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재미, 물아일체((物我一體)
견지낚시는 파리채 모양의 낚싯대에 줄을 감아 흐르는 물에 바늘과 추를 띄워서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낚시이다. 마치 연날리기를 할 때 쓰는 얼레를 감고 풀면서 연줄을 조절하는 것처럼 낚싯줄을 풀었다, 감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물고기를 낚아 낸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허 목(許 穆)의 시문(詩文)에 견지낚시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견지낚시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허 목(1595~1682)은 조선 선조~현종 시대를 살았던 정치가이며 학자로, 미수(眉叟)는 그의 호이다. 미수는 연천군에 살며 임진강에서 낚시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묘역은 연천군 왕징면에 있다.
필자가 견지낚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허영만 만화가의 「식객」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주인공 ‘성찬’은 여자친구인 ‘진수’에게 강원도 오대천에서 견지낚시 방법을 알려준다. 10미터가 넘는 먼 거리에서 피라미의 입질이 오면, 그 미세한 떨림이 줄을 타고 손까지 전해온다고 묘사되어 있다. 손끝으로 슬며시 줄을 잡고 강물의 흐름과 줄의 떨림을 느끼려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참 애틋하고 평화롭다.
견지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물살이 제법 있는 여울에 찌를 흘려야 하는데, 강이나 개울의 가장자리에는 물의 흐름이 거의 없어 물살을 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더운 한여름철에는 물속에 들어가는 일이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그 외 대부분의 계절에는 꼭 웨이더(Waders, 가슴장화)를 입고 물속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물속에 오래 있어도 힘들지 않고 장화 바닥의 깊은 홈들이 물살에 쓸려 넘어지는 것을 방지해 주기 때문이다.
‘수장대’는 긴 막대처럼 생겼는데 낚시할 곳을 정한 다음에 강바닥에 깊이 박아둔다. 고정된 ‘수장대’는 미끼나 잡은 물고기를 보관하는 그물을 걸어두는 일종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구명조끼는 꼭 착용해야만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은 거의 전문가 수준의 견지 낚시꾼들이 갖추는 것이고, 난 웨이더 정도만 입은 채 물살이 빠르지 않은 곳에 들어간다. 그것도 허리 이상의 깊이까지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위험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물에 들어가 있으면 금방 진이 빠지고 체력은 소진된다. 물살은 내 몸을 계속 한 방향으로 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주게 된다. 당연히 다리와 허리에 금방 무리가 가게 된다. 게다가 한 번씩 다리를 치고 가는 기분 나쁜 쓰레기 등의 부유물들. 자칫 날카로운 것이 지나가다 스치면 상처를 입기 쉽다. 꼭 웨이더를 입어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이런 전문적인 준비물이 아니라도 견지낚시는 특히 여름철에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계곡이나 개울, 휴양지 등에서 3,000원 정도면 견지낚싯대를 살 수 있다. 구더기 미끼를 많이 사용하는데 구더기가 없을 때, 물속 바위를 뒤져 보면 쓸만한 미끼가 널려있다. 돌에 붙어 있는 날도래의 유충인 ‘꼬네기’가 그것이다. 약간 징그럽긴 하지만 꼬네기를 돌에서 떼어 견지 바늘에 끼워 흘리면 바로 피라미가 입질을 해댄다. 생미끼라서 집어(集魚)의 효과가 크다. 사실 물고기는 눈으로 미끼를 보는 것이 아니라, 냄새로 먹이활동을 한다. 그런 이유로 생미끼가 조과(釣果)에는 훨씬 효과적이다.
견지낚시를 할 때면 자연과 내가 한 몸이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한다. 아래로는 물속에 내 몸을 담그고 위로는 하늘에 몸을 담근 느낌이다. 야트막한 여울의 잔잔한 물소리는 너무나 아름답다. 가끔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는 좋은 느낌을 더한다. 녹수청산(綠水靑山)의 비경 속에서 자연과 동화되는 즐김과 풍류의 낚시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인 한 강(韓 江)이 말했던 ‘만져지지도 않고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실존하는 것’ 바로 이런 ‘소리’들은 내 몸속에 잠재해 있던 오감들을 섬세하게 잡아 일으켜 준다. 견지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일이 아니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내가 편안하게 깨어나는 치유(治癒)의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견지낚시를 많이 하는 곳은 강원도 오대천, 임진강, 단양의 남한강 등지이다. 물론 조그만 여울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 할 수 있다. 난 서울에서 가깝고 물이 잔잔한 경기도 가평, 청평에서 주로 견지낚시를 한다. 서울의 동쪽인 우리 집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양양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힘들이지 않고 청평으로 갈 수 있다. 청평의 녹수계곡(綠水溪谷)과 조종천은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한 편이고 군데군데 식당이나 편의점도 많이 있다. 청평 읍내를 지나다 보면 길가에 ‘청평 낚시’라는 아담한 낚시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주말에도 아침 7시면 열려있다. 자주 애용한다.
청평검문소에서 좌회전하여 조정천과 나란히 가다 보면 ‘산장관광지’가 나온다. 가평군에서 운영하며 캠핑장과 펜션이 있다. 값도 저렴해서 이용하기 좋다. 매월 1일 인터넷으로 예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꺽지 낚시로 유명한 녹수계곡(綠水溪谷)이 나온다. 바위가 많고 물색이 탁하여 꺽지가 서식하기 안성맞춤이다. 꺽지 낚시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물론 견지낚시도 가능하다.
견지낚시를 처음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물고기가 바늘을 물어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참 지나 줄을 걷어보면 물고기는 이미 구더기를 알차게 빼먹고 난 뒤다. 구더기의 껍질만 남는다. 물고기는 먹이를 흡입하기 때문에 껍데기만 바늘에 예쁘게 매달려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낚싯줄의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떨림이 물살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 그게 또 헷갈린다. 무언가 떨림이 느껴져 낚싯줄을 걷어보면 이번에는 구더기가 그대로 있다. 입질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비로소 그 느낌을 알게 된다. 누가 가르쳐주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잡은 물고기는 바로 놓아준다. 그것이 견지 낚시꾼의 매너다. 먹기 위해서 잡는 것이 아니므로 원래 살고 있던 자연으로 보내준다. 홍천강 쪽에서는 피라미보다는 커다란 누치를 주로 대상 어종으로 한다. 낚싯대가 기역자로 휠만큼 큰 누치를 멋지게 잡아내기도 한다. 특히나 누치는 크기 때문에 바로바로 놓아주어야 한다.
한동안 견지낚시를 하느라 주말마다 청평과 홍천강 일대를 쏘다닌 적이 있다. 혼자서 갈 때도 있었지만 가꿈은 지인과 동행해서 견지낚시를 가르쳐 주곤 했다. 자그만 피라미지만 낚시에 성공한 그들은 세상을 가진 양 환호하거나 신기해했다. 그럴 때면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고 인근 맛집에서 식사도 같이하며 사이가 가까워지기도 했다.
견지낚시 덕에 바람도 쐬고 자연과 벗 삼을 수 있어 힐링(healing)이 되었다. 일주일 동안 치열했던 도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선선한 초가을 날, 해 질 무렵 조정천 위로 퍼덕거리며 피딩(feeding, 먹이활동)을 하는 물고기들의 허연 배가 노을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장관을 이룬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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