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ard Slatkin -레너드 슬래트킨-
직접 만나본 지휘자 이야기를 풀어내는 순서는 당연히
‘내 개인적 호감도’이다. ㅎㅎ
함께 했던 유명한, 소위 말하는 네임드 지휘자를 이야기하자면 주빈 메타라던지 다니엘라 가티, 쿠르트 마주어, 다니엘 하딩, 정명훈 등등 많겠지만 내가 몸담았던 직장과의 합이 안 맞았건 가볍게 gig의 느낌으로 와서 차이나 머니를 쏙 벌고(?) 간듯한 지휘자는 굳이 글을 쓸 정도의 느낌은 아니기에 우선순위에서 아주 밀려날듯하다. 특히 주빈 메타 같은 경우는 연주 두 번 한 이후로 내가 주빈 치타라고 불렀을 정도로 무성의하고 여기에 온 이유가 명확히 보일만큼 실망스러웠었다.
그와는 반대로 큰 기대 없이 만났다가 너무 큰 감동과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던 지휘자들도 많은데 그중 특히 기억이 남는 분은 레너드 슬래트킨이다.
내가 공부했던 곳도 독일이고, 특히 NDR와 북부 독일 쪽 사운드의 정통 계보를 지닌 스승님 밑에서 배운 데다가 당당히 바그네리안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개인적 취향 때문에
프랑스, 미국 쪽에서 커리어가 많은 슬래트킨은 별 기대 없이 연말 호두까기 인형 전곡을 지휘하러 오는 one of them 지휘자 정도로 생각하고 첫 리허설에 들어갔었다.
나는 큰 범위로 봤을 때 러시안 스타일과 독일 스타일로 지휘자를 나누는데 슬래트킨은 전형적인 러시안 스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확한 비팅
명료한 지시
강력한 통제
요게 일반적인 내가 느끼는 러시안 스쿨인데 슬래트킨은 거기에 더해 매력적인 인간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호두까기 인형은 워낙 대중적이고 어렵지 않은 곡인데 갑자기 리허설이 잘 진행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자 슬래트킨은 지휘봉을 내려놓더니 “우리 리허설도 잘 안되니까 그냥 내 가족이야기를 들려줄게 “
로 시작하더니 정말로 음악과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ㅎㅎ 유대인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으며 부모님은 할리우드 현악 4중주의 멤버인데 나름 업계에서 유명해서 3-40년대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많은 녹음을 했다 등등 시작해서 구구절절 이야기를 몇 분쯤 했으려나.
“ 자! 이제 내 이야기는 한 것 같으니 너희들의 음악을 들려줘! “
하고는 리허설을 다시 시작했는데 그 순간부터 정말 귀신같이 합주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길 어떻게 해라 저렇게 하자 지시 몇 마디보다는 연주자들이 진심으로 집중만 하면 알아서 잘 흘러간다는 것을..:) 놀라운 순간이었다.
또 한 번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연주하는 당일의
general rehearsal 때,
“지금까지 우리는 조각을 잘 맞추었고 이젠 그것을 내가 흔들지도 몰라요. 나도 내가 본 공연 때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믿고 할게요. “라는 말과 함께
리허설을 마무리했고 정말 본공연 때 슬래트킨은 없던 짓(?)을 많이 했다. 디테일은 조금 떨어졌을지도 모르지만(아마도 악단의 한계였으리라..) 그야말로 splendid 한 경험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연주한 사골 라흐 2에 생명력이 불어넣어 지는 순간!
지휘자들은 각각 가지고 있는 ability가 다르다. 그들은 각자의 기술을 활용하여 때론 엄격하게, 때론 친절하게 연주자들을 대하는데 슬래트킨은 그런 인용술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비팅도 기가 막히게 주시는 분. 사견인데 비팅을 정확하게 주는 지휘자는 top 악단들과 잘 못 엮인다. 슬래트킨도 그런 이유로 현재의 포지션에 계신 걸 지도…
다음번엔 비팅은 안 좋지만 끝내주던 지휘자를 써봐야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