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는 싫다면서 밀라노는 왜 가지?

40년 만에 다시 찾은 밀라노(Milano)

by 남쪽나라


2주가 넘는 트레킹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늘 오후 아오스타에서 버스를 타고 밀라노에 도착한다. 밀라노

중앙역 근처의 민박집에 짐을 풀고 저녁 늦은 시각 한국에서 도착하는 아내를 맞이하러 밀라노 말펜사 공항으로 나간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아내와 캐리어를 끌고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들어섰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기차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오늘 열차 파업으로 운행을 안 한단다. 어디에 파업 안내판이 혹시 있었는지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우리는 이미 무인 판매기에서 기차표를 구입하고 개찰기에서 철거덕 소리 나게 개찰까지 했는데 어쩌란 말이지?. xx먹을! 밀라노는 역시 대도시답게 이런 식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는구나.


별 수 없어 공항버스를 타고 중앙역 근방에 내린다. 밤늦은 시각의 밀라노 역 부근은 살짝 무섭다. 기차를 타고 왔으면 숙소를 금방 찾을 텐데 공항버스는 어디인지도 잘 모르는 곳에 내려줘 바싹 긴장한 체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맵스미(mapsme) 길 찾기 앱만 의지한 체 간신히 숙소로 찾아 돌아오니 밤 11시다. 밀라노의 민박집은 며칠 전까지의 알프스 아야스(Ayas) 계곡의 숙소나 남부 이탈리아와는 완전 딴 판이다. 주인장의 얼굴은 콧장뱅이도 볼 수 없고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로 출입해야 한다. 그리고 연락할 일이 있으면 SNS로 하란다. 그럼 나같이 SNS 안 하는 노인네는 어떡하라고!. 게다가 도시세는 또 뭐꼬? 두 사람의 도시세 6유로는 따로 현찰로 내고 가라나! 허허!!


다음날 아침 아내와 함께 밀라노 구경을 나선다.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두오모(Duomo) 광장. 상업과 금융의 도시 밀라노의 중심이자 모든 볼거리가 다 모여 있는 곳이다. 광장으로 나가니 두오모 성당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고 아침부터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밀라노 두오모 광장의 두오모 성당

대도시는 싫다면서 밀라노는 왜 왔냐고? 먼저 아내와 만나기 위함이다. 몇 해 전부터 트레킹을 한답시고 주로 혼자서만 쏘다녔다. 무릎이 좋지 않은 아내가 장거리 걷기 여행에 동행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하지만 늘 미안했다. 너무나 좋은 여행지들을 나만 혼자 디니니. 나는 그래서 일부러 이번 여행의 출도착 지를 밀라노로 정했다. 한국에서 직항 편이 있어 아내가 쉽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 2주 동안 관광지보다는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쉽고 무난한 트레킹 코스를 골라 쉬엄쉬엄 같이 걸어볼 계획이다. 바로 이탈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돌로미티(Dolomiti)에서.


밀라노는 또한 내게는 젊은 시절 추억이 깃든 도시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40년도 더 전인 1980년대 초에 회사 업무 관계로 6개월 넘게 지낸 적이 있다. 두오모 광장을 수없이 들락거렸고 근방의 레스토랑들도 자주 찾았었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에는 두어번 왔지만 좀처럼 밀라노에 올 기회는 없었다. 오늘 드디어 두오모 광장에 서니 감개무량하다.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봐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오모 성당도,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갤러리아도, 라 스칼라 가극장도 모든 것이 40여 년 전 있던 그대로이다. 다행히 지금이 40여 년 전 내가 있을 때의 우중충한 겨울 날씨가 아니고, 햇빛 찬란한 여름의 끝자락이라 관광객들이 광장에 넘쳐나는 것 빼고는 모두가 그대로이다. 단지 변한 것은 나 자신뿐. 혈기 왕창하던 젊은이는 어느새 70대 후반의 노인이 돼버렸고 손주가 넷이나 있는 할아버지가 되어 다시 왔다.


20230907_145656.jpg?type=w1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우리는 곳곳에서 버스킹이 벌어지고 인파가 넘실거리는 두오모 광장을 서울 처음 온 시골 사람처럼 신기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누빈다. 우리는 명품 쇼핑점이 밀집해 있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도 기웃거리고, 팔짱을 끼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라 스칼라(La Scala) 가극장 앞에 서보기도 한다.


그런데 피렌체 출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왜 밀라노 중심가 한복판에 서있냐고?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화가, 시대를 통틀어 가장 창의적인 인물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Vinci)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 때 밀라노 사람(Milanese)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빈치는 그의 인생의 황금기 시절인 30세부터 약 20년간을 밀라노 공국의 스포르자 공작의 후원아래 밀라노에서 활동했다. 수많은 천재적 활동이 번쩍이던 그 시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를 키워준 밀라노에 인류의 위대한 유산 하나를 남겼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교회 수도원 식당 벽에 그려진 너무나 유명한 <최후의 만찬>.


960px-The_Last_Supper_-_Leonardo_Da_Vinci_-_High_Resolution_32x16.jpg 최후의 만찬 그림(사진출처:위키피디아)

하지만 40여 년 전 내가 밀라노에 있을 무렵 <최후의 만찬>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었다. 이 그림이 진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맞냐고? 색은 바래고 군데군데 그림은 지워지고 어떤 얼굴은 형체도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여서 마치 헌 누더기를 기워놓은 듯한 처참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나는 그림보다는 비계 위에 올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미세한 터치로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복원사들의 모습에 더 눈길이 갔다. 과연 복원이 제대로 될까? 하는 의구심의 눈으로. 그 무렵 시작된 복원작업이 근 20년이 지나서야 끝났다고 하니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뭇 궁금하다.


라 스칼라 가극장 앞에서

밀라노의 자부심, 라 스칼라 앞에 서니 40여 년 전 뭣도 모르고 그곳에서 오페라를 보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기도 한다. 당시 오페라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무슨 오페라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밀라노에 왔으니 라 스칼라는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의무감(?)만으로 구하기 힘든 표를 사서 갔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오페라의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니 터번을 두른 아라비아 복장의 가수들이 나온 걸로 볼 때 모차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이나 로시니의 <알제리의 여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지금은 오페라를 조금은 아는 척(?)하는 편이라 라 스칼라(La Scala)에서 아내와 함께 오페라를 곡 한 번 다시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라 스칼라는 여름철에는 공연이 없다. 밀라노의 수호성인 암브라시아의 축일인 12월 4일부터 공연이 시작된다.


사실 밀라노는 내가 아는 한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 비하면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답게 열리는 수많은 패션쇼와 각종 박람회 등을 제외하면, 고작 겨울철에나 볼 수 있는 라 스칼라의 오페라나 화려한 고딕 양식의 첨탑을 자랑하는 두오모 대성당,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정도랄까? 미술관도 몇 개 있지만 뭐 이렇다 할 별다른 소장품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면 자동차로 1~2 시간 거리에 가볼 만한 곳이 많으니 딱히 불평할 일이 아니다. 기차로 1시간쯤 북쪽으로 향하면 유명한 코모 호수가, 서쪽으로 가면 마조레 호수도 있다. 게다가 알프스도 멀지 않아 밀라노를 마냥 심심한 도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다.


브레라 미술관의 카라바조 그림 <엠마오의 만찬>(사진출처 : Brera 미술관 )

점심때가 되어 내가 40여 년 전에 자주 가던 레스토랑을 찾아보지만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할 수 없어 우리는 두오모 성당 뒤편에서 비싸면서도 맛없는 점심을 먹는다. 나는 미술관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명화(?) 들을 보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나중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다 미술관을 간다면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그나마 아는 척하는 카라바조나 베르메르 그림이 있는 곳을 주로 찾아간다. 점심을 먹고 나니 시간이 어중간하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교회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다시 한번 보고 싶지만 요즈음은 최소 2~3달 전에 예약해야 한단다. 마땅히 갈만한 곳도 생각나지 않아 카라바조 그림 <엠마오의 만찬>이나 보러 가자며 브레라(Brera) 미술관을 찾아 나선다.


밀라노의 전차

밀라노에는 아직도 도심 주변에는 전차가 다니고 있다. 패션 도시답게 전차의 광고도 패셔너블하다. 브레라 미술관이 두오모 광장 근처라는 몇십 년 전의 기억만 믿고 지도도 없이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잘 못 들어 엉뚱하게 암브로시아나(Ambrosiana) 미술관으로 가고 만다. 그곳에도 카라바조 한 점쯤은 있을 것 같아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비싼 입장료 내고 들어간다. 40년 전에는 두오모 대성당 입장도 무료라 가다 오다 수시로 들락거리곤 했는데 지금은 꽤나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한다. 보수유지를 위해 밀려드는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받는 것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교회와 광장은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활짝 열려 있어야 하는데, 돈 내고 보는 교회당은 교회가 아니라 관광용 건축물인 것만 같아 왠지 나에겐 아직 낯설기만 하다.


암브라시아나 미술관의 카라바조의 정물화

암브라시아나 미술관은 규모도 작고 카라바조의 <정물화> 하나만 있어 다소 실망스럽다. 카라바조는 역시 좁다란 미술관이 아니라 교회 커다란 벽면에 높게 걸려 있어야 제격인가 보다. 내가 보아 온 카라바조는 다 그런 곳에 있었으니까. 다시 브레라(Brera) 미술관을 찾아가자니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기도 하여 숙소로 돌아오고 만다. 역시 나는 도시 체질이 아닌가 보다. 40년 만에 다시 찾은 밀라노에서 하루를 돌아다니는 것조차 귀찮아지니. 대신 돌아오는 길에 푸짐한 장을 봐와 아내가 지어주는 오랜만의 한국식(?) 퓨전 만찬으로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본다.



keyword
이전 12화몽블랑은 어디에 있지?-쿠르마예르(Courmaye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