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던 나 회고 일기 1. 어쩌면, 시작의 변
최근 깨달았다.
생각도, 말도 꽤나 솔직하게 하는 편이지만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 걸 두려워한다는 걸.
이래서 내가 매번 일기 쓰기에 실패하는 걸까(괜찮은 핑계인데?!)
돌이켜보면 심지어 일기 쓰기가 필수 숙제였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나는 일기를 제대로 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심지어 내가 이미 성숙한 줄 알았던 고학년 때는 검사하는 일기는 일기의 본질과 모순될 수밖에 없다고 써낸 다음부터는 아예 일기를 안 냈다. 아, 이게 시작이었을까?
누구 보여줄 일도 심지어 누가 몰래 볼 확률도 없는 지금조차 일기나 기록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자꾸 감시자를 상정하고 있었다. 그냥 누군가 혹시나 어쩌다가 읽는 게 아니라 감시하고 판단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 그래서 신나게 했던 생각도 펜이나 키보드를 통과하는 순간 뾰족하게 빛나던 가시가 모두 마모되어 버려 괜한 찝찝함만 남겼다.
그럼 안 쓰면 되지.
그래서 안 썼다. 근데 더 이상 쓰지 않고 버틸 수 없는 순간들이 오더라. 일하면서 밀려오는 생각들과 나에 대해 깨닫는 실마리들, 그 생각의 끄트머리들을 붙잡고 있자니 자꾸 넘쳐 일상을 체한 상태로 사는 것 같았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토해내고 싶었다. 모닝 페이지도 해보고 일기도 써봤지만 결국 또 제자리.
이럴 거면 차라리 진짜 누군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쓰기로 했다.
쓰다 보니 스스로 만들어낸 감시자의 비난이 허상임을 깨닫고 자신감이 생기든,
사실 굉장히 합리적인 비판이었음을 알고 깔끔히 포기하든,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이런 글 때문에 서버 돌아가기엔 지구한테 미안해서 그만두든,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여기까지 초고를 써두곤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결국 아무것도 올리지 못하고 이젠 백수가 되어 회고를 하고 있다. 여전히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은 온갖 상황에 대응하느라, 일에 압도되어 여력이 없었고, 회사를 그만두고는 딱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실은 제 버릇 개 못 주는 것인지 해외 취업을 해보겠다는 막연한 기대와 계획으로 시간을 비워두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속박해 둔 많은 일정을 쳐내느라 또 여유가 없었다.
분명 그때는 쏟아내지 못하면 정말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는데도 쏟아내지 않고 어떻게 지나온 거 보면 꼭 쓰지 않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지금이라도 써두지 않으면 또 그새 정리하지 못한 옷더미처럼 쌓이고 쌓이다 빠르게 쏟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그냥 지금의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지금의 망설임이 이미 소진되어서 인지 단순히 불확실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
그래서 돌아보려 한다.
일이, 직업이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