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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나

자신만의 삶을 가꾸는 것

by 수잔


나현은 오늘도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지수의 SNS를 열었다.
어느새 지수의 새 게시물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화려한 외모, 세련된 스타일, 매사에 당당한 태도.
지수는 나현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게시물을 볼 때마다 나현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지수처럼 되고 싶었지만, 그녀와 자신은 달랐다.

대학 시절 내내 지수 옆에 서면 마치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나현은 지수처럼 돋보이고 싶었고 그 열망은 점점 강박으로 변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지수를 동경했다.

잘난 지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만큼 다들 지수를 부러워하고 그녀처럼 되고 싶어 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나현은 지수의 머리 스타일, 말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모든 것을 따라 했다. 예쁘고 성격도 좋은 지수가 늘 부러웠다.

지수는 반에서 조용한 학생이었지만 항상 당당했다.

그녀가 교실에 들어올 때 반 아이들은 모두 지수를 봤다.

묵묵히 공부만 했던 지수는 반 아이들 모두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수를 시기하던 학생의 가시 돋친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의 지수는 나현의 눈에도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지수와 같은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서 나현은 죽어라 공부했다.


나현의 노력 끝에 지수와 같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교 입학 후에도 여전히 나현은 지수처럼 되고 싶었다.

지수처럼 살지 못하면 나현은 그녀의 삶이 실패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수를 따라 할수록 나현 자신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지수는 나현에게 완벽의 기준이었으니까.


게시물을 보며 지수의 스타일을 따라 했고

지수가 팔로우하는 회사를 팔로우하기도 했다.

나현이 지수를 따라 하기 시작한 건 오로지 자신의 행복 때문이었다.

지수처럼 되어야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수의 SNS를 확인하면서 점점 그녀의 마음은 어두워져만 갔다.

지수라는 완벽에 대한 강박이 서서히 나현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지수의 SNS에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전시회에 간 사진이었다.

졸업 후 연락이 뜸했던 터라 나현은 지수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저 지수의 계정을 볼 때마다 불안함만 가득했다.

혹시라도 지수가 자신보다 먼저 좋은 회사에 취직했을 것 같아서였다.

사진에서 완벽해 보이는 지수의 삶이 부러웠다.

나현은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지수처럼 완벽해 보이는 근황을 알리고 싶었다.

전시회에 가서 예쁘게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었다.


며칠 후 정신을 차려보니 나현은 전시회에 있었다.

SNS에서 유명한 전시회였다.

그림을 보며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주변을 살폈다.

순간, 나현의 눈길은 어떤 그림으로 향했다.

정원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델피늄의 정원', 그림의 제목이었다.

푸른 빛깔의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중심으로 향할수록 사람이 보였다.

얼핏 보면 여자의 뒷모습 같았다. 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림으로 향했다.


그림을 향해 걸어갈수록 그림 주변의 사람과 다른 그림은 점점 뿌옇게 보였다.

홀린 듯이 그림에게 다가간 순간, 전시회에 내부가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누군가 물감으로 칠하는 것처럼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진한 갈색으로 땅이 생겼고 짙은 녹색이 위에 얹어져 풀이 자랐다.

줄기는 위로 곧게 뻗어 올라가 맑은 파란색과 만나 꽃이 되었다.

파란 꽃 가장자리에 연보라색과 흰색이 입혀져 햇살이 스며드는 꽃밭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노란색과 초록색, 하늘색이 만나 따뜻한 정원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나현이 그림 안에 있는 것처럼 주변은 온통 푸른 꽃으로 가득 찼다.

분명 전시회에 있었는데 나현은 정원 가운데에 서있었다.

앞에는 한 여자가 있었고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현에게 다가왔다.




나현은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자신이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바로잡고 여자에게 물었다.

"저, 혹시 나가는 문이 어딘지 아시나요?"

"문은 좀 기다리면 생길 거예요."

여자는 나현을 얼굴을 보며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 나가려고만 하면 문 못 찾아요. 주변은 점점 삭막해질 거니까."

나현은 여자의 말이 도통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건가요? 갑자기 장소가 바뀔 수가 있나?"

나현은 처음 보는 여자의 말을 들을수록 여기를 나가야 할 것만 같아 무서웠다.

여자는 분수대 근처로 걸음을 옮기며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직접 초대했거나 아니면 본인이 여기로 도망쳐 오거나 둘 중 하나에요.

요즘 걱정이 되게 많으신가 봐요."

나현은 대답을 하려다 멈칫했다. 여자의 말이 사실이었다.

요즘 들어 목이 죄여 오는 듯한 갑갑함이 심해지고 있었다.

휴대폰을 만질 때도, 잠이 들 때도, 노트북 화면을 볼 때도.

갑갑함은 그녀의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털어놓는 게 제일 쉬울 때가 있어요. 한번 말해줄래요?

어쩌면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니까요."

그제야 나현은 자신의 갑갑함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저 SNS 중독인 것 같아요."


"예전부터 제가 친구 SNS를 자주 들어가 보는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숨이 막혀요."

나현은 여자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 친구를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고, 단지 음... SNS에 올라온 사진을 자주 확인해요."

"왜요?"

"완벽한 사람을 따라 하면 저도 완벽해질 것 같으니까요.

그 애가 입는 옷, 헤어스타일부터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참고하고 따라 하면

언젠간 저도 그 친구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현은 여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왠지 창피하고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지수처럼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까 정원이 생기는 거 전부 봤어요?"

여자가 침묵을 꺠고 말을 건넸다.

"만약 도화지처럼 하얀 배경에 튤립을 그린다면, 그림 제목은 튤립정원이 되겠죠.

하얀 배경에 검은 색깔을 입히고 메밀꽃을 그린다면, 메밀꽃밭이 될 테고요.

델피늄 정원이 아니라."

나현은 여자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본인은 어떤 색깔이라 생각해요? 그 친구의 색깔 말고."

나현이 있는 정원은 델피늄이라는 푸른 꽃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색깔을 입힌다면 어떤 정원이 될까? 자신의 색깔을 찾는 건 어려웠다.

지수의 모든 것을 따라 하며 지수처럼 사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지수처럼 완벽하고 싶었기에 자신을 외면했다.

SNS에 자신을 가두고 타인의 삶을 살도록 강요한 결과는 불행이었다.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당신만의 색을 지워버리면, 결국 정원은 황폐해질 거에요.”
여자는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어떤 정원을 만들고 싶은지는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의 꽃밭을 따라 그릴 필요는 없잖아요?”

나현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림 속 정원의 꽃들 사이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본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았다.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색깔로 그림을 그린다면

방금 본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원이 생기지 않을까요?"


나현 자신도 누군가에게 동경의 대상인 예쁜 정원을 만들 수 있었다.

지수와의 비교는 결국 스스로를 힘들게만 했다.

완벽해 보였던 지수 옆에서 한없이 작아졌던 자신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진작 나만의 색깔을 찾았다면 나도 충분히 멋있고 빛날 수 있었다.

나현이 깨닫는 순간, 나현을 괴롭게 했던 갑갑함이 서서히 사라졌다.

정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싱긋 웃으며 나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시 새하얀 배경이 되었다.

나현이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전시회에 서 있었다.

손에는 푸른 델피늄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현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지수는 더 이상 나현의 기준이 될 필요가 없었다.

지수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그녀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했다.

여자의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부터 자신을 찾아가기로 했다.

나현은 그녀만의 정원을 가꿀 것이다.

천천히, 신중하게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자신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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