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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서 Dec 21. 2024

일잘러라는 거대 코끼리

일하던 나 회고 일기 3.

‘일잘러’라는 표현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2020년쯤이었던 것 같다.


일잘러가 되어야 한다, 일잘러가 되는 법, 요즘 일잘러들은 이런 서비스 이용한다, …


마케팅 문구라 생각하면서도, 문제적인 지점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꽤나 그 표현에 휘둘렸다.

일잘러 소리를 듣고 싶었다.


다행히도 나는 조직에 속해 있는 동안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었다.

평가도 좋았고, 동료들의 칭찬도 많이 들었다. 때로는 그 칭찬들을 단순히 상대방의 예의라 의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 덕에 자존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일잘러’라는 말은 사실 그 자체로 족쇄에 가까웠다. 나는 순간순간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하고 있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그럴수록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던 중 어떤 팟캐스트에서 이다혜 작가님이 일잘러의 모호함에 대한 이야기하신 것을 들었다. 정확한 에피소드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약하자면 ‘모두에게 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예컨대 우리 부서의 일을 잘 추진하기 위해서 밀어붙이다 보면 우리 부서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겠지만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타 부서에서는 일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속의 한 구석에서 조금은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실 ‘일잘러’는 소위 “장님 코끼리 만지기” 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일을 다 전방위적으로 잘 해내야 한다 하지만 사실 개인의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직무상, 혹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개인이 전후 사정과 큰 그림을 다 그려내 가며 일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다음 질문을 마주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직장인 밸런스 게임 중 가장 흔한 질문은 아마 “일 잘하지만 인성이 별로인 동료 vs 일은 못하지만 착한 동료” 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문장은 형용 모순이며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거의 모든 일은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심지어 프리랜서 업무라 하더라도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완결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하더라도 하다못해 해당 일을 의뢰한 고객이 있게 마련이다. 협업 환경에서 ‘일을 잘하는’ 기반에는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에 위의 밸런스 게임은 형용 모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 일을 잘 할리 없고, 배려하지 못한다면 ‘착하다’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직무 특성상으로도 늘 협업의 중심에 있었기에, 최대한 나와 협업하는 동료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해 왔다. 다른 작업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최대한 기획 일정을 빠르게 처리하고, 안 되면 업무 진행 상황에 맞게 단계별 공유라도 했다. 중간에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일에 늦지 않게 대응하려다 보니 배지 강박이 생기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 덕분에 나는 심지어 프로젝트 중간에 회사를 나오면서도 ‘책임감 있다’, ‘일을 잘한다’는 평판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의문은 짙어졌다.

나는 일을 잘하는 걸까? 항상 오버하고 있는데, 이게 일을 잘하는 건가? 내 그릇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담으려다 흘러넘치고 있는데, 그래서 자주 곤두서고 있는데 이게 괜찮은 건가? 이게 맞나?


여전히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하나는 알 것 같다.

적어도 이 방식은 나에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뭘 어째야 하냐면,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 쓰면서 돌아보려 한다. 쓰다 보면 갈피를 좀 잡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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