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No.15
살그머니 세상이 내게 들려주는 신비로운 곡조임을 깨닫게 됐다.
살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참 많음을 몸소 체감했다. 눈앞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들이 내 앞에 마주했고, 월정리 해변에 서있을 때처럼 동일하게 세상은 내게 손길을 내밀었다. 이에 매료된 내가 오직 할 건 이 땅의 곳곳을 자유롭게 누리며, 여김 없이 영감들을 찾아 담아내는 것이었다. 맛있는 걸 마음껏 먹을 때나, 물속에서 유영하고 있을 때나, 차분히 자리해서 사색하고 있을 때에도. 분명한 건, 세상은 이곳까지 온 나로부터 내심 이를 바라고 있어, 이에 합당한 장소인 푸꾸옥으로 나를 초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심하지 말고, 기쁘고 상쾌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베트남에 있는 동안 우리는 "Grab"이라는 어플을 아주 애용했다. 낯선 땅에서 모든 곳을 도보로 누리기에는 며칠간 머무는 입장에서 시간이 모자를 뿐더러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으니, 이 어플로 과감히 택시를 호출했다. 더군다나, 먼 거리를 이동해도 가격이 꽤 착하기에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한 우리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바로 숙소로 가 짐으로부터 몸을 가볍게 하는 일인지라, 곧바로 예약해 둔 호텔로 이동했다.
확실히 이곳은 대도시에서 풍겨지는 분주한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신호에 맞춰 정직하게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도로를 보면 차들이 띄엄띄엄 비쳤다. 운전하는 기사님도 마치 탑승한 우리에게 전적으로 맞춰서 불편하지 않게 운전하는 듯했다. 물론, 기본요금 외에 팁을 따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만하기도 했지만, 탑승자 입장으로는 질 좋은 서비스를 받는 거니 만족스러웠다.
마침내 우리는 이틀 동안 머물 숙소에 도착했고, 예약 처리를 위해 카운터 앞으로 갔다. 아침 일찍 도착해 입실 시간까지 세 시간 넘게 남았지만, 짐은 맡겨둘 수 있어 몸이 가벼워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렇다면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했고, 곧바로 떠오른 건 '마사지'와 '점심 식사'였다. 먼 길 눕지도 못하는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몸은 몹시 뻐근했고, 호찌민시에서 여기로 오기까지 음료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고픈 상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나 SW(친구)나 조금의 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그런 걸까. 일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여유 속에 유영하고 싶었던 걸까. 확실한 건, 둘 다 카운터 입구 반대편에 펼쳐져 있는 푸릇한 경치에 시선을 온전히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참 아름다운 곳이라, 비치는 모든 것들이 따사로운 햇볕아래 가장 뚜렷한 색채를 선보이고 있었다. 지극히 푸릇한 하늘과 바다, 햇빛에 발갛게 달아오른 모래사장, 곳곳에 자리하는 야자수들과 벤치들까지. 통상적으로는 이를 보고 가히 휴양지다운 면모라고 할 수 있겠고, 한참을 그 감흥 속에 충분히 곳곳을 둘러보게 됐다. 특별히 이곳 해변은 심히 넓은데 굵직한 파도 없이 잔잔한 물결을 펼쳐내고 있어, 우리 또한 살며시 머물 수 있었다. 당장 꼭 수영을 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뛰놀지 않더라도, 이 물결처럼 차분히 존재하는 것도 또한 어울리는 듯했다. 그렇게 있어보니 사색을 일깨우는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살그머니 세상이 내게 들려주는 신비로운 곡조임을 깨닫게 됐다.
이 신비로움의 인트로는 '강렬한 첫인상'에서 비롯됐다. 모든 게 다채로운 빛깔로 찾는 자들의 발걸음을 이끌어내, 감동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그리 표현할 수 있겠다. 이어서는 '하모니를 이루는 조화'가 그 감흥의 뒤를 따라왔다. 그 어느 것도 어긋나게 보이지 않고, 한 폭의 완성된 그림을 연상케 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겹겹이 들려오는 바닷소리는 마치 여행객인 내게도 그 안에 함께할 수 있다고 속삭이듯 들려줬다. 온전히 초대받은 기분이 이런 거임을 체감했고, 무엇을 하든 이 또한 하모니에 조화롭게 일조할 수 있구나 싶었다. 더 나아가, 후렴구로는 '각각의 소중함'으로 곡조의 리듬을 완성시켜 줬다. 지금 있는 자리가 곧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곳이며, 앞서서 뽐내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자유로이 거하기에 충분하다는 걸 바라보게 됐다. 어쩌면 세상은 예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이 곡조를 이어오려고 온 마음 다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이게 곧 세상이 일궈가고 지켜가는 아늑한 공간의 원형인 걸까.
중요한 건, 오늘 하루 가운데 이 신비로운 영감을 더욱 누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방금까지는 찬찬히 자리에 머물며 감각을 깨워뒀으니, 일단 마사지로 굳은 몸을 풀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맛있는 밥 먹고 와서는 마음껏 물속을 거닐면서 조화롭게 일조해 보기로 했다. 한편으로 지금의 어두운 옷차림에서 이곳에 걸맞게 환복 할 필요가 있었다. 벌건 대낮에 그림자가 된 기분이랄까. 우스갯소리로 SW(친구)가 던진 한마디가 웃음을 선사해 주기도 했다.
"지금 옷차림은 분명 호찌민 룩이야."
끝으로, 아직 베트남 여행의 도입부일 뿐인데 세상은 내게 얼마다 귀한 영감들을 선보이려나 궁금해졌다. 동시에 내 안에 피어난 기대들이 전보다 신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받아왔던 순간들을 더듬으며 말이다.
“여행은 도착지가 아니라, 그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다.” - Ralph Waldo Em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