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노친네, 베네치아에서 길을 잃다

오버투어리즘의 현장 베네치아

by 남쪽나라


우리는 돌로미티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하고 귀국하기 위해 밀라노로 향한다. 하지만 도비아코에서 밀라노까지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코르티나 담페초까지 시외버스로 가서 다시 베네치아 메스트레(Mestre) 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베네치아 메스트레 역에서 밀라노까지 또 기차를 몇 시간씩 타야 해서 거의 하루 종일 걸린다. 무리해서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시간 부자인지라 베네치아 메스트레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한다. 메스트레 역 앞 P 호텔에 짐을 풀고 식당부터 찾아 나선다. 메스트레(Mestre)는 몇 년 전에도 한 번 와본 적이 있지만 역 주변은 온통 중국인 세상(?)이다. 조금 과장하면 역 근방 식당은 거의 한집 건너 중국식당이고 중국인 마트도 즐비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메스트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대도시 역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는 패션과 고급 섬유 산업의 나라이다. 한동안 Made in Italy 만 붙으면 최고급 의류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피렌체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의 이탈리아 섬유산업의 메카 프라토(Prato)에는 중국인 영세 봉제공장만 수천 개가 넘고, 중국인 인구만 해도 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전체 프라토 인구의 1/4 정도). 그들은 10유로에도 못 미치는 싸구려 제품을 Made in Italy 상표를 붙여 전 세계에 팔고 있다고 한다. 혹시 그대가 Made in Italy 제품을 입었다고 너무 자랑하시지는 마시라.


어쨌든 우리는 파스타에 식상한 터라 주저 없이 중국 식당으로 들어간다. 외국에서 값싸고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중국음식만 한 게 없으니까. 우리는 점심을 먹고 베네치아 구경을 위해 기차를 탄다. 사실 나는 몇 차례 베네치아를 가봤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지만 아내가 베네치아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 한다.


하늘에서 본 베네치아 (사진출처: 구글)

사실 베네치아만큼 멋진 관광지가 또 있을까? 118개의 섬과 150개의 운하, 378개의 다리로 구성된 베네치아는 지금도 신비와 경외 그 자체이다. 게다가 유럽의 오랫 왕정의 역사 속에서도 끝까지 1,000년이 넘게 굿굿이 공화제를 유지했던 유일한 국가였다. 시오노 나나미(Shiono Nanami)가 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탈리아 북동쪽 베네토 지역 사람들이 6세기 로마제국 말렵에 아틸라가 이끄는 무서운 훈족의 침입을 피하여 아드리아 해안가,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던 늪지대로 피난 와서 개펄 위에 어떻게 운하의 나라를 건설하였는가에 대한 베네치아 초기 역사가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아드리아해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는 “물이 곧 우리의 동지이자 적”이라고 했다. 물을 잘 다스리고 이용하면 동지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적이 된다는 뜻이다. 그들이 잘 다스렸던 물은 천년이상 뭍과 바다로부터 베네치아의 안전을 지켜주었고, 바다를 통하여 지중해 무역을 장악함으로써 수백 년간 지중해를 지배하는 해양 강국으로서 막대한 부와 번성을 누렸다. 우리가 잘 아는 베네치아 사람 마르코 폴로도 바다와 육로를 통해 중국까지 건너가 동방견문록을 남겼다. 셰익스피어의 <오텔로>는 무어인으로서 흑인이었지만 베네치아에 큰 공을 세워 베네치아가 지배한 지중해의 키프로스섬의 총독이 되지 않았나? 말하자면 그 시대에 이미 베네치아는 글로벌 국가였던 셈이다.


지금도 처음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아에 하는 질문인데, 어떻게 물 위에 집을 짓고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것도 천오백 년 전에. 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 짜가운 바닷물 위에서 썩지 않고 보존이 될 수 있었을까? 정말 신비하기만 한 물의 도시, 십자군시대의 영광과 중세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숨 쉬고 있는 도시, 자동차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볼 수 없는 도시 베네치아(Venezia)


기차로 10분 거리의 산타 루치아(Santa Lucia) 역에 내려 이번에는 배를 타지 않고 걸어서 베네치아를 구경하기로 한다. 당연히 목적지는 산 마르코(San Marco) 광장이다. 그런데 몇 번 와봤다고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는지 지도 한 장 없이 길 표시판만을 보고 걷는다. 그런데 분명히 커다란 다리를 건너고 산 마르코 행 길표시를 따라 한참을 걸어도 사람도 거의 없는 영 엉뚱한 곳으로 와 있지 않은가? 현지인에게 다시 물어 왔던 길을 되돌아와서 간신히 큰길로 들어선다. 몇 번을 배로만 와서 산 마르코 광장 주변만 돌았지 베네치아의 메인 도로(?)는 처음인데, 생각보다 넓고 번화하여 여느 관광지나 다름없다. 상점과 노점들이 즐비하고 거리는 인파로 가득하다.


20230919_144601.jpg?type=w773 상점과 노점이 즐비한 베네치아 큰길

운하의 도시답게 수많은 크고 작은 다리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색적인 것은 다리 계단을 짐을 가득 실고 오르내리는 톱니바퀴식 수레이다. 아마 몇백 년 전부터 사용되었을 법한 베네치아의 명물(?) 같다. 가끔 발을 잘못 들어선 낯선 베네치아의 뒷골목은 낡고 세월의 덕지가 다닥다닥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인 듯 그 좁은 땅 위에 아름답게 정원이 꾸며진 곳도 있다.


20230919_141013.jpg?type=w1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골목 주택가

늦은 여름 날씨답게 도시는 덥고 햇빛은 인정사정없이 내리쬔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려 겨우 도착한 산 마르코 광장은 여전히 변함없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광장은 여기저기 보수하느라 보기 흉한 곳도 있고, 광장은 카페마다 앞에 늘어놓은 야외 테이블들로 다니기조차 힘들지만 산마르코 성당만은 오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20230919_152853.jpg?type=w1 어두운 골목길에서 불쑥 나타난 산 마르코 교회


20230919_161336.jpg?type=w1 너무나 복잡한 산 마르코 광장

우리는 조용한 산속에서만 지내다가 내려와서 그런지 피곤하고 정신이 없다. 카페 곳곳에서는 라이브 연주가 경쟁적으로 흘러나오고 어디선가 커다란 확성기로 마돈나의 'Don't cry for me, Argentina' 노래가 생뚱맞게 흘러나오고 있다. 내가 처음 베네치아를 방문한 1970년대 말이나 지금이나 산 마르코 광장은 변함없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지만, 관광지의 형태는 세월에 따라 많이 변해버린 것 같다. 현지인들이 왜 관광객을 더 이상 반기지 않는지를 알 것 같다. 우리는 마땅히 앉을자리를 찾지 못해 어느 건물 그늘에 퍼저앉아 간식을 먹는다. 주변을 잠시 더 돌아본 후 버스(배)를 타려고 선착창까지 가는데 선착장도 여러 곳이라 헷갈리고 배싺도 비싸 그냥 다시 걸어서 돌아가기로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온다.


20230919_151630.jpg?type=w1 곤돌라가 다니는 좁은 뒷골목 운하

그런데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던 길은 뜻밖에 미로와 같은 골목길로 구불구불 이어지고 날씨는 여전히 덥고 아내는 점점 지쳐간다. 우리는 레알토 다리를 목표로 걷는데 위치를 잘 못 짚어 한 참을 헤매다가 겨우 레알토 다리에 도착한다. 레알토 다리 주변은 유명세답게 카페와 식당 등으로 가득하고 다리 위에도 상가들이 즐비하다. 다리밑으로 배를 타고 지나다닌 적은 있지만 디리 위로 지나기는 처음이다.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레알토 다리를 지나서도 산타루치아 역까지 다시 한동안 길을 잃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역에 도착한다


20230919_173907.jpg?type=w1 미로와 같은 좁은 길들과 운하에 걸린 다리


20230919_171035.jpg?type=w1 레알토 다리의 인파

문득 오래전 본 베네치아를 무대로 한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감독의 영화 두 편이 생각난다. <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센소(Senso)>.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토마스 만의 원작소설을 토대로, <센소>는 이탈리아 귀족 부인과 점령군 오스트리아 장교 사이의 사랑을 다룬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로 내용은 그저 그렇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뒷골목과 좁은 운하를 따라 펼쳐지는 비스콘티식 심미주의적 영상에 더하여 흘러나오는 말러 교향곡 5번과 부르크너 교향곡 7번은 이들 영화를 더욱 빛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영화에는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정경들이 심미적으로 펼쳐지지만, 오늘 우리가 헤맨 베네치아의 뒷골목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야 말로 베네치아의 진짜 얼굴이 아닐까? 화려한 산 마르코 광장 주변이나 곤돌라 배 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 숨을 돌리고 다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Arrivederci(안녕)! 이탈리아! 우리가 다시 이탈리아에 올 수 있을까?


그동안 <나의 아날로그식 이탈리아여행기2>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어서 <조금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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