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시작, 그러나 조금은 어설펐던 여행
12월 5일, 결혼.
겨울바람이 살짝 스쳐 가던 계절,
우리는 하와이로 향했다.
눈 내리는 한국을 뒤로한 채,
정반대 계절의 남국 섬으로-
뜨거운 햇살과 초록빛 바람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신혼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시간.
그 시절의 하와이는
그저 따뜻한 날씨와 예쁜 풍경,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의 나는 ‘여행의 설렘’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정확한 위치도, 추천 동선도 몰랐고,
어디를 가든 다 좋아 보였던 시절이었다.
하와이는 단지
“신혼여행이니까 가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라는 이유로 선택됐다.
회사 일에 지쳐 있었고,
오롯이 쉬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떠난 여행.
마우이 3일, 오아후 5일.
지금 생각하면 오가는 시간만 오래 걸리는
비효율적인 일정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조차 몰랐다.
수박 겉핥기식 여행일지라도,
와이키키 해변을 걷고,
함께 있는 순간을 낭만이라 부를 수 있었던 우리.
오랜 시간 중국에서 살았던 남편에게는
하와이가 새로운 출발이자,
낭만 가득한 첫 해외 여행지였다.
처음 타본 오픈카,
하와이 대자연을 마주하며 쏟아낸 감탄들.
물론, 이틀째 되자 뜨거운 햇살에
서둘러 뚜껑을 닫아야 했지만,
그마저도 신혼의 추억이 되었다.
해변을 걷다 말고,
남편과 이런 약속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 첫 아이가 자라고,
그 아이가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떠날 무렵엔
우리도 다시 하와이를 찾자.”
그땐 몰랐다.
우리가 그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세 번이나 다시 이곳을 찾게 될 줄은.
돌아보면,
그 여행은 ‘힐링’이라기보다
‘축복받는 이벤트’에 가까웠다.
햇살은 좋았고, 음식도 맛있었지만,
마음 깊이 남은 감정보다는
일정에 쫓겨 바쁘게 스쳐 간 순간들이 더 많았다.
사진도 많이 남기지 못해, 기억마저 흐릿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하와이 바람이 이렇게 사람을 안아주는 줄도,
그 섬의 리듬이
일상을 얼마나 다정하게 이완시켜 주는지도.
그저 좋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왜 좋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던 여행.
그게 나의 첫 번째 하와이였다.
신혼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아름답지만 조금은 어설픈 시작.
그리고 지금은 안다.
그 어설픈 시작이
내 인생의 중요한 기준점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그 후 다시 찾은 하와이마다
나는 조금씩 다른 이유로,
조금씩 다른 나로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알겠다.
그 모든 시작이 하와이였다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다음화 예고:
첫 여행이 ‘축복받은 시작’이었다면,
두 번째 하와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
낭만 대신 아이 간식 가방을,
오픈카 대신 유모차를 끌고 다녔던 시간들.
아이와 함께여서 힘들었지만,
그만큼 더 깊이 남았던 순간들.
다음 편에서,
‘육아의 하와이’로 떠난 두 번째 여행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