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책방 모임 신입회원

by 임용철

한낮의 폭염으로 달궈진 상가의 아스콘 위로 스콜성 소나기가 쏟아졌다. 차에서 내리자 습한 타르 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다. 상가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사람들은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정류장에 발이 묶였다. 학원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아이들이 비좁은 정류장 안에 올망졸망 모여있었다.

이든은 백팩을 멘 채로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 들었다. 서점 왼쪽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띄었다. 그는 만 원어치의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오마하로 들어갔다. 만복동에 있던 오마하는 골목길에 있어 아기자기하고 정감이 묻어났었다. 반면에, 상가로 이전한 오마하의 첫 느낌은 세련돼 보였다. 평수도 두 배는 넓어졌고, 흰색 페인트와 흰 벽체를 삼등분해 가로지르는 선반과 하단의 수납장 그리고 노란색 의자들. 공간을 나눠 천장에 설치한 흰색과 검정 레일 조명도 아이들의 눈높이와 엄마들의 욕구를 고려한 인테리어였다.


잔잔한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이 에어컨 바람과 함께 실내 온도를 낮추고 있었다. 왼쪽 벽면에 7월 책 놀이 스케줄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이 만든 그림책 전시를 알리는 꼬마 작가 북페어 홍보용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모두 잘 지내셨어요?" 이든은 아이스크림이 든 비닐봉지를 탁자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탁자 위에는 낱개 포장된 초코칩 쿠키 여섯 개가 사각형의 디저트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네 명의 회원들이 그를 반겨주었다.

"카모마일과 페퍼민트 차 있는데 어떤 걸로 드실래요?"

책방지기 수연 씨가 무선 전기 주전자에 스위치를 켰다. 온다던 신입회원은 보이지 않았다.

"카모마일 차요. 아직 안 오셨나 봐요?"

이든은 홍주 옆에 앉으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네, 송도에서 오는 중이라 시간이 좀 늦을 거래요." 수연 씨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오빠, 신입회원이 많이 기대되시나 봐요?"

홍주가 카모마일 티백이 담겨 있는 찻잔을 이든 앞으로 끌어당겼다.

"자기야, 꼭 찍어 먹어봐야 된장인 줄 아니. 남자들이 다 그렇지."

골드 미스인 지혜 누나가 홍주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는 가방을 열고 오늘 발표할 임현 작가의 고두(叩頭)라는 작품이 실린 2017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꺼냈다.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아이스크림이나 드세요."

"저녁을 짜게 먹어서, 시원한 게 당겼는데."

소미 여사님이 의자에서 일어나 봉지 안을 들여다보고는 죠스바를 골라 꺼내 들었다.


개업식 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글라디올러스가 싱싱했다. 창가에 놓여 있는 흰색의 동그란 탁자 위에 긴 화대 끝에서 화사한 자태를 뽐냈다.

"홍주가 가져온 꽃이 아직 싱싱하네." 이든은 허리를 숙여 글라디올러스의 향기를 맡았다. 상쾌하고 달콤한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매일 물 갈아주고 끝을 조금씩 잘라주면 오래 가요." 홍주는 글라디올러스를 자르다 말고 수연 씨를 바라보았다.

"언니, 한 단을 사 올걸 그랬나 봐요.”

"지금도 아주 화사해. 고마워. 홍주 씨" 수연 씨는 홍주가 잘라낸 화대를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만복동 오마하 자리에 붕어빵 가게가 들어왔어요." 이든은 퇴근길에 책방 자리에 문을 연 붕어빵 가게를 보았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일흔 정도 나이의 어르신이셨다. 그는 목제 방부목 덱 위에 포장마차를 설치해 놓고 붕어빵을 만들고 계셨다. 붕어빵 기계 옆에는 어묵 꼬치가 수북이 꽂혀서 무더위에 지친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붕세권'이란 신조어를 소개했다. 도심에 붕어빵가게가 점차 사라져서 우리 동네 붕어빵 찾기가 가능한 앱도 있다고 덧붙였다.

"추운 겨울이라면 모를까, 한여름에 붕어빵이 잘 팔릴까요?"

수연 씨는 이전 오마하가 있던 자리에 새로 개업한 붕어빵 가게 어르신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슈크림 붕어빵을 좋아하는데." 지혜 누나는 막대 아이스크림에 치아가 시린지 네모난 얼굴을 찡그렸다.

소미 여사님이 그런 지혜 누나를 보고는 왼쪽 볼을 손으로 누른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이가 시려요?"

"치과에 갔더니 이가 많이 닳았대요." 그녀는 일본 완구 제조업체 이와이 사의 못난 삼 형제 인형처럼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치과 얘기하니까 나도 해줄 얘기가 있어." 소미 여사는 우스운 얘길 꺼내기도 전에 혼자 웃는 버릇이 있었다.

홍주가 의자를 당겨 앉으며 소미 여사를 채근했다.

"여사님, 숨넘어가겠어요. 그만 웃고 얼른 얘기해 주세요."

"우리 시어머니가 지난 주말에 스페인으로 8박 9일 여행 갔다고 했잖아."

"네, 그러셨죠." 신입회원과 전화 통화를 마친 수연 씨도 자리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소미 여사는 찻잔의 티백을 꺼내 티백 트레이에 내려놓았다.

"어제 남편이랑 같이 집에 퇴근해 보니, 국제택배가 와 있더라고. 그래서 열어보니, 글쎄 우리 시어머니 틀니가 들어있는 거야. 남편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엄마가 스페인에서 돌아가신 거 같다고. 울고불고 그런 난리가 없었지. 내가 여행사에 전화해 보자고 말해도 도대체가 귓구멍으로 들어먹어야 말이지."

"세상에..."

"오 마이 갓."

"그래서 별일은 없으신 거죠?" 홍주, 지혜 누나, 수연 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식당에서 부분 틀니가 불편해서 잠깐 컵에 담가 놓으시고 식사하셨나 봐. 다음 코스로 이동하고 나서야 틀니를 두고 오신 걸 아셨다네. 그래서 나중에 그 식당에 들른 국내 가이드에게 틀니를 챙겨달라고 부탁해서 틀니만 먼저 우리 집으로 온 거지."

"가이드분이 착하네요. 어쩌면 귀찮을 수도 있는데." 이든은 선반에 진열된 <튤립호텔>이란 동화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남편이 어머니 틀니 챙겨줘서 감사하다며 두 가이드에게 별다방 모바일 쿠폰을 보내드렸어요. 어젯밤에 가슴이 벌렁거리고 얼마나 놀랐던지 말도 못 해요."


그때, 출입문이 열리며 문에 매달린 빨간색 유리 후우링이 딸랑 소리를 냈다. 신입회원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회색 플리츠 미니스커트에 흰색 크롭티를 입고 있었다. 서두른 탓인지 얼굴빛이 상기돼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시계는 저녁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 걸린 직사각형의 로즈 골드 펜던트와 골든벨 귀걸이가 로즈골드 직부/펜던트 주광색 조명 아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녀가 그의 맞은편 빈자리에 앉자, 수연 씨가 차를 건네며 말했다.

“신입회원도 들어왔으니, 간단한 자기소개 어때요. 이든 선생님부터 시계방향으로.”

“안녕하세요. 차이든입니다. 서른네 살입니다.”

“오빠, 소개팅해? 촌스럽게 나이는." 홍주는 이든이 못마땅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장화홍련전의 장홍주입니다."


신입회원은 휴대전화를 확인하느라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회원들의 소개가 끝나자, 그녀는 머리를 묶었던 하늘색 머리끈을 풀어 입에 물었다. 단발머리가 귀밑에서 찰랑거렸다.

"단발이 잘 어울려요." 지혜 누나가 신입회원의 윤기가 흐르는 단발머리를 부러운 듯 바라봤다.

"원래는 어깨선으로 커트해 달라고 했는데." 그녀는 입에 물고 있던 머리끈으로 다시 단발머리를 묶으며 말했다.

"살짝 잠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이렇게 짧아져 있더라고요."

이든은 머리를 묶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자기가 견고하게 발을 딛고 있는 저수지의 둑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고무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가 어둠 속에 누군가 갑자기 가위로 싹둑 잘라낸 느낌이었다. 두려움이나 아픈 느낌은 없었다. 몸 안에 열감이 느껴졌다. 가벼운 떨림과 흥분이 심장의 박동을 독려하여 혈액을 원하는 곳으로 밀어 올렸다. 상쾌한 바람을 등에 업고 밀려드는 파도의 흐름 같았다.

“ 이아영입니다. 올해 공대 졸업하고 송도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소미 여사님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이 담긴 봉지를 꺼내와 그녀에게 하나 고르라는 시늉을 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민트리치바를 골라 포장을 벗기고 한입 베어 물었다.

"네이버 카페에서 책방 모임 공고를 봤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눈 밑에 인디언 보조개가 저조 때 바닷길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그녀가 송도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지가 궁금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관교동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공유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역시 MZ세대라 교통편도 심플하네.” 홍주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든은 무엇보다 그녀의 하얗고 가지런한 앞니가 맘에 들었다.

'얼굴이 예뻐서 치아가 가지런해진 걸까? 아니면 치아가 가지런해서 얼굴이 예뻐 보이는 걸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인류의 오랜 논쟁거리를 두고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는 무한한 연속'이라고 말했다지만 스위스 제네바대 연구팀이 2024년 1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달걀이 먼저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그는 달콤하고 쫀득한 초코칩 쿠키를 먹으며 머릿속 행복회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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