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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서 Dec 28. 2024

업계에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일하던 나 회고 일기 4.

내가 IT 업계에 들어온 것은 사실 그다지 전략적인 선택이거나 어떤 비전을 봤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내가 일을 시작하던 시절에도 IT가 뜨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취업 후 노동자 n의 입장에서 업계의 상황이 피부로 와닿거나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핫하다는 핀테크로 들어섰을 때도 뭔가 느껴지는 건 딱히 없었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는 IT 업계가 더 큰 주목을 받는다며 주변에서 IT로 이직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꽤나 한정판 같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서 신선하긴 했다. 그러다 2~3년 전부터는 PM 직무 교육 관련된 광고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에듀 테크의 부상과 소위 'AI 시대에도 뜨는 직업' 리스트에 PM이 종종 포함된 것, 팬데믹 시즌의 IT 업계의 처우가 주목받은 것 등등의 요인들이 합쳐져서였겠지, 정도로 혼자 분석하고 말았다. 신입 때 내가 받고 싶었던 교육 커리큘럼을 내세운 교육들을 보며 조금 부럽기도,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운 좋게 PM 교육으로 인해 약간의 부수입이 생기면서 조금 신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나는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팬데믹 초기 어느 때보다 풍성했던 수확 이후 바람의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꽤 추운 겨울이 오려나보다.

겨울바람은 비기술직에게 먼저 느껴진다. 겨울이 오면 비기술직의 처우가 먼저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연봉이 깎인다거나 복지가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T.O. 가 줄어들고 인력이 나가더라도 충원이 잘 되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하는 일이 많아지는데 상대적으로 업무의 중요성을 두각 시키기 어려워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본인 업무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주니어 기획자/PM의 고민을 자주 듣곤 했다. 회사 임원들로부터 '기획자가 꼭 필요한가' 류의 분위기가 시작되면 실무자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분위기를 캐치한다. 그리고 특히 경력이 적은 주니어일수록 이런 분위기에 많이 흔들리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많은 회사들이 기획자 필요하냐고 부서를 없애다가도 결국은 다시 만들었다. 기획/PM이 중심 잡지 못할 때 프로젝트가 힘들다는 거 우리가 알지 않냐, 우리는 분명 필요한 역할이다."라며 위로하지만, 나도 안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추운 날 아무리 꽁꽁 싸매도 코 끝이 시리듯, 업계가 겨울인데 그래도 따뜻해질 거야,라는 말은 위로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지. 이런 상황에서 PM 직무를 하고 싶어 하고 궁금해하는 눈들을 마주했을 때 내가 하는 말이 항상 진실인가?라는 자괴감을 지우기 힘들었다.


데이터로 봐도 겨울이다. 출처: 비사이드 스킬트렌드 https://bside.best/skilltrends/


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이런저런 고민들로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20년 차 넘은 언니들이 다가와 말해줬다. 닷컴버블도 결국엔 지나가고 좋은 시절 왔었다고. 막상 내가 들으니 새삼 그 위로들이 참 따스하다 싶다. 어차피 답이 없다면 일하는 우리끼리 위로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이 추운 겨울 잘 살아남아 보는 수밖에.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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