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룩백>에 담긴 꿈의 뒷모습
내가 영화 글을 쓰는 행위를 이어가는 이유는 다양한 형태로 삶을 투영하는 영화들을 보고 하는 자기반성이자, 순도 높은 고백들이다. 그러니까 내게 영화를 보고 글을 적는 이 모든 순간은 우연히 만난 영화가 마음에 충돌한 아름다운 일순간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만난 영화 <룩백>은 거대한 운석이 충돌하듯. 내 마음에 부딪혀 사랑에 빠지게 해 주었다. 그렇게 이 영화가 단 58분 만에 나를 사로잡았던 이유는 꿈의 또 다른 의미와 영화만이 가능한 시간의 마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영화 <룩백>은 꿈과 시간에 관한 영화다. 대게 꿈을 떠올렸을 때 무엇을 연상할까? 직업?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웃는 모습?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이상향? 무엇이 되었건 간에 우리는 손에 움켜쥘 수 없는 미지를 향해 속절없는 시간을 보낸다. 이처럼 꿈에 관해 다소 회의적인 내게 영화 <룩백>은 삶의 반짝임과 꿈의 뒷모습을 시간으로 아름답게 채색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의 주인공 후지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녀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자부심을 동력으로 살아왔던 후지노. 그녀는 매주 교내 4컷 만화 연재를 이어간다. 그림에 관해서는 우월감을 느끼던 소녀는 또 다른 연재자 쿄모토의 그림을 4컷 만화로 우연히 접하게 된다. 그리고 교내 신문에 게재된 쿄모토의 4컷 만화를 본 후지노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낀다. 나름의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졌던 그림 실력이 쿄모토에 비하면 어린아이 낙서와 다를 바 없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던 이유를 반추해 보면, 열등감, 자존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촉발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 속 후지노 또한 쿄모토의 그림을 보고 큰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도저히 어린아이의 그림실력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쿄모토의 그림을 본 후지노는 2년 간 그림공부에 매진한다. 그리고 6학년이 되던 어느날 교내 4컷 만화에서 다시 만난 코묘토의 그림을 본 후지노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벽을 다시금 느끼고 만화가의 꿈을 포기한다. '여긴 나의 세계가 아니구나' 하며 펜을 놓고 일상을 살아가던 후지노는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달해달라는 담임의 부탁에 못 이겨 쿄모토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쿄모토는 4컷 만화 속 세상처럼 대단한 존재는 아니었다. 2년 간 후지노를 열등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그녀는 그저 세상이 두려워 집 안에서 묵묵히 펜으로 시간을 그려냈던 수더분한 소녀만이 눈앞에 서있었다. 게다가 수 없이 그림을 그려도 도저히 넘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가 내 만화의 엄청난 팬이라는 사실에 안심한다. 얼굴 없는 경쟁자가 오랜 팬이란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금 만화가의 꿈을 꾸게 하는 새로운 동력원이 돼주었다. 모두가 후지노에게 회의적이더라도 교모토만은 그녀를 인정해주고 애정과 인정을 건네는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그녀들이 달려갈 수 있도록 지탱해 준 것은 서로의 존재였다는 사실이 나를 헤어 나올 수 없는 감동의 소용돌이로 빠지게 만들어주었다.
이 작품이 표현하는 꿈의 실체는 한 개인의 이상향이 아니라 지향점을 위해 묵묵히 쌓아 올린 시간 그 자체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동력원이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누군가라는 것이다. 고로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두 주인공의 꿈은 서로가 함께였기에 만들어졌고 좌초되더라도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그녀들이 만화가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뛰어드는 모든 순간들을 몽타주 기법과 두 소녀의 우정과 사랑의 결들로 소묘해 낸 것이 이 작품의 빼어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적시에 맞는 앵글쇼트, 감동적인 음향 연출의 우수함은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나다.
<룩 백>의 가장 뛰어난 장면들을 꼽으라면 시간을 함축한 몽타주 장면들과 4컷 만화가 상영되는 순간들이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분들은 없을 듯하다. 이 영화가 단 58분이어도 감정의 농도가 짙은 까닭은 꿈을 향해 노력을 쏟아내는 뒷모습을 시계열로 아름답게 함축하여 편집한 몽타주와 4컷 만화 위에 여린 애정과 희망이 담뿍 채색되어 재생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이 작품은 짧더라도 우리에게 어떤 작품보다 깊고도 농도 짙은 여운을 마음에 새겨 넣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해석의 여지로 남겨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극 후반이다. 서로가 장난으로 그렸던 4컷 만화가 닫힌 문 턱 틈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가정법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모호함을 전하는 이유는 이 애니메이션이 만화를 위한 만화이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의 오프닝, 하늘을 활공하던 카메라는 책상 위 후지노가 그린 4컷 만화로 점차 줌인하고 이내 후지노의 조악한 그림체가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된다. 그리고 극 후반 쿄모토의 죽음 이후, 후지노가 후회하며 찢어냈던 네 컷 만화가 문 틈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내 쿄모토의 4컷 만화가 다시금 상영된다. 그 내용은 둘이 만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4컷 만화 상영이 끝나고 카메라는 절망한 후지노를 다시 비춘다. 4컷 만화 속 내용은 쿄모토의 만화에 후지노의 상상이 들어간 허구라는 말이지. 만약 내가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상상.
만화와 영화는 언제나 허구이다. 허구이기에 추억을 되새기고 기억들 재조립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서로를 만화와 이야기로서 기릴 수 있다. 때문에 다소 모호하다고 여겨지는 가정법과 현실을 넘나드는 후반 시퀀스는 후지노가 쿄모토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쿄모토의 뒷모습이 되어주었던 후지노의 싸인이 그려진 옷과 후지노 뒷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것으로 이를 다시금 각인한다. 내가 너의 뒷모습이 되어주었노라고.
영화 <룩백>의 시작과 끝은 주인공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하고 끝맺는다. 오프닝과 엔딩이 같은 구도로 그려져 끝맺은 이유는 이 작품에서 인물의 표정보다 훨씬 뒷모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제목도 룩 백(LOOK BACK)이니까. 때문에 이 작품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 올라가며 보여주는 후지노의 뒷모습은 편집되지 않고 하루 전체를 천천히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따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계속할 수 있던 이유는 그녀가 여전히 등이 되어 주었다는 것이니까.
★★★★☆(9)
나의 뒷모습이 되어준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