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보다는 대화와 관심을

영화 <괴물>로 보는 삶의 태도

by 영화돋보기


과거 한창 유행했던 MBTI라는 심리검사가 있다. 테스트를 통해 도출된 4개의 영문으로 검사자의 성격 및 성향을 16개의 유형으로 간략히 판단하는 성격 테스트다. 근래에는 스몰토크를 위한 것으로 많이들 사용하는 것 같다. 이제는 문화가 되어버린 MBTI 검사를 보며 "내 학창 시절의 MBTI는 혈액형이었는데"라는 추억에 잠긴 감상이 떠오르는 동시에 "우리는 타인을 정량적으로 표준화하고 판단하길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함께 스쳐갔다. 고로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은 이러한 잔상과 같은 나의 생각을 날카롭고 선연하게 응시하고 있으며, 우리가 하는 단선적인 판단의 기저를 밝히는 마법과 같은 순간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인간의 행태를 탐구한다. 물론 <공기인형>, <세 번째 살인>과 같이 가족영화가 아닌 작품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공동체 속 인물의 관계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생각을 유도하는 연출이 가장 큰 특징이다.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과 같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감독님만의 자상한 태도, 잔혹한 인간의 내면을 차분히 응시하는 것이 특징이며, 언급했던 위 영화들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도록 한다. 그중 영화 <괴물>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선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지점은 각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하나의 건축물이라고 한다면, 각본은 건축 설계도와 같다. 그리고 이 영화의 설계도는 우리를 시선에 따른 오해와 착각,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오는 파장의 진폭을 심화하고 마음 깊이 새겨 넣는다. <괴물>은 요리와 미나토라는 두 아이의 학폭 및 실종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이 사건을 달리 바라보는 3명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미나토의 엄마, 두 아이의 담임 선생님 마지막으로 당사자인 아이들의 시선으로 사건이 3번 반복된다. 마치 <라쇼몽>과 같은 구조를 가진 이 영화의 플롯은 입장과 시선에 따라 얼마나 사건이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며, 동시에 꼼꼼한 연출을 통한 표현력이 <괴물>의 가장 빼어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때문에 증명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자기만의 상상도를 그려 타인을 판단한다. MBTI나 혈액형 테스트와 같이 단편적인 정보로 타인의 전체를 파악하려는 것 또한 함부로 개인을 판단하려는 행태가 매우 간소화된 형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를 보여주는 영화의 연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반복되는 주차장면이었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학폭 사실을 알고 학교에 수 차례 방문한다. 이때 영화 속 카메라는 주차하는 차 안의 그녀를 비춘다. 우리는 대게 주차를 할 때, 반사경을 통해 주차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반사경이 비추는 2차 공간 정보로 주차장을 인지하고 주차를 한다. 그리고 가끔씩 실수를 한다. 이 영화에서 사오리(안도 사쿠라)역시 주차에서 실수를 범한다. 주차 실수 장면은 시오리(안도 사쿠라)가 바라보는 이 폭력 및 실종사건의 오독을 잘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당자사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으며, 이는 실수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잘 드러내는 연출이었다. 주차도 실수하는데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실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이들의 사건은 사실 학폭이 아니라 사랑 이야기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며, 이 사건의 진실을 잡아낸 것은 어머니도 학교도 아닌, 담임이라는 사실이다.



폭력에 가담했다는 오해로 권고사직을 받은 아이들의 담임은 어떻게 진실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타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오리(안도 사쿠라)는 아이들을 덜 사랑해서 진실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아이들의 진실에 멀어졌던 것이다. 모성으로 눈이 가려졌기에 우리는 그녀와 함께 사실을 함부로 판단했고, 아직 젊은 선생님을 사회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입장에서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며 같은 실수를 다시금 범한다.


영화 속 우리가 사건의 진실과 멀어진 이유는 뭘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노력의 부재다. 우선 아이들의 엄마 시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만을 바라보다가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실수를 한다. 그리고 학교 또한 아이들의 사건 알려는 노력보다는 학교의 안위를 위한 쉬운 선택만을 한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 또한 같은 실수를 아이들에게 범하지만, 종국에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고민하다 두 아이가 사실 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의 과제물을 보며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와 오도의 굴레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응시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이들이 찬란히 빛나는 햇빛 아래서 기찻길 속으로 신나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없는 찜찜함이 공존하는 이유가 위와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 영화의 결말이 아이들의 죽음 또는 계속되는 삶 둘 중 무엇으로 보아도 참혹한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살았다고 하더라고 아이들은 오해와 무관심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그들만의 아름다운 저 우주 속으로 나아갔더라도 슬픈 여운이 짙게 맴돈다.


영화 <괴물>은 감독님 특유의 꼼꼼한 연출과 각본이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빙산의 일각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려는 우리의 행태를 선연히 밝혀주기 때문이며, 그 안에서 처연히 빛을 내는 눈동자는 무관심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한다. 타인에 대한 끝없는 혐오와 적대감, 무관심이 팽배하는 현실은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너무나 치명적이며, 이러한 사회적 행태는 나아가 우리가 사랑하는 가까운 누군가가 쉬이 상처 줄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차분히 이야기한다.


때문에 나는 MBTI 보다는 대화와 관심, 애정을 가지고 타인을 알아가려는 마음과 태도를 더욱 가져보려 한다. 무관심과 증오보다는 사랑이 우리의 삶을 더욱 따스하고 풍만하게 만들어줬으니까.



★★★★★(10)

교차하는 시선 속에서 선연히 빛나는 무관심이란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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