역에는 유스 호스텔이 2~3개뿐인데 그중 도비아코 유스 호스텔은 규모나 시설, 위치, 모든 면에서 단연 최고이다. 아마 이탈리아에서 뿐 아니라 내가 가본 곳 중 최고일 것 같다. 축구장 하나 보다도 넓어 보이는 면적에 더하여, 앞 뒤의 전망 또한 뛰어나다.


20230909_163651.jpg?type=w1 도비아코 유스 호스텔

도비아코 유스 호스텔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No age limit. Everybody welcome(연령 제한 없음. 누구나 환영)>. 사실 나는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스 호스텔(Youth Hostel)은 이름 그대로 청소년이나 자는 숙소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쩌다 한번 가보니 경제적인 숙박비는 말할 필요도 없고 대부분 위치도 좋고 취사도 가능할뿐더러 나 같은 노인네들도 적지 않았다. 말하자면 자연 속에서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숙소이다. 특히 트레킹이나 혼자 다니는 여행객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예약한 2인실 방은 웬만한 호텔 못지않게 넓고 깨끗하고 전망 또한 뛰어나 아내는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며칠간 머문 밀라노와 베로나의 숙소와는 비교불가이다. 더구나 하프보드(조식과 석식 포함) 숙박비마저 저렴하니 금상첨화 아닌가? 그런 만큼 일찍 예약해야 한다. 우리는 돌로미티에 10일간의 여유 있는 일정으로 왔다. 바쁘지 않게 쉬엄쉬엄 이곳저곳을 대중교통으로 둘러볼 예정이다. 어떤 돌로미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알프스의 풍광이 벌써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20230909_163532.jpg?type=w773 도비아코 유스 호스텔에서 바라보는 전경

돌로미티는 서유럽을 가로지르는 1,200km에 달하는 광대한 알프스 산맥 동쪽 끝의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댄 이탈리아 동북부에 위치한다. 세계 제1차 대전 전까지 돌로미티는 오스트리아 땅이었다. 하지만 운 좋게(?) 이탈리아가 연합군 쪽에 참전하는 바람에 전승국이 되고 그 전리품(?)으로 얻게 된 땅이다. 그런 연유로 지금도 이곳 인구의 70%가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어 주민들 사이에 마찰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탈리아 서북부의 발레 다오스타(Vale d'Aosta) 주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특별자치구라면, 돌로미티가 속하는 남티롤 지역(이탈리아 지명 Alto Adige 주)은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동북부의 특별자치구이다.



xmappa-italia.jpg.pagespeed.ic.QEpKvlF1jq.webp 돌로미티 위치


아내는 숙소에서 쉬게 하고 나 혼자 나와 도비아코 시내를 향한다. 도비아코 시내는 매우 정갈하고 아름답다. 티롤 알프스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마을의 북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병풍을 치고 남쪽으로는 널따란 초원과 짙푸른 숲이 구릉을 이루고 있다. 나는 번잡하고 여행객으로 붐비는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Dampezzo)와 오르티세이(Ortisei)를 경험했기 때문에 도비아코가 더욱 마음에 든다. 관광안내소부터 들러 주변 지도와 버스 시간표들을 얻은 다음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마트에도 들려 과일과 약간의 먹거리를 사서 돌아온다. 도비아코 시내를 오가는 길에 여기저기 구스타프 말러의 표식들이 눈에 띈다. 도비아코(독일어 지명 Toblach)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였던 시절, 세기말을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가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는 만년에 이곳의 3번째 오두막에서 <대지의 노래>와 교향곡 9번, 교향곡 10번(미완성)을 작곡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230909_164642.jpg?type=w773 도비아코 시내

말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말러>라는 책을 쓴 노승림은 ‘말러의 위대한 작품들은 알프스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라고 말한다. 말러 자신도 '도비아코(독일명: Toblach)는 특별한 곳이다. 이곳은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순화시켜준다'라고 말했다. 말러는 보헤미아(체코)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에서는 유대인으로, 어디에서나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한 것처럼 평생을 경계인(아웃사이더)으로 살아온 말러에게는 알프스가 그의 영감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알프스의 오두막에서 작곡된 걸 보면. 그래서인지 도비아코는 말러를 열심히 팔고 있다. 여름에는 말러 음악 축제가 열리고, 거리에는 곳곳에 말러 이름을 붙이고, 유스 호스텔 바로 옆 건물에도 말러 문화센터라는 표시판이 붙어있다.


숙박비에 포함된 저녁 식사는 놀랄 정도로 푸짐하고 맛있다(우리 입에는). 거의 풀 코스에다 후식까지 포함된다. 와인과 맥주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어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돌로미티에 이런 가성비 숙소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는다. 150여 년 전에 건축된 이 유스 호스텔 건물은 한 때 오스트리아의 귀족들과 유력인들이 여름철에 피서 와서 사교장으로 사용한 그랜드 호텔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하다가 그 후 이탈리아 정부 소유가 되어 지금과 같이 유스 호스텔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푸짐한 저녁식사 후에는 알프스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며 가벼운 산책을 나서본다. 유스호스텔 넓은 잔디 마당 한가운데 근사한 유리건물의 식당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미슐랭 별점까지 딴 유명 식당 틸리아(Tilia)이다. 최소 1인당 100유로가 넘는 고급식당이란다. 하지만 우리는 둘이서 하루 100유로도 안 되는 숙박비에 옛날 귀족들의 호텔에서 자고 저녁까지 배불리 먹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호스텔 밖의 길가 상가에는 한국에서 몇백만 원씩 한다는 M 브랜드 고급 상가도 보이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어둠이 드리어진 돌로미티 산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허허! 그런데 역시 알프스는 알프스이네. 어느새 밤 기온이 뚝 떨어져 한기를 느낄 정도라 일찍 들어와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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