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세계를 이런 꼴로 만들어버린 걸까요..?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보는 세상

by 영화돋보기
누가 이 세계를 이런 꼴로 만들어버린 걸까요..?

12.jpg?type=w1 공감과 희생.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담겨있다고 과언이 아닐 평화주의, 생태주의적 관점이 이야기 속에 잘 녹아있는 영화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독만의 특색 있는 시선을 어떠한 태도와 마음으로 담아내는가를 주목합니다. 영화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만드는 창이고 이들을 다루는 감독의 태도가 스크린 너머로 매번 비쳐 보이기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매번 새로운 영화를 만날 때마다 어떤 태도로 작품을 만들었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제게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공감과 연민이라는 가치를 소녀 나우시카의 모험으로 올곧게 전하는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저는 쉽게 화가 차오르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일로 욱하나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표정과 말로 분노를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말과 행동은 하면 할수록 과해지는 것을 알고 이를 드러내는 것은 제게도 상처가 되니까요. 때문에 화가 날 때마다 차오르는 감정을 삼키고 발생한 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합니다. 사건과 상대방의 입장을 상상하다 보면 이내 사그라지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저만의 해소법인 것이죠.


그렇게 매번 마음속에서 화가 피어오를 때마다 갈등을 풀어가는 핵심이 결국 ‘공감’과 ‘연민’ 임을 느낍니다. 상대에 대한 공감이 없었을 때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게 될 때 공포와 분노가 우리를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상처받을 이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서슴없이 상대에게 공격적인 언사를 퍼붓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공감과 연민의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매번 느낍니다.


이러한 제 내면의 감정을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인간들과 자연과 관계를 통해서 갈등해소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마음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먼저 이 영화의 간단한 스토리를 소개하겠습니다.

13.jpg?type=w1 현대의 핵전쟁과도 같은 대전쟁 '불의 7일'. 온 지구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1천 년 전, 대전쟁 '불의 7일'로 인해 지구는 심각히 파괴되며 오염됩니다. 전쟁으로 오염된 지구는 공기 중으로 독을 토해내는 식물 '부해'가 발생하고 부해들이 내뿜는 유독한 포자로 인해 인류의 터전은 날이 갈수록 좁아져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거대 곤충 오무와 부해는 인류의 적이 되었고, 서로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서로를 공격하죠. 생존 경쟁의 결과,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바람계곡 민족과 같은 소수민족과 몇몇의 군사 제국들만이 남았으며, 이들 조차 생존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삼게 되었습니다.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생존을 위한 본능과 공포, 이기심만이 남게 되었죠.


그러나 바람계곡의 공주, 나우시카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버지를 아프게 하고 인류의 공간을 점차 밀어내는 부해와 오무에 대해 적개심보다는 궁금증을 가진 인물이죠. 그녀는 이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죠. 그러나 토르메카아 왕국과 같은 다른 제국들은 이해하기보다는 서로를 없앨 무기와 터전을 위한 전쟁만을 소통 방식으로 택합니다. 그 적개심 때문에 인류는 스스로 자멸했는데도 불구하고요.


적개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이들과 상대를 이해하려는 나우시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얽히고설키는 공존의 서사를 그리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jpg?type=w1 온몸으로 전하는 진심

공존을 전하는 이 영화에서 제가 주목한 장면은 크게 두 장면입니다.


첫째는 상처에 관한 장면들입니다. (유파를 상처 입히는 장면과 나우시카가 상처를 입는 장면들)


나우시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타인을 상처 입히는 장면은 제국들의 침략으로 아버지를 잃었을 때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은 그녀는 침략군을 정신없이 공격하죠. 그러다 싸움을 말리려는 마을 주민 유파를 상처 입히게 됩니다. 자신이 내친 칼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그녀는 자신의 공격성을 마주합니다. 분노의 결과는 가까운 이를 상처 입히고 이는 자신의 상처로 돌아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다음은 나우시카가 상처 입는 장면들입니다. 이 작품에서 나우시카는 안타깝게도 자주 다칩니다. 우선 나우시카가 항상 데리고 다니는 귀여운 여우 다람쥐에게 물리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경계하는 여우 다람쥐를 진정시키기 위해 물리더라도 화내지 않고 참습니다. 그리고 이내 여우 다람쥐에게 신뢰를 얻게 되죠. 그다음으로는 페지테의 왕자 아스벨을 구하기 위해 벌레들에게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장면 이후 토르키메카 왕국에게 적개심을 품었던 소년 아스벨에게 신뢰를 얻죠. 그다음은 다친 몸으로 물에 들어가려는 아기 오무를 막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도 흥분한 아기 오무를 막다가 총상을 입은 발의 상처가 더욱 커지게 되죠. 그러나 이를 통해 아기 오무에게 신뢰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그녀의 자기희생적 태도는 영화의 마지막. 인류를 멸하려는 오무 무리들의 폭주를 막게 됩니다. 그녀에게 상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언급한 상처에 관련된 장면들을 통해 이해와 희생의 태도. 즉, 공감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어린 소녀 나우시카가 오무의 침략을 막고 제국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던 이유는 상처 입더라도 전하는 진심과 그녀가 전하려는 진심에는 상대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 말이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표현된 상처에 관한 장면들은 우리에게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 공감의 가치를 전합니다. 위 장면들을 통해 분노는 사랑하는 이를 쉽게 상처 입히고 자신에게도 돌아온다는 사실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상대를 이해하고 아픔에 공감하여는 진실한 행동들은 분노를 해체하고 신뢰를 가져온다는 진실을 나우시카의 용감한 모험과 태도들을 통해 아름답고 다채롭게 전합니다.


15.jpg?type=w1 자신을 향하는 무기를 눈앞에 두고도 폭력을 선택하지 않는 그녀

마지막으로 제 마음이 크게 동했던 장면은 아기 오무를 구하기 위해 비행선으로 달려드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이 뛰어난 이유는 나우시카를 향해 총을 쏘려던 청년의 망설임을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은 청년의 시점 쇼트로 두 팔을 벌리며 다가오는 그녀를 담아냅니다. 그리고 영화는 가늠자에 비치는 그녀를 보며 망설이는 청년의 얼굴을 나우시카와 번갈아가며 비춥니다. 그 뛰어난 교차편집 장면 속 청년의 감정은 상대를 해칠 수 있다는 순수한 공포와 두려움이며, 이는 곧 그녀를 향한 순도 높은 연민일 것입니다. 청년이 나우시카를 쐈다면, 그녀는 분명 목숨을 잃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폭력이 아닌 대화를 택한 소녀에게 청년도 폭력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 또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지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게 폭력의 굴레가 아닌 상처를 주기를 망설이는 그 장면은 전율이 오를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녀의 희생정신도 감복스러웠지만, 진심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마주하는 청년의 시점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이 영화가 전하려는 순도 높은 진심이 느껴졌거든요.


전쟁이 낳은 적개심과 피의 폐곡선을 끊어내는 방법은 타인의 상처를 공감하려는 마음과 상처 입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연민이라는 것을 청년의 두려워하는 그 표정으로 느낄 수 있던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이는 전쟁과 혐오가 빗발치는 현재에도 큰 울림을 주는 마음과 태도가 아닐까 하며 자연스레 반성하게 되는 듯합니다.


16.jpg?type=w1 화내지 말아요 우리~

벌써 날이 무척 더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일에도 짜증이 솟구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화를 참고 삼켜봅시다! 그리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나우시카가 평화의 꽃을 황금빛으로 찬란히 피워낸 것처럼, 화를 뿜어내기 전에 한 번쯤은 삼키고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해 보려는 마음을 품어 보겠습니다. 나아가 상대에게 분노를 쏟기 전에 상처 입히는 것을 망설였던 그 청년처럼 연민의 마음을 품어봅시다.


그렇게 한 걸음 멈추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아플 상대에게 연민을. 나의 상처를 공감해 주었을 때, 사그라지던 분노를 되새길 수 있다면 우리 하루는 조금 더 평화로워질 테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8)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는 하야오만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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