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오후 5시, 빛을 그리워하다.
‘다 잊어버리자.’
비행기가 타오위안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지금부터 타이완에서 시작되는 시간만 기억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다. 이혼은 그냥 인생의 코너를 돌다가 난 교통사고쯤으로 생각하자고 나에게 수없이 말하지만 아직은 담담할 수가 없다. 교통사고도 후유증이 있는 법인데 10년을 넘게 함께 산 사람과의 충돌은 오죽할까?
회사에도 사표를 냈다. 동료는 뭐 그렇게 할 것까지 있느냐고, 잠시 휴가를 내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고 싶지 않았다. 잠적하고 싶었다. 이혼이 별거냐고 했지만, 나에게는 별거였다. 엄마와 이혼하고 딸 하나를 키우느라 평생을 보내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 그 외로운 어깨를 기억하기에 어떻게든 살아볼 생각이었다. 나도 그런 어깨를 갖게 될까 봐, 아니 외로워질까 봐서. 그러나 아이가 생겼으니 이혼하자고 대신 아파트는 주겠다 했을 때 나는 두말없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아파트 때문 아니라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 없이 살기로 했는데 갑자기 아이를 갖고 싶었단다. 언제는 이 세상에 자신의 DNA를 남기고 싶지 않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나? 그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엔 연인에게로 갔다. 그는 바로 환승을 해버렸다. 어쩌면 결혼 내내 환승을 꿈꾸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지속가능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랑이었던 걸까?
“왜 하필 타이베이야? 마음을 달래려면 이탈리아가 좋지 않아? ”
나의 이혼 소식을 아는 동료가 물었다,
“이탈리아는 신혼여행으로 갔던 곳이야.”
“아, 미안. 그럼, 거긴 절대적으로 피해야지. 그럼 발리는 어때?”
“거긴, 전남편이랑 처음으로 간 해외 여행지.”
“오호, 그럼, 거기도 패스. 그럼 타이베이는?”
“...... 엄마가 거기 사셔.”
“엄마가 필요한 시점이지.”
동료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 시점에 엄마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상상을 깨고 싶지 않아서 그냥 웃기만 했다. 그녀는 분명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을 테니까. 듣기로도 그랬다. 매일 그녀의 엄마는 미혼인 딸을 위해 도시락을 싸주신다. 나는 이단으로 싼 그녀의 도시락을 볼 때마다 부러웠다. 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도시락을 그녀는 매일 먹는다는 사실이 부러웠고, 그녀의 도시락 반찬 안에 항상 들어 있는 노란 계란말이가 먹고 싶었다.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0살쯤으로 기억한다. 떠나기 전날 엄마는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었다. 싱크대 주변에는 깨진 달걀 껍데기가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엄마가 무지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빠랑 살겠다고 해서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깨진 달걀껍데기가 일그러진 엄마의 입처럼 보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를 잠깐 봤다. 10살 이후 처음 엄마를 본 것이라.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다가가기가 싫어서 가볍게 눈인사만 했다. 그 당시에는 나에게 엄마는 그저 조문객과 다를 바 없었다. 제법 유명했던 조각가인 아버지는 예술계 친구가 많았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친구들은 엄마와 친했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벗처럼 엄마를 반겨주었다. 나는 그런 이상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웃고 있는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저분은 누구야? 아버지 친구분이신가?”
남편이 들어서자마자 아버지 친구분들에 둘러 인사를 나누는 엄마를 보며 물었다.
“엄마야. 아버지의 전 부인.”
남편은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그날 엄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잘 지냈니’라고 말하며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엄마는 대답이 없는 나의 얼굴을 지그시 나를 바라보더니 남편에게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당황한 남편이 얼결에 엄마의 손을 잡으며 ‘장모님’이라는 소리를 했다.
타이베이의 시저스 호텔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아침 일찍 산책하러 나갔다, 호텔 주변에 아침을 사러 나온 현지인을 위한 조식집이 많았다, 나는 세븐 일레븐에서 아이스커피를 사고 현지인처럼 줄을 서서 조식을 샀다. 또우장과 대만식 달걀 팬케이크를 산 후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먹었다. 그리고 창으로 보이는 타이베이 거리를 보며 마지막으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엄마는 왜 하필이면 타이베이에 정착하기로 했을까?
나는 간단히 짐을 챙기고 지우펀으로 가는 버스를 검색했다. 그리고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마나 손으로 만졌으면 끝이 달았을까? 아버지는 대체 왜 엄마의 명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임종하기 직전까지. 유시모광(酉時暮光)을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의 황혼쯤으로 해석해야 하나? 혹은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 저무는 빛으로 해석해야 하나? 어쨌든 비슷할 거로 추측해 본다.
유시모광 <酉時暮光/Youshi Twilight>. 엄마가 지우펀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임종 전에 아버지는 나에게 명함 건넸다. 쪽지에는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나는 호텔 창가에 서서 타이완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헨델의 Passacaglia를 들었다. 엄마는 항상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쓸쓸했을까? 아니면 고요함 속에 빠져서 자신조차 잊고 있었을까? 묻고 싶었다. 왜, 아빠와 나를 두고 떠났는지. 내 슬픔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이제는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