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 둘레’는 삼국시대부터 썼던 지명 ‘철원(鐵圓)’을 우리말로 풀어 쓴 말이며 고려 말에 ‘철원(鐵原)’으로 한자 지명이 바뀌었다.
어떤 지명이든 쇠 철(鐵)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그 땅이 쇠를 비롯한 광물과 관련이 있겠다 싶었는데 그곳이 바로 용암이 분출되어 켜켜이 층을 이룬 지질학의 보고(寶庫)였다. 크고 작은 폭포와 용암대지가 펼쳐진 철원평야, 그 사이를 깊이 파고든 한탄강이 흐르는 지역이 2020년에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을 선정하고 보존하는 국제기구)가 인증하는 세계지질(地質)공원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철원 인근에서 군 생활을 했었다. 오랜만에 온 철원은 예전 그대로였다. 특별히 발전하거나 변화한 것이 거의 없었다. 군복을 입고 군가(軍歌)를 외쳐 부르며 훈련받던 산야(山野)도, 개천도, 여름이면 푸른색으로 뒤덮고, 가을이면 붉게 물들던 단풍도, 겨울이면 영하 30도를 밑돌던 매서운 추위도 그대로였다.
철원의 하늘은 이상할 만치 슬프고 음울하다. 한국전쟁 때 많은 희생이 있었던 지역이어서일까? 곳곳에 전적비와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잿빛 하늘을 본 기억만 나고 화창하고 청명한 날씨를 맞이한 기억이 별로 없다. 기분 탓일까? 야트막한 산을 사이에 두고 서서히 감도는 구름은 내 마음조차 우울하게 한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읽었던 김주영(金周榮) 작가의 「쇠 둘레를 찾아서」라는 단편소설을 다시 찾아보았다. 당시 어느 월간문학지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도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철원’이라는 지명이 제목에 들어가지 않아 소설의 배경이 철원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왜 아직 기억의 편린(片鱗)으로 남아있을까? 하여튼 30년이나 된 소설을 다시 찾아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요즘처럼 인터넷에 컴퓨터 파일로 올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원본을 찾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헌책방이 모여 있는 청계천을 한 달여간 뒤지고 다녔다. 마침내 그 책, 아니 그 소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기억이란 이런 것이겠지.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다시 찾아낼 수 있는 작디작은 조각들.
힘들여 찾은 것일수록 그 소중함이 몇 곱절 더 크게 느껴진다. 인터넷 검색으로 몇 분 만에 찾아낸 자료보다 오랜 시간을 서서히 묵히고 묵혀야 우려 나오는 큰 항아리 속의 시커먼 간장 같은 맛이다.
「쇠 둘레를 찾아서」의 일부분이다.
“신실한 길벗과의 동행일지라도 초행길의 길손들이라면 그곳을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니 십중팔구는 우리처럼 필경 그곳을 찾지 못하는 허행이기 십상이겠다. 박삼재 씨와 나의 경우도 그런 점에선 예외일 수 없었다.”
지도에도 ‘철원’이라는 지명은 적혀 있고 현실적으로도 엄연히 존재하는 고장임에도 이상하게 철원을 똑바로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신철원’, ‘철원’, ‘동송(읍)’이 모두 헷갈린다. 정확히 어디가 ‘철원’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여행은 아니었다. 그날 토요일 오후, 우리 두 사람은 승강기에서부터 우연한 동행이 되어 방송국 정문을 나서고 있었다. 우리는 무작정 고석정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내가 육칠 년 전에 다녀간 곳이었음에도 그곳은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철원으로 가야 고석정이 나오지만, 우리가 들어온 철원 시내는 내가 알고 있던 철원이 아니었다.”
“동송읍을 철원이라 하고 또 갈말읍을 철원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러나 철원은 실제로 여기 없습니다. 동송읍을 철원의 상가 지역이라 하거나 갈말읍을 관청 거리라고 부르면 몰라두요.”
소설 속에서 철원 토박이라고 스스로 지칭하는 복덕방 주인의 말이다. ‘진짜 철원’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안에 존재한다. 농사를 위해 들어갈 수는 있지만 거주할 수가 없는 곳이다. 「쇠 둘레를 찾아서」는 실향민이 아닌 실향민이 되어 살아가는 철원 사람들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내친김에 철원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있는지 인터넷의 초록창을 뒤져 보았다. 「철원 기행」 이라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2016년에 개봉된 독립영화이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평생을 철원의 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아버지가 정년 퇴임을 하는 날, 각자 떨어져 살던 어머니와 큰아들 내외, 막내아들은 한겨울의 철원으로 향한다. 초라하기만 한 퇴임식에 이어진 순조롭지 않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말한다.
“이혼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폭탄선언 후 폭설이 내린 철원에서 2박 3일간 예기치 않은 동거를 하게 된 가족. 말수가 적고 고집이 센 아버지와 감정을 숨기지 않는 독설가 어머니, 의뭉스러운 큰아들과 다정하지만, 성격이 조급한 며느리, 철없는 막내아들까지 각자 너무 다른 가족들은 겨울의 끝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가족에게 가는 길은 언제나 ‘여정’이 된다.
비혼은 늘어나며 일인 세대는 증가한다. 저출산이 어느덧 사회현상이 되어버렸고 이에 따른 가족의 해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타인과도 같은 가족, 가족과도 같은 타인. 어쩌면 가족과 타인의 구분이 모호해질 정도로 애매해진 지금이다.
「철원 기행」에서의 가족이 그렇다. 각자의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상은 타인처럼 살아가는 현재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퇴직과 함께 발표된 이혼 선언은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에게는 충격을 주었다. 결국 가족은 타인의 거리만큼도 가까워지지 못하게 된다. 앞으로의 우리 사회를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영화는 먹먹한 느낌을 준다. 예전에 보았던 가족을 주제로 한 영화는 대부분 해피엔딩이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 영화의 중심 주제였다. 이 영화는 철원을 배경으로 하여 단란하고 화목했던 가족의 시간이 서서히 저물어 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겨울의 철원
창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혔다.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방으로 스며든다. 답답한 방을 환기라도 시키듯 신선하고 차디찬 감촉이 내 몸을 감쌌다. 새벽의 공허함은 언제 느껴도 새롭다. 특히 추운 날의 새벽공기는 그 농후함이 훨씬 진하다. 인기척 하나 느낄 수 없는 겨울밤의 고요함이 더해져서 좋다.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은 애잔함을 더해준다. 새벽, 철원의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애상(愛想)이다.
간신히 붙어 있는 누런 종이에 침을 묻혀 넘겨 가며 다시 읽어본다. 고등학생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9월, 갓 물들기 시작한 은행 나뭇잎은 색다른 정취가 있다. 푸른색과 노란색을 반반씩 띠고 있는 은행잎은 한 조각은 여름, 나머지 한 조각은 가을이다. 은행잎의 조그만 홈은 그곳을 가득 채운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마치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표시하는 포스트잇과 같다.
고개를 들어 높다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큼지막한 플라타너스 나뭇잎들 사이로 언뜻언뜻 명징(明澄)한 하늘이 보인다. 하늘 전체를 보는 것보다 더 소담스럽다. 모두를 활짝 열어 보여주는 것보다 아끼듯 조금씩 살짝살짝 보여주는 가을이 어쩐지 밉지 않다. 짧아져 버린 계절의 묘한 심술이랄까?
철원의 노을
저물어 가는 늦여름 저녁, 처음으로 날씨가 쌀쌀했던 며칠을 뒤따라 드넓은 하늘보다 더 부드럽기만 한 색채가, 그리고 신선한 바람의 부드러운 손길이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반쯤 물든 은행잎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누군가와 같다. 마치 가을이 빨리 오길 기다리는 무언의 항변일까? 철원의 단풍은 이르게 물든다. 평균 기온이 낮아서겠지만 조급히 물든 철원의 단풍은 우리나라 전체에 가을이 왔음을 가장 빨리 알려주는 전령(傳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