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과 에너지 -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마지막)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접근 방법이 있다. 바로 통계적 방법이다. 통계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머리를 감싸 쥐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개념만 살짝 맛보고 넘어갈 테니...
S = k_B In Ω
이 것이 통계적 관점에서의 엔트로피의 정의이다. 로그는 매우 큰 수를 작은 수로 변환시켜 주는 도구에 불과하니 너무 겁먹지 말자.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츠만이 제안한 정의로, k_B는 볼츠만 상수이다. 볼츠만 상수는 아보가드로수와 기체상수의 비율로 여기서는 그냥 상수 또는 정해진 값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중요한 건 자연로그 안의 값 Ω(오메가라고 읽는다)이다. 이 값은 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상태의 경우의 수를 말한다. 갑자기 입자들이 나온 이유는 이 식이 미시 세계에서의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입자는 물의 분자일 수도 있고, 다른 기체의 분자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입자들의 개수가 무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통계적 접근 방법이 유의미해질 수 있다.
두번째 사고실험을 해보자. 여기 진공인 A, B 두 개의 상자가 있다. 두 상자의 중앙을 연결하여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 통로를 통하여 양쪽 상자 안의 기체 분자들이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이제 10개의 기체 분자들이 이 상자 안에 배치되는 경우의 수를 계산해 보자.
그림. 상자 A, B와 기체 분자들
먼저, 상자 A에 10개의 모든 분자들이 모여있는 경우의 수는 1가지 밖에 없다. 상자 A에 9개, 상자 B에 1개의 분자가 배치될 경우의 수는 10가지이다. 1번 분자만 B로 가는 경우 + 2번 분자만 B로 가는 경우 + ... + 10번 분자만 B로 가는 경우이다. 상자 A에 8개, 상자 B에 2개가 배치될 경우의 수는 10개 중 2개를 선택할 경우의 수와 같고, 조합 공식을 사용하면 10 C 2 = 10! / (2! x 8!) = 10 x 9 / 2 = 45 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상자 A에 7개, 상자 B에 3개가 배치될 경우의 수는 10 C 3 = 10 x 9 x 8 / (3 x 2 x 1) = 120 가지이다. 조합을 계산하는 방법은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나머지 경우에 대해 유사한 계산을 하면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A : 10, B : 0 일 경우, 10 C 0 = 1
A : 9, B : 1 일 경우, 10 C 1 = 10
A : 8, B : 2 일 경우, 10 C 2 = 45
A : 7, B : 3 일 경우, 10 C 3 = 120
A : 6, B : 4 일 경우, 10 C 4 = 210
A : 5, B : 5 일 경우, 10 C 5 = 252
A : 4, B : 6 일 경우, 10 C 6 = 210
A : 3, B : 7 일 경우, 10 C 7 = 120
A : 2, B : 8 일 경우, 10 C 8 = 45
A : 1, B : 9 일 경우, 10 C 9 = 10
A : 0, B : 10 일 경우, 10 C 0 = 1
두 상자에 기체 분자가 배치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 중 반반씩 배치될 경우의 수가 가장 많다. 반반씩 배치될 경우의 수는 특정 상자에만 모두 배치될 경우의 수에 비해 252배 많다. 이를 확률로 바꿔 말하면, A, B 두 상자에 반반씩 배치될 확률이 A나 B 상자로 몰릴 확률보다 252배나 크다. 계산의 편의 상 단지 10개의 분자 개체에 대해 도출한 결과이다. 실제로 몰 (mol) 단위 기체 분자 개체에 대하여 계산을 해 보면 (1 mol = 6.02 x 10^23 개) 이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특히 A, B 두 상자에 반반씩 나뉘어 배치될 확률이 그 어떤 경우의 확률보다 커진다. 이 차이는 개체의 개수가 증가하면 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통계적 엔트로피 식의 Ω를 계산하였다. 계산에서 알 수 있듯이 기체가 한쪽 상자에 모이게 되는 경우의 엔트로피에 비해 반반씩 배치되는 경우의 엔트로피 값이 훨씬 크다. 처음에 상자 A에만 기체를 집어넣었다고 가정하면, 이때의 엔트로피는 계산에 의하여 0이다 (자연로그 안에 1이 들어가면 그 값은 0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체 분자들이 상자 B로 옮겨 가게 되고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되고), 마침내 상자 A, B에 균일하게 분포될 것이다 (엔트로피가 최대화된다). 이로써 통계적 접근 방법으로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엔트로피는 계가 가지고 있는 열이 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가능성이 높으면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이고, 그 가능성이 낮으면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이다.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전체 에너지 중 쓸모없는 에너지의 비율이 높은 상태이다.
위의 상자 예시에서, 기체를 상자 A에 몰아넣었을 때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라고 하였다. 이 상태에서는 열이 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 열의 실체는 분자 운동이라고 하였다. 상자 A에 갇혀있는 분자들은 더 넓은 공간을 향해 확산하려 한다. 상자 A 안의 압력이 상자 B 안의 압력보다 높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상자 B로 가는 통로에 바람개비를 설치하면 기체 분자들은 이 바람개비를 회전시키면서 상자 B로 이동할 것이다. 이 계 (System)가 일을 한 것이다. 평형 이후 두 상자 안에 있는 기체의 열에너지의 합은 처음 상자 A 안에 있던 기체의 열에너지보다 작을 것이다. 처음 상자 A 안에 있던 기체의 열에너지는 바람개비를 돌리는 데 사용한 에너지와 평형 이후 두 상자 안에 있는 기체의 열에너지의 합과 같아야 한다. 에너지는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상자 A와 상자 B의 압력이 평형 상태에 도달하여 동일해지면 더 이상 바람개비를 돌릴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상태가 이 계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된 상태이다. 평형이 이루어진 상태에서도 상자 A와 상자 B에서 분자 운동이 지속되므로 열에너지는 아직 존재한다. 평형 상태에 있는 기체의 열에너지를 빼앗으면 또 외부에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시스템에서 열에너지가 더 이상 일로 바뀔 가능성은 없다. 무질서도가 최대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에너지가 최대치에 도달했다는 의미와 같다. 그 쓸모없는 에너지의 실체는 열이다. 평형 상태에서 분자운동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추가 일을 얻고 싶다면, 진공 상태의 상자 C를 연결하고 그 통로에 바람개비를 설치하면 된다. 하지만, 상자 C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추가적인 에너지의 투입이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림. 두 상자 사이의 바람개비
대개 열(Heat)은 에너지의 손실로 나타난다. 백열전구에 전류를 흘리면 빛이 발생하는 동시에 뜨거워진다. 백열전구를 난로 대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백열전구에서 발생하는 열은 쓸모없는 에너지이다. 진공청소기를 돌리다 보면, 모터 부위가 따뜻해진다. 전기에너지가 모터를 회전시켜 동력을 얻는 과정에서도 열이 발생된다. 우리는 이 것을 열손실이라고 부른다. 마찰을 일으켜도 열손실이 발생한다. 우주 로켓은 대기권의 마찰만 없다면 더 적은 연료로도 동일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로켓은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열에 견딜 수 있는 특수 재질로 만들어야 한다. 마찰로 인해 발생한 열은 다른 쓸모있는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하고 바로 주변으로 사라진다. 물론 전기히터나 헤어드라이어와 같이 일부러 열을 발행시키는 사례도 있으나, 효율이 매우 안 좋은 경우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석탄과 석유를 태워서 열을 얻어낸다. 타기 전 석탄이나 석유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 있다. 고온의 열을 만들어 주면 쓸모 있는 일 (Work)을 얻을 수 있다. 석탄을 태워 얻어낸 화력으로 보일러 안의 물을 가열한다. 보일러 안의 물은 열 에너지를 받아 부피가 팽창하고, 증기기관 실린더의 피스톤을 움직인다. 우리는 추가적인 기구 설계를 통해 피스톤의 왕복 운동을 만들 수 있으며, 크랭크 축에 연결된 바퀴는 회전 운동을 하게 된다. 이 바퀴는 육중한 몸체를 가진 기차를 이동시키고, 물건과 사람을 먼 거리까지 운송할 수 있게 된다. 석탄의 열에너지(Heat Energy)가 기차를 움직이는 일(Work)로 전환된 것이다. 타고난 후의 석탄과 석유는 엔트로피가 최대화된 상태이다. 열이 일로 전환되었으나 엔트로피는 증가하였다.
열에너지 외에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생각해 보자. 수력발전을 예로 들면, 고도가 높은 댐에 채워진 물은 위치에너지를 갖는다. 댐의 수문이 개방되면 수천 톤의 물이 자유낙하를 하며 댐 아랫부분에 있는 발전기 터빈을 돌린다. 터빈의 회전 운동은 자기장 내에서 전기 유도를 일으켜 전류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에너지는 송배전 설비를 통해 각 가정으로 보내어지고, 거실의 형광등을 켜거나 청소기를 돌리는 데 사용된다. 물의 위치에너지(Potential Energy)가 터빈의 회전 일(Work)로 전환되는 케이스이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전기에너지의 형태로 사용되지만, 이는 단지 에너지 형태의 변화일 뿐 일(Work)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다.
위의 두 경우에서 공통적인 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1톤의 석탄은 화로에 던져져 불에 태워지면서 점점 재로 변해간다. 0.5톤의 석탄이 재로 변했을 때, 우리는 유용한 에너지의 50%가 쓸모없는 에너지로 변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재는 더 이상 열에너지 원으로서 효용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댐에 채원진 물의 50%가 방류되었을 때, 우리는 유용한 에너지의 50%가 쓸모없는 에너지로 변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류로 방류된 물은 더 이상 터빈을 돌릴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댐에 다시 100%의 유용한 에너지를 채우려면 태양이 다시 한번 역할을 해야만 한다. 열에너지로 지표의 수분을 증발시켜 구름을 만든 후 이 댐에 비를 뿌려 물을 가득 채워야 한다. 댐의 에너지를 유용한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 태양은 자체에서 생산해 내는 그만큼의 유용한 에너지를 쓸모없는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태양에서는 매 순간 엄청난 양의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열이 지구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 에너지로 인하여 식물은 광합성을 하고, 동물은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지구 대기에서 구름을 생성하여 필요한 곳에 비를 뿌리고 물을 공급한다. 최근에는 태양광 발전에 이용되어 인류에게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 하지만 이 핵융합 반응은 무한히 지속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태양에 존재하는 모든 수소가 헬륨으로 바뀔 날이 올 것이며,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별은 더 무거운 원자의 핵융합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이때가 태양이 더 이상 에너지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이다. 그날 이후 지구는 태양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되며 모든 동, 식물들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태양의 핵융합 반응에서는 수소 두 개가 합쳐져 하나의 헬륨이 되고, 이 헬륨은 두 개의 수소 질량의 합보다 약간 줄어든 질량을 갖게 된다. 이 질량 결손이 바로 에너지이며,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질량 에너지 등가식 E = mc² 만큼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우주가 품은 질량만큼 우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단지, 이 에너지가 일로 변환될 수 있는 쓸모 있는 에너지인가 아닌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태양과 같은 항성들의 핵융합 에너지는 쓸모 있는 에너지이다. 이런 형태의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우주 전체에 걸쳐 쓸모없는 에너지로 계속 변환되고 있다.
태양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이동 중이다. 우주 초기 빅뱅 직전의 엔트로피는 거의 0에 가까웠을 것이다. 빅뱅 이후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현재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주 전체의 평균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엔트로피가 무한대로 증가하면서 온도는 점점 0에 가까워진다 (여기서 온도는 절대온도이고 약 -273˚C를 절대 0도라고 하고 0 K 라고 쓴다. 0˚C는 273 K 이다).
절대 0도란? : 기체는 온도에 따라 부피가 달라진다. 그 이유는 분자들의 운동량 때문이라고 앞서 설명하였다. 절대 0도는 기체의 부피와 운동량이 0이 되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상태에서의 온도를 말한다. 기체는 부피가 0이 될 수 없다. 온도를 계속 내리면 액체로 상변화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체가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우리는 이 것을 이상기체라고 부른다) 부피가 0이 되는 이론적 온도를 계산해 낼 수 있다. 이는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상태이고 어떤 온도도 이 온도보다 낮아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온도를 절대 0도라고 부른다.
무한의 시간이 흐른 후의 우주를 한 번 생각해 보자. 태양과 유사한 또는 태양보다 훨씬 더 큰 모든 항성들은 핵융합 반응을 끝내고 점차 식어간다. 우주 어느 곳에서도 더 이상 쓸모있는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는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뀌었을 때, 더 이상의 분자 운동조차 없어진 상태가 되었을 때, 우주의 온도는 절대 0도에 수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 역사의 끝은 절대 0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