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던 나 회고 일기 2
처음 현재 직무로 일을 시작할 때 막연히 생각했다.
“이 일로 10년 채우고 다른 직업으로 전직해야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일하면 꽤나 전문가가 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 자신과 일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 좀 더 적성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사이 많이 흔들리며 부딪혀 온 결과로, 덜 헷갈릴 줄 알았다.
근데 대체 언제 10년 차를 넘어버린거지? 왜 벌써? 난 아직도 흔들리고 헷갈리고 확신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물론 명확해진 부분들도 있다. 이를테면 ‘적성’에 대한 환상이 많이 걷어졌다.
적성이 티 나게 반짝이는 재능일 것이라는 오해,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막연한 열정이 솟아나 밤낮없이 달리게 될 거란 기대 같은 것들…
어쩌면 적성은 상대적으로 적은 리소스를 투입해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적다’에서 그 범위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정말 습자지 한 장 차이일 수도 있고, 꽤 큰 차이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쉬이 해낼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 그리고 적성은 하나의 직업 총체에 대한 것이라기 보단 일의 일부 요소에 대한 것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회의록 작성이나 엑셀 수식 활용 같은 것들 말이다.
적성에 대해 나름의 생각 정리가 되고 나서 스스로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IT PM이라는 직무에서, 그리고 회사 안에서 내가 어떤 것을 잘하고(혹은 상대적으로 쉽게 하고) 어려워하는지, 그리고 그 어려움이 조직 때문인지 직무 때문인지 등에 대해 좀 더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막연하게 전직하고 싶었던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힐 수 있었고, 꽤나 내 직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금 또다시 직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당장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 언제 무엇을 하고 싶든 미리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년쯤부터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조직에 속한 정규직이라는 형태의 노동 방식이 우리의 정년까지 유효할지, 그전에 내가 한 조직에서 정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들, 정년 이후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노후의 삶까지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나를 소진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지속가능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딱히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두려움, 노동 시장의 변화가 보이지만 대비할 방법을 몰라 드는 불안감 등등.. 언제나 답을 내진 못하고 우리 모두 무사히 잘 지내보자는 응원으로 마무리되는 대화이지만, 그럼에도 이 대화를 멈출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 이직을 시도해 보겠다는 지금은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가기 위해 여전히 같은 직무와 고용 형태의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이런 고민들이 자꾸 스스로 되묻게 만든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 맞나..?
그럼에도 뒤로 가는 길은 없어 일단 가고 있다.
어쩌면 10년 넘게 일을 하면서 얻게 된 것은 확신보다는 확신할 수 없어도 나아가는 근성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