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아니”
“그럼 왜..”
“핸드폰 사용하지 마. 기다려 봐”
"..."
처음으로 입국심사에서 세컨더리에 들어갔다.
기왕 기약 없는 취준 생활을 하게 된 거, 오랫동안 해외에 거주해서 자주 보지 못한 언니,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캐나다에서 약 2달간의 짧은 어학연수 후 가까운 미국에 있는 언니네에서 입사 지원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짐이 많았지만 맘씨 좋은 친구가 공항에 데려다준 덕에 오롯이 편안한 몸과 들뜬 기분으로 언니에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밴쿠버 공항에 있는 미국 입국심사장에서 나의 들뜬 마음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미국과 캐나다는 국내선과 비슷하게 운영되어, 서로의 국가에 입국 심사장이 있다.)
"미국에 왜 가니?"
"언니 만나러 가."
"얼마나 있을 건데?"
"두 달."
두 달 머문다고 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요구하는 대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도 보여줬고 일하고 있다는 것도 잔고 증명까지도 했지만 내가 너무 오래 머문다는 이유로,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그들은 의심스럽다며 나를 세컨더리로 보냈다. 정말 미국에서 나갈 예정이 있는 게 맞는지, 미국에 눌러앉는 게 아닌 게 맞는지, 자꾸 물어봤다. 이쯤 되니 "난 트럼프가 당선된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미리 사둔 조카 선물이 많아서 꾹 참았다. 괜히 문제 만들었다가 못 갈까 봐. 가서 조카 선물은 줘야지..
한참 나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찾고 알아보던 세컨더리 직원은 결국 나를 내보냈다. 무슨 일이었냐는 물음에는 그냥 너는 괜찮다며 별다른 설명을 해주진 않았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도, 언니가 살고 있으니 꽤 친근하게 느끼며 기회가 있으면 언니를 보러 가려고 해왔었다. 그런데 한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갑자기 친근감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 입국 심사는 세컨더리 들어갔다 온 기록이 있으면 이후로 계속 세컨더리에 들어가게 된다던데.. 별다른 이유 없이 의심받는 경험의 불쾌감은 생각보다 강했다. 약 2년 만에 만난 언니와 형부, 조카들은 모두 반가웠지만 왠지 이제는 예전만큼 미국에 자주 가고 싶어지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조건 없는 환대가 중요한 것일까. 새삼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가 생각났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되었다. 해외 생활을 결심하면서, 상대방이 나를 조건 없이 환대해 주길 바라는 만큼 나 역시도 사람을 대하는 기본 태도를 환대로 해야겠다. 긴장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해외 생활에서 나 스스로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