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2025
1. 안녕하세요 영화돋보기입니다. 이번에 리뷰할 작품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프랑켄슈타인>입니다.
2. 영화 전반적으로 풍귀는 고전영화의 정취, 현대적으로 해석된 설화를 보는듯한 느낌, 마치 미술품을 보는 듯한 황홀한 미장센들,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까지. 훌륭하고 아름다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극장에서 더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현재는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4. 할 이야기가 많으니 각설하고 바로 리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5.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독에 유의해주세요.
6. 스포일러 없는 종합평은 맨 아래 단락을 먼저 봐주세요.�
영화 외부에서 :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재해석
우선 영화 외부적인 이야기를 가볍게 해보려고 합니다. 깊숙한 해설과 내부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3번째 단락부터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재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하여, 현재의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를 만든 동명의 영화 1931년作 <프랑켄슈타인>까지. 이후 수많은 소설과 영화와 콘텐츠를 탄생시켰죠. 이제는 핼러윈과 공포영화의 고전적인 크리쳐로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작품이 어떤 포지션을 잡고 있는가?' 겠지요. 기본적으로 이야기와 이미지는 원작소설에 충실하되 크리쳐의 모습은 익히 알던 모습(맨 오른쪽 사진)은 아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주목할 지점은 '감독은 왜 새로운 모습의 크리쳐를 만들었는가.' 일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도 후술 하겠지만, 전쟁 속 인간의 본성을 보다 잘 그려내기 표현하기 위해 익히 알려진 모습에서 벗어난 괴물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짜깁기되어 만들어진 생명체니까요.
영화 외부에서 : 기예르모 델 토로의 부자 2부작. <피노키오>, <프랑켄슈타인>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부자(父子) 2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독의 다른 영화에서도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성을 자주 드러내왔으며, 영화의 주요 곁가지로도 부자(父子)의 설정을 가져왔었지만. 이렇게 메인 플롯으로 설정하지는 않았었죠.
부자 1부인 전작 <피노키오>는 아들을 잃어 피노키오라는 생명체를 탄생시킨 제페토와 살아 숨 쉬는 순수한 나무인형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작품 또한 원작에 충실한 동시에 <프랑켄슈타인>과 매우 큰 유사성을 지닌 작품입니다.
우선 해(sun)와 아들(son)을 활용한 비유, 아버지와 아들, 창조주와 피조물, 예수와 인간을 빗댄 표현이 두 영화에서 자주 표현되고 있으며, 크리처(피노키오, 프랑켄슈타인)의 순수성과 영원히 삶을 살아가는 영속성, 두 영화의 결말이 동일하다는 점까지. 두 작품은 아주 내부적으로 밀접한 작품이죠.
두 영화의 공통점이 내포하는 의미는 부자관계에 대한 애증과 삶에 대한 고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버지와 아들은 친밀하기 힘든 관계입니다. 프로이트의 유명한 심리학 용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창조해 낸 관계가 바로 부자(父子) 관계니까요. 델 토로 감독은 이 관계에 대한 집착 수준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영화는 물론이거니와, <프랑켄슈타인>과 <피노키오>에서는 메인 플롯으로 끌고 올 정도니까요.
두 영화에서 아버지는 모두 신이 피조물을 창조해 내듯, 본인의 결핍으로 인해 아들(크리쳐)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어리숙하고 순수한 존재인 아들을 아버지는 이해 못 하고, 아들 또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죠. 그렇게 서로 미워하지만. 끝끝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야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관계를 그리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창조주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거친 삶의 풍파를 주었지만, 계속되는 삶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두 영화(<피노키오>와 <프랑켄슈타인>)에서의 결말이 같은 것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배에서 벌어지는 세 명의 이야기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 작품의 구조는 총 3부로 1857년을 배경으로 '서막', '빅터의 이야기', '피조물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는 엔딩 시퀀스까지 합하면 4부 구성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원작 소설과 유사하게 타인이 빅터와 피조물 사이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설화의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탐욕으로 누구보다 괴물 같은 인간 빅터의 이야기를 1부에 배치하였고, 괴물이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괴물 피조물의 이야기를 배치하여,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에 대해 탐구하고 있죠. 또한 설화의 방식의 전개로, 마치 구전 설화를 듣는 듯한 장르적 상상력을 크게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중 제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 설정이었습니다. 두 인물의 이야기가 밑바닥이 얼어붙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배 위에서 벌어진다는 점. '선장-선원', '빅터 프랑켄슈타인-크리쳐' 간의 유사성 때문에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우선 배는 종교에서는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담고 있는 노아의 방주가 대표적이죠. 이 영화의 이야기가 아프더라도 계속되는 삶에 대한 예찬을 전하고 있기에 갈등을 해소한 이들이 새로운 탄생을 뜻하는 배 위에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선장-선원'= '빅터-크리쳐', 관계의 유사성입니다. 선장과 선원은 명령을 하고 이를 따라야 하는 종속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전통적인 아버지와 유년기 아들과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죠. 그리고 선장과 선원과의 관계는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빅터와 크리쳐와의 관계와도 자연스레 등치 됩니다. 이 영화의 결말이 부자관계의 회복을 담고 있듯, 엔딩 시퀀스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웃으며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관계 회복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보이기에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공간적 배경과 관계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하며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삶의 끝에서 부자가 관계를 회복하고, 새롭게 태어난 이들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에 이야기의 구조나 배 위에서 펼쳐지는 설화라는 설정을 통해 매우 잘 짜인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야기 : 인간이 되고픈 괴물, 괴물이 되고픈 인간.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익히 알고 있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그 누구보다 천재적이지만, 오만한 외과의사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결핍 해소를 위해 크리쳐를 창조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크리쳐와 빅터 프랑켄슈타인 간의 갈등을 그려내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두 인물의 관계를 부자(父子) 관계로 해석하고 있죠.
이 영화의 메인은 부자관계의 회복을 그리고 있지만 다른 층위로 보아도 재미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진정한 인간성에 대한 탐구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에서 그리는 인간성은 우아함과 따스함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유사한 영화로 <셰이프 오브 워터>, <판의 미로>와 같은 작품이 있겠네요.
그의 영화에서 크리쳐는 장르적인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진정한 순수와 인정, 배려는 외양이 아닌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크리쳐와 인간의 대비를 통해 그리고는 합니다.
이 영화 2부 피조물의 이야기에서 그려지는 크리쳐의 모습은 외양은 끔찍할지라도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어느새 그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더군요. 이에 반해, 1부에서의 빅터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끔찍한 인간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상처를 죽은 이를 되살리겠다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죽은 이를 살린다는 생각으로 그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된 후,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신나게 조각내어 조립하는 크리쳐를 만드는 순간은 너무나 끔찍한 장면임에도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천진난만하게 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감독은 그의 오만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매번 비춥니다. 거기서 우리는 오롯이 호기심과 지적탐구를 위해 움직이기에 책임감과 윤리따윈 져버린 괴물의 모습을 비춰보이죠.
이렇게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의 크리쳐와 인간 간의 대비를 보는 재미도 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크리쳐의 상처의 위치와 모습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자세히 본다면 더 흥미로우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쟁 속에서 피어난 생명, 죽음을 갈망하다.
이 영화의 배경은 1857년입니다. 이는 크림전쟁의 시기(1853~1856)와도 대략적으로 맞물립니다.
델 토로 감독의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시대 또는 전쟁을 배경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시기를 영화의 배경으로 끌고 와서 인간성을 관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시기는 전쟁이니까요. 또한 전쟁은 인간의 도덕성이 바닥을 치는 시기이기에 이 영화에서 그리는 인간성에 대한 탐구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죠. (<판의 미로>, <악마의 등뼈>는 스페인 내전, <나이트 메어 앨리>는 2차 세계대전, <셰이프 오브 워터>는 냉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전쟁은 크리쳐의 탄생 기원을 그리는 동시에 자원으로 쓰여 버려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부품처럼 죽어간 인간들로 만들어진 이름 없는 크리쳐는 세상에 대해 알아갈수록 죽음을 원합니다. 흉측한 외모를 가진 그에게 삶은 너무나도 외로웠으며, 천대받는 고통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폭발하는 성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이 죽었던 전장 속에서 걸어 다니는 크리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그 자체 만으로도 영상미가 뛰어나 보기 좋기도 했지만, 해골들이 굴 다니는 곳에서 죽음에서 태어난 이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미술작품과 보는 느낌을 주어, 묘한 감정이 들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는 직접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총평 : 추천합니다.
이 영화에서 깊게 고민하고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는 장면은 많습니다. 크리쳐가 창조되는 모습의 형상, 빨간색과 어머니, 해와 아들, 엘리자베스와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어머니. 원작과의 유사성과 차이점 등 곱씹을 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이야기만을 따라가더라도 너무나 재밌고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동시에 무엇보다 아름답고도 슬픈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정돈된 고전 설화를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보는 내내 너무나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미녀와 야수와 같은 작품이나 감독의 전작 <셰이프 오브 워터>를 재밌게 보셨다면 너무나 즐겁게 보실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이기에 조금 고어한 장면이 있기는 하기에 주의가 필요하긴 합니다만, 못 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하반기 넷플릭스 개봉작 중 가장 눈 여볼 신작이니 꼭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극장에서 못 본 것이 아쉽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8)
삶이 그대를 조각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