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No.19
지금까지 사색의 자취를 남긴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시간은 의지와 상관없이 정속도에 맞춰 움직이지만, 그 동일함 속 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가고 있었다. 만약 이곳에서 아쉬움만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면, 옆에 함께하는 친구를 신뢰하지 못했다면, 모든 게 그저 낯설기만 했다면... 그랬더라면 분명 '사색'이라는 시작도 못했을뿐더러, '영감'이라는 열매는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새롭게 목격하고 있는 신비로운 광경 앞에 그저 무덤덤한 반응들로 화답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 여정의 중순도 변함없이 어린아이처럼 유영하듯 이정표를 향해 따라가고 있음에 그저 감사할 부분이라 본다. 그렇게 점점 '사색가'로서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양껏 물에 젖은 채 뙤약볕에 몸을 말리고 있는 새앙쥐 꼴이 되었다. 아마 평소와 같았더라면 늘어지게 쉬면서 한 나절을 보냈을 거지만, 이곳 빈원더스는 아직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게 많은 듯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여기는 입구에서 왼쪽일대를 위치하고 있고, 아직 절반정도 누린 셈이었던 것이다. "그래,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가봐야겠지." 하는 생각과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을 더욱 누비고 다녀야지." 하는 다른 한 편의 생각이 교차했다. 한 마디로 난 '나른함'과 '신비로움' 사이에 서있었다.
다음의 목적지는 아쿠아리움이었는데 확실히 반대쪽에 있어서인지, 그나마 몸에 남아있던 수분기도 싹 말라 얼른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이 굴뚝같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마 대화도 쏙 들어가 버린 걸 보니, SW(친구) 이놈도 같은 입장이겠구나 싶었다. 그러던 중, 우리 앞에 거대한 거북이가 떡하니 누워 물을 뿜으며 맞이하고 있었다. 일단은 남는 건 사진이니 적당히 남겨뒀는데, 찍으면서 저놈의 뱃속이 다음 행선지임을 곧이어 알게 되었다. 되게 신기하면서도 더 있다가는 정수리가 익을 것 같아 감상은 저편에 두고 바로 들어갔다.
좀 더 일찍 찾아갔더라면 입구 안에 펼쳐진 수중 쇼를 제대로 관람했겠지만, 다 끝난 뒤 인사하는 장면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이 곳곳의 여백을 채우고 있으니 이 또한 근사했고, 잠깐동안 쉬는 겸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나서 심심해진 내 입을 달래러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이 거대한 거북이 뱃속 안을 둘러보게 됐다.
그럼에도 꽤나 돌아다니며 뛰고 타고 쬐고 등을 반복해서인가, 내 눈가는 이미 나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SW(친구)는 그런 내 모습이 웃겼는지 "진중하게 구경하면서 아이스크림 물고 있는데, 눈은 다 풀려있네."라고 말했다. 저 물 가운데 자유로이 거니는 생명들 하나하나가 신기해하며 속으로 인사를 건네지만, 가는 대로 멍하니 바라보는 게 당시 내 컨디션으로 최선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타이밍에 필요한 건 커피 한 잔이었고, 이 뱃속 안에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얼른 찾아갔다. 역시나 그 판단이 맞아 눈 가에 자욱했던 피로는 한결 걷혔다.
충분히 쉰 후 지금 정도라면 더위가 좀 걷혔겠구나 싶어 거북이 뱃속 밖으로 나섰고, 근처에 대관람차가 있어 가보기로 했다. 가면서 문득 저 정상 위까지 올라가면 오늘의 발자취를 곳곳이 확인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 도착해 탑승해 보니, 그리 거대해 보였던 녀석도 여기선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게 느껴졌다(물론 그럼에도 큰 건 사실이다). 이어서 옆으로 시야를 돌려보니 이곳을 대표하는 성이 보였고, 그 반대편에는 아까 전에 한창 뛰놀았던 풀장이 보였다.
이어서 찬찬히 관람을 어어가 보니, 결국 한 가지 영감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지나온 자취의 소중함'이라 정리할 수 있었다. 걸어왔던 하나마다 다 뚜렷이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아름드리 기억 단위로 묶일 거라 여겨졌다. 그게 곧 내 마음에 온기를 채우며, 때로는 가장 필요할 때 다시 나타나 나를 지탱해 줄 거라는 믿음도 세워졌으니. 나아가 앞으로의 여정에서 가장 귀한 소망이 될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사색의 자취를 남긴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관람차에서 내리고 조금 돌아다니니 여김 없이 저녁 하늘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들은 바로 이곳의 하루는 '타타쇼'라는 퍼레이드로 마무리 짓는다고 하니, 너무 늦기 전에 미리 가있기로 했다. 동시에 가는 중간마다 천천히 저물어가는 하늘이 아름다워, 그 순간도 사진으로 남기면서 내려가봤다. 물론 중간마다 가다가 멈추는 나를 보며 어리둥절해하는 친구의 모습도 포착되어 웃겼고, 한편으로 이런 나와 여행해 줘 마음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고 마침내, 푸꾸옥 두 번째 날의 피날레 현장 앞에 이르렀다.
"애당초 우리 안에서 태어난 것이므로 그중 일부는 마음에 쌓이고 머리에 각인돼 우리의 삶과 한데 포개져 있다가, 어느 날 마법처럼 되살아나 소란스러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보호막이 되어주곤 한다." - 이기주「보편의 단어」에서