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 씨유어게인

Chapter No.21

by JiwoongSS
그때엔 나도 영감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되어줄게.

어느덧 푸꾸옥을 떠나는 날 아침을 맞이했다. 짧다고 하면 짧은 시간이라 볼 수 있으나 그만큼 못지않게 하나하나의 기억들이 습작들로 간직되어 있으니. 먼저는 이후를 살아갈 내게 묵묵히 힘을 실어주겠구나 싶었다. 더불어 회상 속 잠시나마의 사색을 가지고, 언제든 SW(친구)와 함께 꺼내며 나눌 추억들이 될 거란 생각까지. 그러니 지금 이 시간 차분히 짐을 챙기며 숙소 주변 일대를 찬찬히 눈으로 담아가는 시간 자체가 소중하고, 오전 중에 선셋타운을 다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어서 호텔을 나서며 잠시 로비에 우리들의 짐을 맡겨두게 되었다. 친구 이놈이 영어로 일상적 소통이 가능했기에 원활히 이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 아마 나였다면 몇 마디도 대화를 이어가지 못해 검색창에 파파고를 치고 있었을 것이니.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를 친절하게 응대해 준 직원 한분과의 대화 속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거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쩐지 다른 분들에 비해 그리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더니 말이다. 오히려 연이어 한국어로 스몰토크를 나누면서 괜히 내가 영어 못한다고 지레 겁먹었나 싶었다. 그 덕분에 나로서 챙겨 온 짐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잠재했던 '부담'이란 짐 또한 내려놓고 편안하게 자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 푸꾸옥 "선셋타운" >

도착하고 나니, 역시나 주황 빛깔 지붕들로 가득 메워진 선셋타운 전경은 노을 없이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히려 인적이 드문 더운 시간대라 더욱 자연과의 조화가 도드라지게 부각되었다. 물론 내 몸뚱이는 더위를 먹어 체력이 떨어지는 걸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앞에 놓인 길을 걸으며 두 눈과 사진에 담는 등 사색의 발자취에 나오는 힘은 그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더욱이 언제 다시 만날지 분명히 약속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지나가는 길 여운을 깃든 짙은 색깔이 담긴 발자국들을 남겨가는 듯했다. 그렇게 더위를 능가하는 사색을 이어가다 보니, 마침내 난 세상과 진득하니 독대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 선셋타운 바다풍경 >

지금까지 그래왔듯 세상은 그중에 가장 특별한 지점에서 나와 만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오늘의 경우, 이 울타리를 넘어 각 면마다 자리하는 초록빛깔 나무들과, 주황빛의 건물들, 그리고 이 가운데 저 멀리 푸른 바닷속 적절히 세워진 선박들까지 지극히 아름다웠다. 영감을 찾아 나서는 입장이라 그 자리에 서있음을 곧장 직감할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 이제 조금 있으면 작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을 코 앞에 두고 있는 내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걸까. 여느 때처럼 비슷하게 이어가는 사색으로 영감을 발견해 낼까.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확실히 뚜렷하다 할 모먼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직 이 지점의 색채가 점점 뚜렷이 나타날 뿐이었고, 응시하다 보니 이번에는 반대의 상황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세상 또한 나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있다는 걸.


어떤 말을 해야 자그마한 감사라도 전해줄 수 있을까. 그동안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넘치도록 많았던 나이기에, 동시에 지금까지 그 길을 계속해서 열어주었던 터라, 쉽사리 한 마디라도 조심스레 여겨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창한 언변을 늘어놓기보다 짧고 굵은 두 마디면 충분하겠구나 했다. 그래서 내 목소리에 경청하는 듯한 세상에게 마음 깊이 전달되길 바라며 메시지를 전했다.


"자격이 아닌 전적인 사랑으로 나를 이곳에 초대해 줘서 고맙다. 덕분에 난 더 멀리 눈을 들어 찬란한 모습들을 바라보고, 기대를 넘어 넘치도록 영감을 얻어가게 되었어."


"난 지극히 작은 존재라 네가 내게 그랬듯 수많은 영감들을 선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이것만큼은 네게 잔잔한 울림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 이곳에서 너와 다시 만난 날, 그때엔 나도 영감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되어줄게."


뜻하는 대로 받아들여졌지는 내 영역이 아니니 확답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시간이 되어 공항으로 나아가는 길, 점점 확신으로 이어지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분명 푸꾸옥의 세상이나 나나 여러모로 달라진 부분들이 있겠지. 하지만 이번 여행으로 이미 우정을 나눈 사이가 되었고 그 사이에 못다 한 이야기들이 넘치겠구나. 그 끝에 변치 않는 환대로 맞이할 거라 믿음이 돋아났으니 작별이지만, 그때까지 씨유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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