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의 현석은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 준비의 길에 올랐다.
오늘도 스터디가 끝난 후 피곤한 몸을 침대에 내던졌다.
늘 그렇듯 SNS를 켜고 대학 동기들, 선배들, 친구들의 스토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우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지우의 일상이 담긴 스토리를 보며 현석은 옛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지우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후배다.
현석보다 2살 어렸지만 어른스러웠고, 무엇보다 현석의 이상형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지우에 대한 마음이 커졌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혹여 그녀와 멀어질까 봐 겁이 났던 나머지 현석은 그저 곁에서 맴돌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 현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지우에 대한 감정을 억지로 접었다.
그리고 지우와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비대면 강의가 시작되어 동아리 활동도 거의 하지 못했고 지우를 볼 일도 줄어들었다.
26살이 된 현석은 졸업을 맞이하며 대학교에서의 추억을 마음 한 구석에 내버려둔채 취준생이 되었다.
졸업 후에는 취업 준비와 일상에 쫓기며 현석의 기억 속에서 지우는 흐려지는 듯 했다.
이후 취업을 위해 스터디를 하고 대외활동도 하고 여자친구와도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취업도 생각보다 순조롭지 않았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현석은 상황이 힘들어질수록 대학교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미래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둘걸 후회도 하며
대학생이었던 소중한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던 와중에 지우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잘 지내고 있을까? 뭐하고 지낼까?'
마음 한 구석에 내려놨던 지우에 대한 추억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현석은 태격태격하면서도 내심 좋아했던 지우가 보고 싶었다.
사실 현석은 졸업 후에도 한두번 정도 지우와 연락이 닿았던 적이 있었다.
지우에게 졸업 축하 메시지를 보낼 때, 그녀의 생일을 축하할 때.
안부만 묻는 사이였던 그들은 매번 타이밍이 맞지 않아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지우를 다시 보게 된다면 예전에 지우에게 가졌던 마음이 다시 생길까봐 두려웠다.
지우와 멀어지는게 죽어도 싫었다. 아니, 현석은 지우에게 거절당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섰다. 지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냐?"
5분 뒤, 지우에게 답장이 왔다.
생각보다 빠른 답장에 현석은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대답하지? 괜히 보냈나…’
머릿속이 복잡해진 현석은 밖으로 나가 걸으며 고민했다.
무작정 걷다 보니 스터디카페가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연락한 지우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몰라서 답장을 못 하겠다.
현석은 스터디카페가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엘레베이터 4층을 눌렀다.
스터디카페가 있는 4층에 도착한 순간
현석은 어리둥절했다. 스터디카페는 없고 식물이 잔뜩있는 카페가 있었다.
카페 안에는 처음보는 파란 꽃들이 피어있었다.
그는 왠지 모르게 이 카페에 들어가고 싶었다.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안에는 한 여자만 있었다. 카페 직원같았다.
"어서 오세요." 여자는 싱긋 웃으며 현석을 바라봤다.
수수한 분위기의 미인이었다. 외관상 현석과 비슷한 나이대 같았다.
현석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카페 내부를 구경했다.
바로 옆에 피어 있는 파란 꽃을 보니 지우에 대한 생각이 더 커졌다.
"오늘 이벤트 기간이라 음료 하나 주문하신 분들께 델피늄 모종을 무료로 드리고 있어요."
'이 꽃이 델피늄이었구나.' 현석은 직원의 말을 듣고 스마트폰으로 델피늄을 검색했다.
꽃말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왠지 꽃말이 지금의 현석의 마음을 울렸다.
현석은 데피늄 모종이 담긴 플라스틱 화분을 받아들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현석은 모종을 화분에 옮기며 카페 직원의 말을 떠올렸다.
“모종을 심으면서 고민거리를 하나 떠올려보세요.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벼워질 거예요.
20대면 한창 좋을 때일 텐데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리고 이어지는 직원의 마지막 말이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진심은 말하지 않으면 평생 학생만의 비밀로 남을 거에요.
젊은 시절이 지나서야 '그때 왜 그랬을까' 심정으로 마음 속에서 떠다니겠죠.
가장 후회스러운 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순간이에요."
델피늄을 화분에 옮기면서 여태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지우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지우가 다른 선배나 동기와 함께 있으면 괜히 질투가 났고 심술이 났다.
동아리 뒷풀이가 끝난 후 지우가 혼자 집에 갈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SNS로 지우의 근황을 보기 직전 지우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을까봐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그래서 지우의 스토리를 누를 때마다 현석은 매일 조마조마했다.
카페 직원의 말처럼 지우가 겨우 연락이 닿은 지금은 예전처럼 멍청하게 망설이면 안될 것 같았다.
지우에게 그동안 자신이 갖고 있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지우가 자신을 거절하는 것보다 말 한번 못해보고 지우와 평생 친한 선후배로 남는게 더 두렵다.
현석은 델피늄을 바라보다 지우에게 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시간돼?"
지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고백할 생각은 없다. 천천히, 하지만 적극적으로 지우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더이상 편한 사이가 아닌 설렘과 긴장이 멤돌 수 있도록 현석은 지우에게 천천히 마음을 표현할 것이다.
현석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지우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좋아!! 그때보자."
25살의 지우는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서류를 넣는 족족 불합격 통보를 받았 면접까지 어렵게 가도 결국 고배를 마셨다.
동기들은 잘만 취업에 성공하는데 왜 자신만 이렇게 힘든건지
매일 밤마다 울며 잠들고 있다.
그나마 그녀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대학생 시절 즐거웠던 기억 한조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있었던 동아리 활동을 하러 동아리방에 들어설 때마다 설레였던 기억.
현석이 그녀를 반길 때였다.
현석은 항상 지우에게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현석에 대한 지우의 마음은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후배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지우는 늘 선을 지켰다.
결국 현석에 대한 마음을 접고 편한 선후배 사이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졸업 후 지우는 힘든 순간마다 현석을 떠올리곤 했다.
그에게 졸업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내심 기뻤고, 생일 축하 메시지 한 통만 받아도 행복했다.
현석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연락해보고 싶었지만
스스로에게 희망고문을 하기엔 지우는 더 힘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억지로 돌아섰던 지우에게 정말 오랜만에 현석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
갑작스러운 연락에 지우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지우의 마음에 잔잔한 설렘이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