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3학년이 되는 아들이 작년 중 2학년 이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부터 매일 밤 9시 30분이면 집 앞 놀이터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했다.
사실 그 늦은 시간에 허락하는 건 즐겁지 않았지만, 안 된다고 말하면 아이가 속상할 것 같아 처음엔 허락했다.
아이는 20분안에 돌아온다고 했다. 일주일 정도를 아무 말 안하고 허락해 주었는데, 허락한 이유 중 하나는 아이가 돌아오겠다고 한 시간에 대한 약속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그 다음주 월요일에도 밤 9시 30분이 되니 또 15분만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며 익숙하게 옷을 걸쳐 입었다. 한번은 말해야 할 것 같아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들아! 사실 엄만 허락하고 싶지 않은데
엄마가 그렇게 하면 아들이 속상할 것 같아서 엄마가 허락은 했어. 그런데 즐겁지 않네? 오늘만 나가고 내일부터는 좀 자제하면 좋겠는데? 어때? “
아이는 머쓱한 듯 웃으며
" 예~ 15분 안에 올께요!"
하고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또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나는 나지막하고 평온 한 일상적인 목소리로 아이에게 얘기했다.
“ 아들아 매일 이 시간에 나가는 이유가 뭐야?
엄마가 이해할 만한 이유야? “
아이 친구들이 그 시간에 학원이 끝나 우리 집 앞으로 지나가는 시간이라 나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먹으면서 놀이터에서 그네 타고 놀다가 오는 거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속마음을 얘기했다..
“ 아~ 그래~? 엄마가 우리 아들이 매일 나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를 했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외출이 잦으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어. 너무 자주는 아니었으면 좋겠네~? 다
녀와~ “
그 날 이후로 아이는 한동안 늦은 외출을 하지 않았다.
한달 즈음 지났을까?
능청스럽게 집에 있는 과자 말고 다른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까맣게 속아 넘어가 나가서 사오라고 했다.
그러자 눈치 100단 딸이 갑자기 남동생을 막아 선다.
“잠깐!!! 멈춰 같이 가! 너 친구 만나러 가는 거 다 알거든! “
순간 집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아들에게 친구 만나러 가는게 맞냐고 물으니 친구들이 나오라고 문자가 왔다고 했다. 그 날은 정말 평온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오랜만이라 얘기했으면 또 나갔다 오라고 할 엄마인데, 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과자를 사 오려고 한 건지 과자 사 오는 길에 친구를 만나려 한 건지..
의도가 불순했다. 그렇지만 아이의 거짓말에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들! 아들이 이 시간에 나가면 엄마가 할머니께 짜증을 내. 그럼 할머니가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엄마 눈치를 보시며 불안해 하시거든. 식구들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아들이 나가서 찾는 즐거움이 의미가 있니? 그렇다면 다녀와야지~ “
아이는 무언가 잘못을 했다는 걸 느낀 듯
“ 안 나갈게요. 죄송해요. “
라고 말하고 겉옷을 벗었다. 아이는 그 뒤로 저녁 늦게 나가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저녁 늦게 나가는 일은 없다. 어느 날 아이가 밤 시간에 외출하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고 놀라며
“ 어? 아들 근데 요즘 왜 늦게 안 나가? “
라고 물어보니 사랑스러운 녀석...
“ 식구들이 불편하다며.. 그래서 안 나가요. “
이렇게 대답한다.
혼내지 않는다. 이해가 되는 일에 절대 혼내지 않는다. 고맙게도 아이가 아직 선을 넘을 만큼 뭔가 크게 잘못하지 않았기에 혼내는 일은 거의 없다. 부모로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선은 최대 여야 하기에 보통의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은 다 이해가 된다.
손님들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했더니
‘원장님 진짜 화 안 내요?' 또는 '진짜 그렇게 말해요? '
라고 묻는다. 나는
'예~~~~~~~ 화 잘 안 내요. 이런 일로는 화
가 안 나요. 그리고 늘 그렇게 말해요.'
웃으며 대답한다.
어느 날 아들이
“ 엄마가 화를 확! 내줘야 반항 할 기회가 있는
데, 엄마가 반항할 기회를 안 줘서 뭘 못해! “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한 적이 있다. 아이의 시기를 이해하니 화가 날일 없다. 나도 아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
“ 미안하다. 엄만 너희에게 화가 안 나. “
내 아이의 건강한 사춘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부모의 몫 인 것 같다.
작년 12월 31일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들이 할 얘기가 있다고 한다.
“ 내일 1월 1일 새벽 5시에 친구들이랑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나가도 돼요? “
나는 깜짝 놀랐다.
“어?? 새벽에? 그 시간은 무척 깜깜하고 겨울이라 깊은 밤인데 그 시간에 뭐 하는데 그리 일찍 만나자고 했어? 아니 친구들 부모님들은 허락 하셨다니”
이것저것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친구들이랑 해돋이를 보자며 약속을 잡아 두었던 것이다.
친구 부모님들은 다 허락 하셨다고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나도 허락해 줬다. 아이는 새벽 5시에 집을 나갔고 오전 11시에 집에 돌아왔다. 저녁식사 시간에 뭘 하다 왔는지 물어보았다.
동네 돌아다니고 눈 놀이터에서 미끄럼 타고 추워서 편의점 가서 라면 먹고 학교 가서 농구 하고 편의점 가서 또 라면 먹고 추워서 각자 집으로 돌아간 이야기.
어른의 눈에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아 내년 1월 1일엔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올 거면 새벽에 나가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어.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냥 새벽에 길거리 방황하는 비행 청소년 같아 보였을 것 같아. 엄만 사실 오늘 유성이가 새벽에 나가는 거 싫었거든.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엄만 걱정스러웠어. 근데 지금 유성이는 뭔가 자꾸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을 때라 엄마 걱정보다 유성이가 하고 싶은 것이 먼저라고 생각돼서 보냈는데 오늘 그렇게 나가서 놀다 온 소감이 어때? “
아들은 생각보다 재미 없었다고 했다.
“춥고 할 것도 없고 왜 그 시간에 나갔는지 차라리 따뜻하게 잠이나 잘 걸 내년엔 안 나가려고 “ 아이가 느꼈으니 그걸로 됐다.
하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라도 해 보려 했을 것들.
아이가 제안하는 것 들은 거절보다 먼저 허락해 주고 아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 어른들의 열 마디 말보다 아이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나는 매번 내 아이들을 통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