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Moreno 빙하투어

파타고니아의 빠질 수 없는 관광 명소 페리토 모레나 빙하

by 남쪽나라

나는 칠레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아침 7시 30분 발 버스(Bus-Sur)편으로 아르헨티나의 엘칼라파테(El Calafate)로 이동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가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칠레 쪽 거점이라면 엘칼라파테(El Calafate)는 아르헨티나 쪽 거점이다. 자고 나니 다행히 어제의 상처에는 별다른 통증이 없어 여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남의 시선을 끌기에 딱 맞은 커다란 거즈와 반창고를 얼굴에 붙이고 다니는 것이 좀 쪽팔리기는 하네.


버스는 1시간쯤 달리더니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에 멈춘다. 사람들은 여권을 들고 내려 출입국 심사를 받고 짐들은 하나하나 X-레이 검사대를 통과해야 하지만 30여 분만에 다시 출발한다. 외국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을 때마다 늘 부러운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육로로 국경을 넘어볼 수 있을까? 하고. 국경만 넘었지 칠레나 아르헨티나나 풍경은 별 변함이 없다. 한가로이 소가 풀을 뜯고 있는 광활한 초원과 멀리 보이는 설산들을 바라보며 달리던 버스는 오후 1시경에 엘칼라파테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불과 5시간 반 거리.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다. 보는 것 모두가 새롭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버스 안도 쾌적해서 그동안의 쌓인 피로를 풀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칠레의 거점 도시 푸에르토 나탈레스가 가난한 어촌의 티를 벗지 못한 다소 칙칙한 분위기라면 엘칼라파테는 훨씬 깔끔하고 부티나는 관광도시 같다. 거리도 잘 정돈되어 있는데 유달리 목조건물이 많이 눈에 띄어 웬지 밝고 푸근한 느낌이다. 청명한 날씨 때문에 더 좋아 보이나?


내가 예약한 칼라파테 호스텔(Calafate Hostel)도 멋진 통나무 건물인데 트레커들 사이에 잘 알려진 꽤 유명한 호스텔이란다. 호스텔은 여러나라의 트레커들로 붐빈다. 방도 1인실에서부터 다인실까지 다양하고 방값도 저렴한 편. 나는 파타고니아에 와서 처음으로 욕실이 달린 독방을 예약했다. 하루 정도는 편히 자면서 피로를 풀고 싶기 때문이다. 짐을 풀고 시내로 나오니 중심가(Centro)는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시가지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걸어도 고작 20분 거리. 관광도시답게 기념품점, 레스토랑, 카페 등이 즐비하지만 상점 앞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니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엄청 비싸다.


파타고니아의 작은 도시 엘칼라파테가 붐비는 이유는 모레노 빙하 때문이다. 페리토 모레노(Perito Moreno)는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빙하인지라 파타고니아에 오는 사람들이라면 빠뜨릴 수 없는 필수 관광코스이다. 나의 주목적은 엘찰텐(El Charten)으로 가서 피츠로이(Fitzroy)와 세로토레(Cerro Torre) 산을 트레킹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모레나빙하를 보지 않고 갈 수야 없지 않은가? 오늘까지는 머리를 감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따라 샤워도 못하고 고양이 세수만 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든다. 오랜만에 누려보는 독방의 편안함이여!


TV나 영화에서 몇번 보아서일까? 파타고니아 하면 내게 맨 먼저 떠오르던 곳은 페리토 모레노(Perito Moreno) 빙하이다. 수 킬로 기다란 순백의 빙벽에서 우뢰같은 소리를 내며 호수 위로 떨어지는 빙하 조각들. 만년설만 보아도 감탄하던 따뜻한 바닷가 촌사람에게 그곳은 도저히 가볼 수 없는 멀고 먼 나라의 그림의 떡 같은 비경일 뿐이었는데 오늘 나는 그곳을 찾아가고 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나는 어제 한 여행사에서 모레노빙하 투어(400페소)만 신청했다. 빙하 위를 걷는 빅 아이스 트레킹 상품이 무려 5,600페소(400,000원), 1~2시간짜리 미니 아이스 트레킹 상품도 3,200페소(220,000원)이란다. 아무리 물가 비싼 아르헨티나이지만 이건 좀 심하다. 한마디로 바가지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65세 이상은 안전상 빙하 트레킹은 할 수 없단다. 오! 굿 뉴스.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어 정말 잘됐네.


한 시간이나 늦었는데도 아랑곳없이 관광버스는 몇 군데 호텔을 더 들린 후 거칠고 광활한 파타고니아의 스텝(Steppe) 지역을 한 시간쯤 달려 마침내 빙하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여성 가이드는 승객 하나하나의 국적을 묻더니 몇 나라의 말로 빙하에 관해 설명하는데 내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그녀의 유창하고 빠른 영어 설명을 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녀는 거친 바람과 변화무쌍한 날씨의 파타고니아에서 오늘같이 좋은 날씨는 일 년 중 고작 20%도 안된다며 우리더러 운이 좋다고 띄우는 바람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 버스가 늦게 온 사실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멀리서 보이는 모레노 빙하

그런데 공원 입장료가 무려 500페소(35,000원)이다. 빙하공원 방문자 센터 앞에 버스를 세운 채

공원직원이 탑승하여 마치 세금 징수원처럼 현찰로 500페소씩 받는다. 이 입장료는 아르헨티나의

살인적 물가 때문인지 매년 계속 오르고 있단다. 버스는 공원 방문자 센터를 지나 다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20분을 더 달리니 드디어 멀리서 모레노 빙하가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가 호숫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빙하 근처까지 가는 보트를 타는데 다시 500페소(35,000원)를 추가로 내야 한다. 보트를 타기 싫으면 한시간 가량 근방에서 시간을 보내란다. 그런데 누가 여기까지 와서 돈 아끼느라 보트를 타지 않을까?


보트는 천천히 빙하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여 한동안 정지한다. 길이가 30km, 폭이 5km, 높이가 50~60m에 이르는 모레노(Moreno) 빙하는 물 위에 떠 있어 매일 1~2m 정도씩 움직인다는데 막상

빙하를 코앞에서 보니 정말 감동이다. 빙하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빙하는 처음 본다.


배 위에서 보는 모레노 빙하

그런데 갑자기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울리고 빙하 조각들이 깨지면서 호수 아래로 떨어진다. 와! TV에서나 보던 놀라운 장면이다. 빙하는 오랜 기간 쌓인 눈의 양이, 녹거나 승화되는 눈의 양을 초과할 때 생긴다. 거대한 빙하가 무게와 압력에 의해 조금씩 밀려 내려오다가 빙하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물을 만나면 쪼개지면서 분리되어 큰 덩어리가 물 위로 떨어지는 현상이 방금 본 칼빙(Calving) 현상인데, 과히 빙하 관광의 압권이다. 굉음과 함께 물 위로 떨어지는 빙하 조각들. 고맙게도 모레노빙하의 칼빙(calving)은 무시로 일어나는데 사람들은 갑판 위에서 이때를 기다리며 카메라를 조준하고 떨어지는 장면을 보며 탄성을 연발하고 있다.


특히나 오늘같이 화창한 날에는 빙하의 색깔마저 왜 이리 고운가? 수많은 푸른색 중에서도 소위 <Ice blue>, 또는 <Glacier blue>라는 이 투명한 푸른색은 아무리 값비싼 카메라로도 완전히 그 빛깔을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눈보다 더 좋은 카메라는 없다고 하니 눈으로나 실컷 담아두자. 빙하의 푸른 빛은 순전히 단파장 때문에 생긴다. 장파장인 붉은색 류는 눈에 흡수되어버리지만 푸른빛은 단파장이라서 흡수되지 않고 눈 위에서 흩어져 튕겨 나간다. 이때 생기는 푸른 빛이 바로 <Ice blue>라는데 내 폰카로는 어림도 없지만 그래도 애써 찍어 본다.


비싼 뱃삯이 그제야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갑판 위로 올라와 빙하 앞에서 갖가지 포즈로 인생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쾌청한 하늘의 <Sky blue>와 빙하의 <Ice blue>, 그리고 빙하에 깎인 석회석 호수의 <Grey blue>. 나는 빙하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지만 별로 아쉽지도 않다. 눈이 시릴 정도로 싱그럽고 아름다운 이 광경 앞에서 더없이 행복하기만 할 뿐이다.


무료전망대에서 모는 모레노 빙하

정확히 한 시간 만에 배에서 내린 후 관광버스는 다른 빙하 전망대로 이동한다. 그런데 이쪽 무료 전망대가 빙하와도 가깝고 전망도 훨씬 더 좋다. 측면, 정면 여러 곳에서 빙하를 더 가깝게 볼 수 있도록 4km에 달하는 멋진 나무데크 전망로가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좋은 전망대가 있는데 굳이 비싼 뱃삯 내고 보트를 탈 필요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차가운 빙하 주위에도 계절은 속일 수 없나 보다. 아름다운 봄꽃들이 울긋불긋 피어 있는 전망로를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따사한 봄볕을 쏘이며 벤치에 앉아 빙하를 바라보기도 하고, 삶은 계란

2개로 맛있는 점심을 즐기기도 한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망중한인데 날씨마저도 더 할 수 없이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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