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과 에너지 -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1)
우리의 경험 상 열(Heat)은 온도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온도가 높은 물체는 열을 많이 발산하고, 온도가 낮은 물체는 열을 적게 발산하고 심지어 열을 흡수할 수도 있다. 열은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열을 쉽게 경험한다. 몸이 아플 때 열이 나면 이마가 뜨겁다. 체온계를 입에 물면 온도는 38도를 가리킨다. 찬 물수건으로 이마를 식히면 이마가 차가워지는 대신 물수건이 따뜻해진다. 열이 이마에서 물수건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다. 또, 더운물과 찬 물을 섞으면 미지근한 물이 된다. 더운물의 열이 찬 물로 이동하여 온도의 평형을 이룬다. 겨울철의 철봉은 맨 손으로 잡기가 거북할 정도로 차갑다. 사람이 차갑게 느끼는 이유는 열이 신체를 통해서 외부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철봉을 잡은 손바닥의 열이 철봉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물이 끓는 냄비를 맨 손으로 잡았을 때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냄비의 열이 손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뜨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온도를 느끼는 신체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을 하지 않겠지만, 사람이 차갑고, 뜨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신체의 피부를 통해 열이 빠져나가고,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있다. 나무도, 동물도, 사람도, 지구도, 태양도 모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원자의 집합체이다. 원자가 모여 단단하게 결합된 것을 분자라고 한다. 대개 물질의 특성을 보이는 것은 분자 단위부터다. 원자의 종류는 제한되어 있지만 (주기율표의 원소가 원자 단위의 분류이다), 분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소금 분자는 짠맛을 낸다. 설탕 분자는 단 맛을 낸다. 산소 분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동물의 호흡에 매우 중요하다. 산소, 질소와 같은 기체는 상온에서 분자의 형태로 공기 중에 날아다닌다.
위의 몇 가지 예시에서 경험하는 열의 본질은 분자의 운동 상태이다. 열과 분자운동을 동일하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열은 뜨거운 것이고, 분자운동은 뜨거운 것과는 상관이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 왜 열이 분자운동일 수밖에 없는지 확인해 보자.
열이 전달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가 전도(Conduction), 둘째가 대류(Convection), 셋째가 복사(Radiation)이다. 전도는 고체 물질에서 인접한 분자들 사이에 열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대류는 유체(액체 또는 기체) 분자들 사이에 열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복사는 두 물질 사이의 매개체 없이 한 물질에서 발생한 빛이 다른 물질에 영향을 주는 열전달 방식이다.
차가운 철봉을 잡았을 때 손바닥의 열이 철봉으로 전달되는 과정은 전도이다. 상대적으로 운동량이 큰 손바닥 분자들의 진동이 철봉 표면 분자들에 전달되어 그 진동을 증폭시키는 방식이다. 열에너지가 철봉으로 전달되면서 손바닥 분자들의 운동량은 감소한다.
겨울철 온돌 바닥의 열이 방 전체로 퍼지는 방식은 대류이다. 온돌 바닥과 맞닿은 공기 분자들의 운동량이 증가하고 분자 간 평균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밀도가 낮아져 상승하는 기류를 만든다. 상대적으로 온돌 바닥과 멀리 있는 천장 쪽 공기 분자들의 밀도가 높아지고, 밀도가 낮아진 더운 공기에 밀려 아래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렇게 아래로 내려온 공기 분자들은 온돌바닥과 만나 운동량이 커지고 밀도가 낮아져 다시 위로 상승하게 된다. 천장 쪽으로 올라간 공기 분자들은 열을 잃고 운동량이 작아져 분자 간 평균 거리가 가까워지며 밀도가 높아져 다시 아래로 하강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방 전체에 열이 전달되는 현상이 대류이다.
태양의 열이 지구에 도달하는 방식이 복사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공기도 물도 없다. 열은 빛의 형태로 지구에 전달된다. 적외선을 포함하여 가시광선, 자외선 등이 지구에 도달하는데 이 중 적외선의 비율이 50% 정도로 가장 높다. 우리가 태양빛을 따뜻하게 느끼는 이유이다. 빛에 대해서는 나중에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겠다.
먼저, 방 안의 온도를 재기 위해 수은 온도계를 손에 들고 있어 보자. 방 안은 산소, 질소와 같은 공기 분자들로 가득 차 있고, 수증기라고도 불리는 약간의 물분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분자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방 안을 날아다니며 서로 부딪친다. 온도계가 있다면 이 분자들은 온도계 표면에 부딪쳐 온도계 표면을 이루고 있는 플라스틱 (또는 유리) 분자들에 영향을 준다. 온도계 표면 분자들은 여기에 부딪치는 공기 분자들이 가진 운동에너지를 전달받거나 공기 분자들에 자신들의 운동에너지를 전달시켜 주어 그 진동 상태에 변화를 준다. 온도계 표면 분자들의 진동이 커진다면 이 것이 안쪽에 있는 수은 분자들의 운동을 더 활발하게 만들어 수은의 부피를 증가시킨다. 수은의 부피가 증가하면 온도계의 눈금이 움직여 올라가고 우리는 온도계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공기 분자들이 가지고 있던 열이 온도계에 전달되는 과정이다.
그림. 방 안의 온도계
다음으로, 열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의 고립된 공간에 온도계를 설치해 보자. 이 진공의 공간 안에는 어떠한 분자도, 원자도, 빛조차도 없다고 가정한다. 진공의 공간을 담고 있는 용기가 있다고 하자. 용기 벽면은 분명 온도를 지녔을 것이고, 이 온도가 오랜 시간 후 평형 상태에서 특정 온도를 유지한다면, 이 진공의 공간도 용기 벽면에 의해서 열을 품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용기 벽면으로부터 발생하는 소위 말하는 복사열의 실체는 사실 빛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빛조차도 없는 진공이라고 가정했으므로, 빛이 이 공간 안으로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
그림. 진공인 공간에 설치된 온도계
그림과 같이 진공 용기 안에 온도계를 설치한다면, 진공 상태를 만든 후에도 특정 온도를 유지할 것이다. 용기 벽면에서 방출된 복사에너지를 갖는 빛이 온도계 표면에 닿아 온도계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를 진동시키고(빛은 에너지이므로), 이 진동이 수은에 전달되고 수은을 팽창시켜 특정 온도를 가리키게 만든다. 지구에서 빛이 닿지 못하는 완벽한 진공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진공상태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튼튼한 용기가 필요하고, 어떠한 물질로 만들어진 용기도 분자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 원자는 끊임없이 진동하며 빛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밝은 빛만 빛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도 빛이다). 빛도 없는 절대 진공이란 우리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주의 어딘가에 물질도 빛도 없는 공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만이 가능하다. 이곳의 온도는 절대 0˚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온도계 자체도 분자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발생하는 빛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절대 0도에 가깝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고, 실제로 절대 0˚는 측정할 수 없다. 절대 0˚에 대한 설명은 뒤에 나올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공 용기 안에 설치된 온도계에 영향을 주는 열의 이동 방식은 복사뿐이다. 만약, 빛조차도 없는 진공상태인 우주 공간 어딘가에서 온도를 측정하였다면 절대 0˚ (-273˚C)에 가까울 것이다.
분자의 운동이 빠르고 강하면 열이 많다고 할 수 있고, 분자의 운동이 느려지고 약해지면 열을 빼앗겼다고 할 수 있다. 분자의 운동 형태는 고체, 액체, 기체 등 물질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고체 상태를 이루고 있는 물질의 분자들은 서로 매우 강한 인력으로 결속되어 있다. 따라서 분자의 운동이라고 하면 한정된 범위 안에서의 진동이 전부이다. 그 진동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열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체 상태를 이루고 있는 물질의 분자들은 서로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공간을 날아다닌다. 기체 분자들 사이에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고, 그 빈도와 강도가 열과 비례한다. 액체 상태를 이루고 있는 물질의 분자들은 고체 상태와 기체 상태의 중간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일부는 결속되어 진동하고 있고, 일부는 자유 운동 상태를 가진다.
열역학에서는 이와 같은 분자들의 운동에너지 총합을 내부에너지라고 부른다. 어떤 계(System)에서 일(Work)이 발생하지 않을 때, 내부에너지의 증가량은 외부에서 투입해 준 열량과 동일하다. 계(System)라는 것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 또는 물질들의 총 합의 개념이다. 그냥 내가 관심을 가지는 어떤 바운더리(Boundary)라고 생각해 두자.
그림. 고체, 기체, 액체 상태의 분자 운동
이제, 냉장고에서 얼음 한 조각을 꺼내어 보자. 얼음을 갖 꺼내었을 때는 매우 딱딱한 얼음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실내 온도가 높다고 하면 얼음 표면에 금세 물이 생긴다. 우리는 얼음이 물이 되는 과정을 "녹는다"라고 표현한다. 얼음이 녹는다는 것은 물분자의 진동이 계속 커져 결국에는 그 에너지가 분자 사이의 결속력까지 끊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얼음 덩어리를 하나의 계(System)로 볼 때 그 에너지는 계의 외부로부터 온 것이다. 얼음보다 높은 온도를 지닌 실내의 열이 얼음으로 옮겨온 것이다. 물론 녹는다는 것은 주위 공기 분자들이 끊임 없이 얼음 표면을 때려 얼음을 이루고 있는 분자에 운동에너지를 전달하는 현상이다.
이로써 열은 에너지의 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외부로부터 전달된 열에너지가 얼음 분자 사이의 결속력을 끊고 분자 각각이 따로따로 운동할 수 있는 동력을 준다. 얼음이 녹아서 만들어진 물을 그대로 놔두거나, 여기에 열을 가하면 물은 증발한다. 물이 증발한 상태를 수증기라고 부르며, 이 수증기의 양은 특정 공간의 습도를 결정한다. 수증기는 물의 기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수증기 분자들은 액체 상태일 때보다 훨씬 더 활발한 운동량을 가진다.
물의 분자식은 H₂O이다.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한 형태이다. 얼음과 물과 수증기의 상태들 모두 이 동일한 물 분자식을 갖는다. 단지 분자 간 결속력을 가지는가 분자들이 자유롭게 각자 운동 가능한가의 차이이다. 얼음은 수소결합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방법으로 연결된 물 분자들의 집합이다. 물 분자들이 수소결합을 이룰 때 육각형 모양으로 배치되고, 여기에 빈 공간이 만들어지므로 동일 질량의 물 보다 부피가 커진다.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고체일 때 부피가 더 커지는 것은 물의 경우만의 독특한 성질이므로, 모든 물질의 상태 변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동일 질량에서 부피를 크기 순으로 나열하면, 기체 > 액체 > 고체이다.
그림. 기체 분자 간 거리
기체 분자 간 평균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과학자들은 0˚C 1 기압 하에서 기체 1 mol 은 약 22.414 L 의 부피를 가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기체의 종류는 상관이 없다. 질소든 산소든 수증기든 어떠한 종류의 기체든 상관없이 그 부피는 0˚C 1 기압 하에서 22.414 L이다. 1 mol은 6.02 x 10^23 개로 정의하며, 이 것은 개수의 단위이다. 즉, 22.414 L 공간 안에 6.02 x 10^23 개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기체 분자들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대략, 28 x 28 x 28 cm 의 정육면체 공간 안에 기체 분자 1 mol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이 기체 분자들이 정육면체 공간 안에 균일하게 분포하여 서로 간 떨어져 있는 거리도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분자들 간 평균 거리 d는 d x (6.02 x 10^23)^(1/3) = (22.414 L)^(1/3) 으로 계산할 수 있다. 22.414 L = 0.022 m³ 이므로, d를 미터 (m)의 단위로 나타내기 위해서 이 식을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d x (6.02 x 10^23)^(1/3) = 0.022^(1/3)
d = (0.022 / 6.02 x 10^23)^(1/3)
= 3.318 x 10^(-9)
계산 결과, 0˚C 대기압 하에서 기체 분자들의 평균 거리는 약 3.3 nm (나노미터)이다. 참고로 1 nm는 머리카락 굵기의 십만분의 1 정도인,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매우 작은 크기이다.
열에너지가 투입되었는데도 온도의 변화가 없는 경우도 있다. 바로 상변화 과정이다. 상변화란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 등으로 물질의 상태가 변하는 과정이다. 이 상변화 과정에 투입된 모든 에너지는 분자들의 운동에너지를 높이는 대신 물질의 분자 간 구속을 끊는 데 사용된다.
그림. 물의 엔탈피-온도 그래프 (상변화)
위 그래프는 일정한 대기압 하에서 얼음에 열을 가했을 때 엔탈피(Enthalpy)와 온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주는 그래프이다. 여기서 온도가 일정한 구간이 상변화 구간이다. (1) 구간은 얼음에서 물로 변하는 구간이고, (2) 구간은 물에서 수증기로 변하는 구간이다. 이들 구간에서는 열에너지를 투입하면 온도 변화는 없고 엔탈피가 증가한다. 각각 얼음과 물, 물과 수증기의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한다. 각 상태의 물질들이 맞닿은 표면에서는 끊임없이 상변화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2) 구간에서 물은 에너지를 얻어 수증기로 바뀌고, 수증기는 에너지를 잃어 물로 바뀌는 현상이 지속되어 물의 질량 분포와 수증기의 질량 분포가 일정해진다. 서로 평형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에 약간의 열을 더 가하면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양이 조금 더 많아져, 물의 질량 분포가 조금 더 증가한 상태에서 또다시 평형을 이룬다. 여기에 열을 지속적으로 더 가하면 모든 물이 수증기로 변하고, 그 이후에 수증기의 온도는 올라간다. 엔탈피는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루겠다. 여기서는 물질이 가지고 있는 총 에너지 정도로 정의하고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