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문화재와 포장마차

by 자화상 Jan 29. 2025


가을의 풍납동 거리


내가 사는 곳은 서울시 송파구의 풍납동이다.

한자로 '풍납(風納)' 은 바람이 든다는 의미이다. 이곳의 여러 지명들에서 ‘바람드리’ 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바람드리 도서관, 바람드리 주차장 등등이다. 글자그대로 바람이 많이 분다. 바로 북쪽 편에 한강이 있고 그 아래 풍납동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그야말로 매서운 삭풍이 내 얼굴을 때리듯이 불어친다.

난 이곳이 좋다. 대형병원이 5분 거리에 있고 고속도로도 5분이내에 모두 올라 탈 수 있다. 잠실과 5호선 상일동 방향으로 가는 5호선과도 연결되어 있어 어디를 가든 편하다. 남쪽으로는 도보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올림픽공원이 있어 산책 등 여가 활동을 하기에도 용이하다. 봄이나 가을이면 벚꽃과 은행나무 단풍이 지천을 이룬다. 올림픽공원 주변으로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되어 운동하기 안성맞춤이다. 자전거도로는 한강까지 이어진다. 취미생활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들이다.

이러한 지리적인 장점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유흥업소들이 거의 없는 것도 이곳을 떠나기 싫게 하는 이유가 된다. 기껏해야 치킨집이나 자그마한 노래방 몇 개만 있다. 학생들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실천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교육환경이다.

풍납동은 옛 백제의 도읍지인 위례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풍납동에는 백제의 다양한 유적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풍납동 토성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옛 백제의 우물터가 보존되어 있다. 가는 곳곳에 그러한 유적과 표지판이 보인다. 그만큼 유서 깊은 동네라고 할 수 있다. 풍납동에서 살게 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마음의 고향이라 할 만큼 이미 나에게는 익숙한 지역이 되어버렸다. 사실 풍납동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마을 탐방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운동을 한 적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옛 유적이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필자의 경우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곳이 옛 백제의 초기 도읍 즉, 위례성이 있던 지역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풍납동 토성, 몽촌 토성이 그 당시 적을 방어하던 거대한 ‘흙으로 쌓은 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풍납동 뿐 아니라 잠실, 석촌동 등지에도 예전 백제의 무덤 등 여러 유적지가 많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실제로 직접 가서 본 적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풍납동은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개발 제한으로 27년째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해 전에는 아파트를 짓고자 땅을 파다가 유물이 무더기로 나와서 건축을 포기하고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쉽게 얘기해서 땅만 파면 백제 유적이 나올 정도이다. 덕분에 2001년 5만 7천여 명이던 풍납동 인구는 올해 4월 기준 3만 5천여 명으로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풍납동 토성 산책로에 은은한 조명이 켜졌다. 황량한 풀밭에 불과하던 토성길이 개발되어 주민들에게 편의를 준다. 무조건 말뚝을 박아 출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활용하자는 취지일 터이다.

문제는 건축물이다. 어느 날부터 토성 주변의 건물들에 철망이 쳐졌다. 마치 대단한 군사시설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철거 예정임을 주민들에게 알린다. 물론 안전상의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풍납동을 오랫동안 지키던 상점들이 점차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가게 하나가 계약이 끝나서 없어지는 것이라 그냥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 가게에는 이 지역 사람들의 애환이 물씬 스며있다. 게다가 한두 개가 아닌 여러 가게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것이 왠지 모를 허전함, 나아가 상실감을 안겨준다.

문화재를 보존한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생활 터전과 추억거리를 이처럼 훼손 아닌 훼손을 해야 할 것인가.

내가 사는 아파트는 2006년에 신축되어 분양되었다. 같은 해 지어진 바로 옆 아파트와 함께 가장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일 만큼 풍납동에는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질 않는다. 게다가 집값은 제자리나 매한가지이다. 투기를 생각한 건 아니라 상관없지만, 같은 기간에 서울 시내 아파트값 상승분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렇듯, 거의 20년 동안 새로 건축된 아파트가 없다. 몇 년 전 풍납동에 아파트를 지으려 땅을 팠는데 한성백제의 유물이 무더기로 나오는 바람에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역사 공원으로 만든 사례도 있다.

계속된 유적 보존과 개발을 위해 풍납토성 인근의 건물들은 폐쇄되고 있다. 필자의 집이 풍납토성 바로 앞이다. 우리 집 주변의 상가나 주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풍납동의 인구수는 계속 줄어든다. 보상을 받고 떠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직장동료들과 가끔 들르든 20년 단골 포장마차도 결국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철거 예정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따듯한 계란말이와 제육볶음 안주를 맛나게 내어 주시던 인상 좋은 주인 내외분은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도 없다. 문화재 보호도 중요하지만 내가 사는 마을의 소중한 추억들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필자의 생각이 이럴진 데, 다른 주민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오죽하겠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처음 풍납동에 이사 왔을 때는 마을이 복잡하지도 않고 곳곳에 공원이 있고, 또 유흥업소도 거의 없는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그리고 한강이 바로 인근에 위치하고 올림픽대로도 바로 탈 수 있어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봄이 되면 풍납동 토성에서 주민들이 쑥을 캐고 겨울이면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기도 했다. 왠지 한적한 시골의 조그만 마을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되는 개발 제한과 기존 건축물의 철거는 필자에게 의문점을 던져준다. 옛 한성백제의 유적을 지키는 일은 우리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켜왔던 이 지역의 삶의 터전을 잠식하듯 없애는 일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혹시 당국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평범한 지역주민으로서의 나는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도 모를 백제의 유물보다는 맛있는 안주에 따듯한 국물과 술 한 잔을 웃으면서 내어 주시는 포장마차의 주인아저씨가 훨씬 더 그립다.     


               

#백제 #위례성 #풍납동 토성 #포장마차 #문화재

이전 12화 14. 견지낚시의 추억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