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에다 히로카즈의 스산한 가족화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2008)
0. 안녕하세요 영화돋보기입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작품은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8년作 <걸어도 걸어도>입니다.
1. 이 작품은 <어느 가족>과 함께 많은 분들에게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정점 또는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가족이란 공동체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감독만의 인사이트가 돋보이는 것을 물론이며, 드라마를 서늘하게 다루는 연출과 가족 간의 불편한 심리를 포착한 각본 또한 매우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가족관계에 담긴 묘한 심리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서늘한 연기가 우리를 움찔하게 하기에 더욱 많은 분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 속 정서는 한국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2. 그럼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 오랜만에 연출적으로 톺아보겠습니다.
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늘 그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
실제 가족은 마냥 아름답지 않아
일반적인 가족영화라고 한다면 할리우드의 가족영화를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의 가족영화는 사춘기의 아이들, 소원해진 부부관계와 같이 가족 속 갈등을 이해와 아름다운 화합을 통한 관계의 회복을 다룹니다. 그러나 고로에다 히로카즈가 바라보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조금 뒤틀려있습니다.
감독의 작품 중 <아무도 모른다>는 버려진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어느 가족>은 실제 가족이 아닌 대안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작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가족은 혈연만이 아니라 함께 시간과 애정을 쌓아 만드는 것이라는 큰 울림을 전하죠.
고로에다 히로카즈의 정점이라는 불리는 이 작품에서의 가족은 애증의 존재입니다. 사랑하지만 그만큼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실증 내는 애증의 관계죠. 대표적으로 성장한 아이들과도 살가운 말 한 번 건네지 못해 겉도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가족들의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으며, 가시 돋친 말로 표현하는 어머니, 자존심 때문에 핑계와 거짓말로 부모를 속이고 제대로 된 효도 한 번 못하는 아들 등 여느 가족에나 있을 수 있지만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낯부끄러운 감정까지 모두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가족 간의 갈등을 보며 공감과 반성을 하게 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 있지만, 때로는 가장 멀고 어려운 존재이니까요. 어른이 되어도 친해지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서먹함, 어머니에게 못 해 드린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와 효도, 형제들에게 살갑지 못하고 항상 투닥대던 태도 모두 말이죠.
그렇게 가장 애착하는 관계 역시 가족이지만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존재도 가족이란 존재고, 항상 진심으로 다가가려 하면 항상 한 발자국 늦어 버리고 마는 그런 존재.
고로에다 히로카즈가 담아낸 가족은 그런 관계였습니다.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 카메라가 비추는 스산한 가족화 (카메라로 전하는 자전적인 시선)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점은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카메라의 화자는 철저한 관찰자 시점에서 요코야마 가족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프레임에서 공간을 많이 둔 ots이나 마스터 샷의 사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죠. 왜 이 영화는 주요 화자를 정하지 않고 관찰자 시점에서 만들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관객에게 가족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감독은 제가 생각하는 가족의 실제 모습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모습은 어떠신가요?라고 건네는 말 같았습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철저히 타자화하여 관찰자입장에서 관람하도록 하며, 이는 곧 우리의 자조적인 감상을 유도하니까요.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의 촬영은 걸출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동시에 마음이 아려오게 합니다. 나의 가족 또는 내가 꾸린 가족의 모습에서 나의 행동은 사랑하는 본심을 숨기고 거짓과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었는지 말이죠.
위신이 중요한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어디에나 있으며, 가족의 검붉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웃는 얼굴로 헌신하는 어머니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죠.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진 불만과 바람, 자식이 부모에게 바라는 애정과 일정한 거리감까지 모두 관찰자 입장에서 모두 비추기에 나는 어땠는지 성찰하도록 만드는 촬영이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과 연출 : 두 모자의 발걸음, 계단을 오르는 부모의 뒷모습
왜 이 영화는 걷는 장면을 자주 보여줄까요?
이 영화에서는 계단과 언덕을 오르내리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길과 계단은 대게 삶을 상징합니다. 오르고 내리는 삶의 굴곡에서 우리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힘들다며 주저앉기도 하죠. 이 영화는 단 이틀과 미래의 한 장면만을 담고 있지만, 오랜 세월을 함축하는 동시에 계속되는 삶의 느낌을 전하는 주는 이유는 함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계속적으로 비추기 때문일 것입니다.(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의 엔딩도 그러한 느낌을 주니까요.)
이 영화에서 제가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과부로 시집온 유카리 모자(母子)와 이제는 할머니와 아저씨가 돼버린 토시코와 료타 모자가 함께 성묘를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나누는 대화는 너무나 불편한 내용들이죠.
혹시라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 미리 헤어지라는 어머니와의 대화, 시댁에 와서 아들에게 사별한 남편의 산소에 함께 가자는 대화를 나누는 유카리 모자를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아들과 엄마와의 대화는 항상 거리감이 있습니다. 아들은 매번 퉁명스럽게 쏘아대고 엄마는 매번 너무 가깝게 다가서죠. 대사의 내용은 불편한 이야기뿐이었지만, 이 두 모자의 모습에서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엄마와 아들은 어디에서나 항상 저런 관계겠구나 하면서요. 한 번쯤은 어머니에게 살갑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참고로 어머니가 죽은 첫째 아들에 대해 독백처럼 읊는 장면은 숨을 죽이고 보게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모성은 따뜻한 모습이지만 증오와 복수심이 섞인 서슬 퍼런 감정이 담긴 그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습니다.
총평 : 진심에서 항상 한 발씩 늦고 마는 가장 가깝고도 먼 공동체 가족
이 영화는 가족 간에 생기는 낯부끄러운 감정을 담아내는 동시에 매번 엇갈리는 가족 관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음 설에 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엇갈려 이젠 1년에 한 번씩만 오자는 자식들. 집을 떠나는 버스에 타서야 떠오른 스모선수의 이름. 면허를 따 함께 놀러 가자는 어머니와의 대화,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에 가자는 약속까지. 어떤 약속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죠. 삶은 계속되고 부모님의 남은 시간과 자식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니까요.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하여 진심과 매번 엇갈리는 것을 볼 때, 늦게 도착하는 우편과 같은 관계가 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항상 원하던 시점과 다르게 한 발씩 엇갈리고 마니까요.
그럼 영화 <걸어도 걸어도> 추천드리며 리뷰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9)
고로에다 히로카즈의 스산한 가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